몇 자 올리겠습니다.
저는 5년 전쯤부터 학부모보다는 보호자라는 말을 더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학 '부모'라는 단어에는 학생들에게 '부모'가 꼭 있어야 한다, 아이에겐 엄마와 아빠가 모두 있어야 한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단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부터 조부모님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어느 순간 '학부모'라는 단어보다는 미성년인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행동에 책임진다는 '보호자'가 보살핌을 제공하는 웃어른 모두를 일컬을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정에서 사랑 어린 눈으로 우리 아이들을 바라봐주는 우리 보호자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서로서로 믿자'는 것입니다. 보호자님들은 학교와 어린이들을, 학교는 보호자님과 우리 어린이들을 믿는 것입니다. 불신은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만들고 예민함은 오해를 쌓고 오해는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서로 간의 오해가 쌓이면 피곤한 일이 생길 뿐입니다. 하지만 신뢰의 서클을 만들면 서로 오해가 생길 일이 적어집니다. 상대방을 더 관대한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눈을 가지고 바라보게 됩니다. 서로의 실수가 생겨도 사정을 이해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품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보호자님에게서 신뢰의 마음을 느끼면 어린이와 다양한 교육적 활동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무슨 활동을 하려고 해도 그 행동이 가진 본래 교육적 의도를 이해하려 하지 않으신다면 포기하는 교육 활동이 생깁니다. 그러나 보호자님이 학교의 교육 활동을 불신한다면 학교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각의 교사마다 잘하는 교육활동이 있고, 우리 어린이들은 여러 선생님을 만나면서 다양한 교육활동을 경험하게 되겠지요. 학교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다양한 교육적 시도나 교육활동을 포기하고 안전한 길을 선택하게 되고 우리 어린이들과 마음껏 배움 활동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이는 어른을 보고 배웁니다. 보호자가 학교와 교사를 신뢰하는 모습을 보일 때 어린이도 더 마음을 놓고 학교에 즐겁게 다닐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많은 활동에서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즐거움은 배로, 놀라움은 두 배로, 배움 속에 행복이 있음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서로의 신뢰 관계 속에서 피어난 성숙한 어른들의 공동체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사회구성원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한마음으로 모아야 합니다. 부족하지만 용기내어 몇 자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