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살아있음을 드러내고 꽃피우자-7] 두려움을 넘어 창조하기
이연이라는 작가가 있다. 연필이나 잉크 펜 등 단순한 재료로 슥슥 매력적인 그림을 그리며 삶에서 고민하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자기 생각을 조곤조곤,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작가이다. 그의 영상을 종종 보는데, 그가 한 영상에서 자신이 아끼는 책을 몇 권 추천한다. 그 중 창작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열정을 불어넣는 데 도움이 되는 책으로 ‘빅 매직(엘리자베스 길버트)’을 언급한다.
이 책은 두려움을 넘어 창조적으로 사는 법, 또 우리에게 다가오는 영감을 어떻게 붙들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리가 창조적인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맞닥뜨리는 어찌 보면 시시하고 지질한 두려움들을 세 쪽에 걸쳐 적나라하게 늘어놓는다.
당신은 재능이 없을까 봐 두렵다.
당신은 거절당하거나 비판을 듣거나 비웃음을 사거나 오해를 받거나, 혹은 – 최악의 경우에는 –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무시당할까 봐 두렵다.
당신은 자기 창조성을 높이 사 줄 시장이 없음이, 그래서 당신이 그것을 추구할 만한 당위성이 없다는 점이 두렵다.
당신은 다른 누군가가 이미 당신보다 그 일을 더 잘 해냈을까 봐 두렵다. (25쪽)
...(중략)
당신은 당신의 꿈이 당신을 부끄럽게 할까 봐 두렵다.
당신은 언젠가 자신의 창조적인 노력을 돌이켜 보면서 엄청난 시간과 수고와 돈을 낭비했다고 느낄까 봐 두렵다. (26쪽)....
이 모든 두려움에 대해 저자 자신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말하며,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덧붙인다.
나 자신의 나약함을 변호한다고? 그게 정말 내가 최후의 순간까지 꿋꿋하게 나의 온 정신을 바쳐 항변하고 싶어 하는 지점일까?
누군가 말했듯이, “자신에게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그 한계점이 주어진다.”
왜 내가 한계점을 가지고 싶어 할까?
알고 보니 나 자신도 그러한 한계점을 갖고 싶지 않았다.
당신도 당신의 한계점을 끌어안은 채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31쪽)
그가 말하는 창조적인 삶에 대해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창조적인 삶이라는 게 꼭 대단한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삶이나 누군가 우러러보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재치 있는 예시로 설명한다.
내가 말하는 “창조적인 삶”은 보다 광범위한 범주를 대상으로 한다. 나는 두려움이 아니라 그보다 더욱 강한 호기심으로 인생을 이끌어 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최근에 본 가장 멋진 창조적인 삶의 예시는 마흔 살의 나이에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한 내 친구 수전이다.
...
일주일에 세 번, 수전은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서, 낮 시간 내내 고달픈 직장에서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 바로 그 숨 가쁜 시간에 스케이트를 탔다. 그녀는 계속 스케이트를 타고, 타고, 또 탔다. 그리고 정말 그녀는 그것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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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가 직장을 그만두거나 집을 팔아 치우거나 주변의 인간관계를 모두 과감히 청산하고 올림픽 출전 대비 수준의 가혹한 코치와 함께 한 주에 70시간이나 피겨 스케이팅 연구를 하기 위해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또한 이 이야기는 ‘그래서 그녀는 그 어떤 챔피언 메달을 수상했답니다’라는 말로 끝나지도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사실 이 이야기에는 결말이랄 게 없다
...
그 이유는 단순하다. 수전에게 스케이트 타기는 그녀의 인생에서 여타의 방법으로는 가닿을 수 없는 어떤 아름다움과 초월의 지점을 이끌어 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
그게 전부다. (21~23쪽)
책의 앞에 나오는 말들을 들었는데 나머지 내용도 창작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잘 해내려고 애쓰거나 머뭇거리지 않도록 용기를 불어넣는 말들로 가득하다.
책을 읽으며 내가 왜 자꾸 멈추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창조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위에서 나온 두려움과 비슷하게 자꾸 이러저러한 핑계로 걸림돌을 만들고, 한계점을 만들곤 했다. 말하자면 자기 검열이었다. 분명 그런 마음이 학생들을 지도할 때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꼭 예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정을 이끌어 나갈 때 제대로 (실수하거나 빼먹지 않고) 잘 지도해야 한다는 마음이 때로는 짐이 되었다. 학생들로 하여금 새로운 것을 배우고 만들어 보도록 북돋으면 좋았을 때에 나도 모르게 주춤하거나 나중으로 미루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지나간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거나, 피했다. 사소한 창조성을 통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끼고 더 기쁘게 살 수 있는데, 그 물꼬를 막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먹고 탁 터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학생들에게는 글을 쓰라고 하고 나는 그만큼 많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아서 뜨끔하다. 이슬아 작가는 글쓰기에 대해 말하며 ‘부지런한 사랑’이라 하지 않던가. 책쓰기 동아리 시간에 시를 자꾸 쓰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그만한 경험을 듬뿍 주지도 못했던 것 역시 마음에 걸린다. 나도 쫓기듯이 살면서, 깨어있는 눈과 귀로 붙들어 쓰는 대신 온갖 감각기관을 닫고 살았던 것 같다. 잠들기 전 힘든 하루 중에도 이런 저런 재미난 이야기, 작은 이야기를 찾아내어 조금씩 기록하리라 다짐했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 쓰러지고 나면 이야기는 흩어지기 일쑤였다.
이왕이면 누군가를 나약하게 만드는 이야기보다는 어루만지고 힘을 내게 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내가 내 마음을 계속 살펴보고, 포착하고, 다듬을 수 있어야겠다. 새해에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수첩을 들고 다니며 글감을 좀 담아 보련다. 그게 무엇이든. 솔직하게 쓰고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임을 생각하며, 그걸 가로막는 많은 핑계들에는 귀를 막아 보련다. 마침, 새해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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