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살아있음을 드러내고 꽃피우자-6] 독립출판 수업 듣기(2)
지난 편에 이어서, 인디자인 사용의 기본을 안다고 가정하고 그밖에 책을 만들며 고민했던 점들에 대해 써 봅니다.
책의 판형과 여백은 어떻게 정하지?
원고를 인디자인에 정리하면서 처음에 가장 고민했던 건 책의 판형, 그러니까 가로 세로 길이였습니다. 감이 잡히지 않아서 집에 있는 책들을 자로 재어 보며 가늠했습니다. 글밥이 많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볼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손에 쏙 들어오는 만화책 규격으로 하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백의 크기도 규격에 맞추진 않았습니다. 에세이나 시집이라면 여백을 넉넉한 공간에 주고 가운데에 글이 좀 가늘게 들어가는 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왠지 제 책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결국 여백을 좀 줄이고 글씨는 키워서, 뭐랄까, 밥보다 속을 많이 넣은 김밥 느낌으로 글씨가 쪽에 들어차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책의 여백이 너무 좁아 안타깝다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지만 제 마음에는 들었습니다. 취향 문제도 있겠죠? 편집 디자인을 배운 적은 없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ISBN, 그게 뭔가요?
ISBN은 ‘국제 도서 번호’라는 뜻으로, 마치 책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입니다. 정식 출판물로 등록을 하여 출판 시스템으로 유통, 검색하거나 도서관에 납품할 때 유용하게 쓰입니다.단, 독립출판물의 경우 굳이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저는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발급받기로 했습니다.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개인이 받을 때 절차가 복잡한 편이지만,독립출판물을 유통하는 플랫폼인 <인디펍>에서 ‘인디펍 독립출판 레이블(연지출판사)’을 통해 간편하게 신청할 수 있습니다. 비용은 당시 5만원이었고 국회도서관에 샘플로 납본할 책 4부를 준비해야 합니다. 인쇄 후에 보내면 됩니다.(2019년 기준)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제가 아는 것만 소개했습니다.
신청서와 샘플 파일을 사이트에서 제출하여 검토가 끝나면 이메일로 ISBN이 적힌‘판권지’와 바코드 파일을 보내주는데요. 배경이 투명하고 글씨가 들어있는 파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인디자인에 불러와 뒤쪽에 넣습니다.
(판권지가 뭐냐고요? 서점에 파는 흔한 책의 맨 뒤를 펴면 책의 정보가 깨알 같은 글씨로 써 있는 쪽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바코드를 넣을 때 크기 변환을 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는데 결국 못 알아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바코드를 책 표지에 어울리도록 예쁘게 바꾸어 넣더라고요. 아시는 분? T.T)
※ 책의 가격 정하기
바코드를 넣으려고 보니, 책에 판매 가격을 넣어야 했습니다. 가격을 정하는 공식 같은 것쯤 있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개념이 없는데 어떻게 정해야 할까요?
독립출판물 가격을 정하는 방법에 대해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글을 쓴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각자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여 가격을 정하였던데, 그런 내용을 조금씩 참고해서 제 나름대로 정한 결과입니다. 지금도 알맞은 가격이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거 보면 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이때 대략 책을 몇 권 인쇄할 것이고, 인쇄에 어느 정도 돈이 들 것인지 어림은 잡아 둬야 책 가격을 정할 때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죠? 인쇄소마다 조건과 가격이 조금씩 다르므로 몇 군데의 사이트에 미리 (다 정하지 못했다면 최대, 비싼 조건과 최소, 싼 조건으로 두 가지 넣어 본다든가) 견적을 넣어 계산해 보면 감이 좀 올 겁니다. (찾아본 내용은 사이트를 나서는 순간 헷갈리므로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해가며 찾읍시다.)
제 경우에 처음부터 수익을 내려던 것은 아니어서 인쇄비 정도만 받으면 된다고 여겼는데 막상 해보니 유통에도 돈이 들고, 너무 낮게 잡으면 오히려 적자가 됩니다. (저는 고급지에 유색 인쇄를 하니 보통보다 인쇄비가 비싼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저와 같은 조건에, 대량 인쇄가 아닌 디지털 낱권인쇄라면? 이미 인쇄비부터 비슷한 두께로 파는 책의 소비자 가격보다 비싸집니다... TT)
원고를 인쇄소에 보내기 전에... (머릿속으로 미리 과정을 그려 봅시다 ^^)
1. PDF파일로 내보내어 검토하기
‘인디자인’ 안에서 모든 작업이 완료되면 ‘글자 깨기’라는 걸 합니다. 문서로 존재하던 글씨들을 이미지로 바꾸어 주는 작업입니다. 한번 글자를 깨면 더 이상 내용은 편집할 수 없게 됩니다. 그 전에 여러 번 저장을 해 두고 확인한 뒤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글자들을 깼습니다. 그 다음은 원고를 ‘내보내기’ 해야 합니다. 내보낸 원고가 혹시 이상하게 내보내지지는 않았는지 인쇄하여 꼼꼼히 한 번 더 확인해 봅니다. 인쇄소에 이렇게 내보낸 pdf파일을 보내어 인쇄를 하게 됩니다.
2. 인쇄용지 고르기
어떤 종이에 내 책을 인쇄할까? 차라리 옷을 고르라면 평소 입어본 경험이 있으니 좀더 고르기 쉬울 텐데요. 독립출판 수업에서 샘플 종이를 미리 살펴보고 만져본 경험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러 인쇄소 사이트에서 종이 샘플북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처음 정할 때는 꽤 아리송하긴 합니다.)
