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산다-2] 몸으로 겪어봐야 깨닫게 된 일들.
고학년을 여러 번 했지만 그 중 어떤 해에... 나는 심하게 넘어졌다.
초등 고학년 담임을 하며 겪는 스트레스를 다양한 종류의 뷔페처럼 아주 골고루, 한 해에 한꺼번에 겪었다. 다른 해에도 그랬겠지만 그 해에는 특히 많은 실패담을 적다 지쳐 어느 순간 기록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약간의 기록에 의존하여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 놓고 싶다. 내가 몸으로 실패해 보니, 다음엔 이렇게는 안 해야지 하는 몇 가지 일들이 있길래 한 번 더 곱씹어 보고 싶었다.
1. 공개적인 다수결에 갈대가 되는 아이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참 또래집단에 목숨 거는 나이에, 다수결을 함부로 시켰다가는 눈치작전에 갈대처럼 의견을 바꾸는 아이들을 보게 될 것이다. 황소고집이거나 자존감이 뚜렷한 아이들은 예외.
이런 일도 기억난다. 여학생들끼리 또래 집단 관계가 너무 좋지 않아 궁여지책을 함께 얘기해보자고 비밀 쪽지를 각자 주었다. 아이들은 해결책을 고르거나 자신이 생각한 걸 썼다. 처음 잠깐은 아이들 스스로 해결할 의지가 반짝 생겼지만, 금새 선한 의지는 사라져버렸다. 싫은 아이는 싫어하고 싶었고, 내가 하기 귀찮거나 손해보는 일은 하는 시늉도 절대 내기 싫어져버렸다. 선생님과의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대놓고 나가거나 차단을 걸 만큼 말이다. 어쨌든 리더격인 아이가 그런 의견 별로다, 누가 냈냐?고 투덜대니 거의 모든 애들이 누가 냈어? 하며 투덜대는 것이었다. 절반 이상은 그 의견을 냈을 텐데도.
2. 약자를 감싸는 일은 때로는 위험하다.
당장 도움이 필요할 만큼 심한 괴롭힘과 차별을 말하는 게 절대 아니다. 그보단 비교적 자연스럽게(?) 형성된 묘한 배척과 따돌림이 있을 때 함부로 개입하는 것이 때로는 더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하더라는 이야기.
특히 초등에서는 개인주의가 심하거나 놀이를 할 때 분노를 자주 한다든가 가정환경이 어려워 옷이나 냄새 등.... 따돌림을 정당화 할 순 없지만 뚜렷이 눈에 드러나는 원인에 의한 경우가, 이유없는 괴롭힘보다는 훨씬 높은 비율을 보인다. 관련 분야에 나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일단 따돌림 학생에게 개인적으로 따로 지지를 해 주며 사회적 기술을 익히는 데 도움을 주는 상담을 하라고 한다. 부모처럼 아이가 보기에 잔소리하는 존재가 되는 대신 힘이 되는 말을 해주라고 한다.
나머지 아이들에겐 또 그 아이들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내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조금씩 언 분위기를 녹여가는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갈 뿐. 물론 관찰은 게을리하면 안 된다. 가끔은 불안해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새싹이 빨리 자라길 바란다고, 잡아 당기면 새싹들은 죽는다. 기다려야 한다. 적절한 인내심을 체득하려면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휴.)
아이들의 냉정한 시선이, 때로는 무섭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아이들이 약자인 아이들을 하도 차별하고 들볶으니 그걸 막으려는 시도를 했으나, 그들은 가책을 느끼는 게 아니었다. 차별에는 이유를 붙이고, 작은 상실감에는 크게 분노하였다. 거기에다 내가 모르는 '약자'들의 좋지 못한 언행이 가끔 있었고, 아이들은 더욱 분노하여 이건 차별이라 생각하며 우리 사이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오히려 내가 처음에 그들을 가혹하지만 조금 내버려뒀다면, 그래서 자기들끼리 앙금이 풀리고 나면 좀 덜해지지 않았을까? 교사로서 그땐 최선이라 생각하여 차마 그러지 못했던 것이지만, 아직도 고민을 한다.
내가 중학생일 때, 학교에 반항심이 충만한 몇 아이들이 몇 선생님들을 놀리고 조롱하는 일도 일어나고는 했다. 모 뉴스처럼 폭력을 쓴 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는 충분히 폭력적인 상황이었던 것 같다.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한 편에 있었지만, 의로운 분노나 두려움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그저 좀 불편한 마음으로 도울 순 없을까? 생각했지만, 그저 지켜봤을 뿐이다.
아마 경험이 짧아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했고, 군중 속에 파묻혀 책임감은 희석되었으리라. 아마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시작하면 내가 너무 아파진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조금씩 더, 지혜로운 인내심과 멀리 내다보는 눈을 갖추고 싶다.
* 따돌림.. 정면돌파할 거라면 계속 나의 철학을 지킬 수 있는지 한번은 자문해 보자. 아이들을 데리고 많은 사건을 겪다 보면 흔들리고 내가 내 원칙을 어기는 일도 생기게 되니까. 교사의 소진은 정말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지금 떠날 수도 없다면 버텨야 하니까...
* 아이들은 나와 개별 상담한 일을 토씨 하나 안 틀리거나 더 부풀려서 그들끼리 공유했다. 일기 댓글 길이도 비교했다. 그땐 미처 그럴 줄 몰랐다가 뒤늦게 아차 했다. 누군가 한번쯤, 아니 여러 번 말씀해주셨을지도 모르는데. 겪어봐야 이치를 아는가보다.
'친절하고 단호한 교사' 라는 말을 요즘 교육 서적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모임도 하시는데, 나는 많이 친절하지도, 단호한 흉내를 내려해도 자꾸 실수하는 어설픈 스스로의 모습에 자주 실망하곤 했다. (첫인상은 꼼꼼하고 차분해 보인다던데... 만나보면 아니라고....^^)
그러다 한편으론 나 지금, 자의식 과잉 아니야?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내가 꾸준히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교실의 주인공들은 학생들이다. 나는 그들과 교류하고 조력해주는 자로 이 자리에 있다. 그런데 자꾸 내가 자꾸 스스로를 검토하는 데 빠져, 오히려 주인공을 넘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수업할 것인가... 에서 주어를 조금 바꾸어 생각하고 싶다. 아이들이 교실에 올때 어떻게 지내고 어떤 수업을 듣고 싶을까. 어떤 기억을 남기고 가게 될까. 그게 자연스럽고 즐거워지는 경험을, 요새 조금씩 더 하게 된다. 희망스럽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