그림이 없고 흑백 글씨만 있는 책은 저렴한 모조지를 흔히 쓴다고 합니다. 저는 색이 선명한 삽화가 많아서 색감이 잘 드러나는 종이를 고르고 싶었습니다.
독립출판 선배인 유새영 선생님은 어린이 시집을 인쇄할 때 종이를 무엇으로 했는지 물어보니 스노우지 중에서 두께감이 있는 것으로 인쇄했다고 합니다. 조언을 구하니, ‘아끼려고 욕심보다 안 좋은 종이로 인쇄하면 반드시 나중에 후회한다’는 명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래, 결심했어! 고급지에 인쇄하자.”
고급지도 종류가 많아 고민하다가 한 가지를 골랐습니다. (랑데뷰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께를 정하는 것도 고민이 되었습니다. 더 얇으면 가벼운 느낌이 들고 살짝 비칠 수 있지만, 너무 두꺼워도 넘길 때 좀 뻣뻣하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아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 일단 적당한 인쇄소에서 낱권을 먼저 맛보기로 주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종이의 종류와 두께를 조금씩 다르게 설정해서 3권을 주문해보았습니다. 컴퓨터 속에서 잠자고 있다가 정말 상큼한 빛깔로 인쇄되어 도착한 책을 보니 참 신통방통했습니다. 컴퓨터 화면 너머가 아니라 직접 종이를 만지고 느낌을 비교하고 살펴서 더 마음에 드는 종이와 두께를 골랐습니다.
3. 인쇄 부수 정하기
주변 지인에게만 나누어 줄 수도 있지만 판매를 염두에 둔다면 혹시 홍보 겸 수요 조사를 해 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인쇄 부수가 100권 미만이라면 디지털 인쇄를 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고 합니다. 대량 인쇄는 한번 판을 조성하는 기본 비용이 매우 많이 들기 때문에 적어도 300권 이상은 될 때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합니다.
제 경우 처음에는 50권 이내로 만들어서 지인들에게만 뿌릴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구입하려는 사람이 많아 100권 쯤 주문하려 했으나, 주위에서 부추겨 300권이나 인쇄하게 되었습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반대로 나중에는 돈을 조금만 더 주고 한번에 많이 인쇄하면 2쇄를 안 찍어도 되고 인쇄비를 아낄 텐데 겨우 1쇄를 300부만 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4. 원고를 인쇄소에 보내기
그 밖에도 검토할 것들이 끝났다면, 내가 정한 인쇄소에 견적과 사양을 입력하여, 인쇄를 주문합시다! 특별한 주문사항이 없다면, 인쇄소랑 직접 연락하지 않아도 사이트에서 인터넷 쇼핑을 하듯 바로 주문할 수 있습니다.
5. 유통 및 홍보하기 (인디펍 독립출판 유통시스템 활용)
독립출판은 책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책의 유통, 홍보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유통을 직접 하고 모든 책을 직접 판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는 하나하나 포장하고, 주소를 확인하고, 발송하는 일을 본업과 병행하니 품이 많이 들어서 그다지 추천하지 않습니다.
인디펍 사이트의 유통시스템의 덕을 많이 봤습니다. 인디펍에 책을 입고하면 웬만한 책은 검토를 거쳐 알라딘에 연계하여 판매를 해 주어 매우 편리했습니다. 알라딘으로 사람들이 주문하면 인디펍에서 직접 알라딘으로 넘기는데, 이에 대한 배송비는 받지 않습니다. 사이트에 들어가면 입점시 공급률이 60%라고 적혀 있는데요, 정가로 판매한 뒤 정가의 40%는 서점, 그러니까 인디펍에 돌아가고 작가에게는 60%의 돈이 월말에 지급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방법이 유일했지만 부크크 등 유명한 다른 사이트도 장단점이 있을 테니 폭넓게 알아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 처음에 일부는 직접 유통하기도 했습니다. 50권 이하의 책만 판매하게 될 줄 알고 블로그를 통해 일일이 주문을 받았는데요, 그게 제겐 1차 판매인 셈이었습니다. 1차 판매 날짜 마감 이후엔 정가로 알라딘이나 인디펍에서 직접 구매해 달라고 했습니다.
※ 알라딘 판매 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독립출판 서점에 내 책을 입고하고 싶다면?
서점 연락처(인스타그램 주소나 이메일 주소)로 제 책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보내며 입고할 수 있는지 문의하면 됩니다. 단, 서점에 보낼 때 택배비는 본인 부담인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우 홍보를 위해 지인에게 알리기도 하고 SNS를 활용했습니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이 유용합니다. 요령이 없어서 잘하진 못한 것 같고, 책을 종종 검색해 보면 누군가 리뷰를 쓴 것이 포착되기도 하는데, 꼭 감사 답글을 달아드리고 부끄럽지만 그 리뷰를 캡쳐해서 제 계정에 한번 더 올리며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좌충우돌, 실수도 많았고 이게 답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앞서 간 사람의 실수와 헤맨 길이 좋은 길잡이가 되고 더 쉽고 빠르게 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용기내어 저의 독립출판 과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2020년의 마지막 밤, 글을 마무리하며 올해의 수확을 돌아보니 뭐가 어쨌든 스스로에게 대견하다는 말부터 해 주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한 해 정말 애쓰셨습니다.
루루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