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살아있음을 드러내고 꽃피우자-4] 그거 아세요? 우리 쌤이 작가래요!
드디어 오늘은 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이 있는 날입니다. 바닥에 장판이 있는 널찍한 돌봄교실, 미리 춥지 않게 아침부터 보일러 틀어놓기. 60명이 넘는 5학년 학생들이 바닥과 의자에 편히 앉아 앞이 잘 보이는지 살펴 자리 마련하기. 학생들이 작가님께 하고 싶은 질문을 담은 종이들, 작품과 관련지어 독후활동 했던 자료들을 전시해 두기. 마음이 설렙니다.
2019년, 5학년 담임을 하며 동학년에서 함께 ‘소리질러, 운동장!’(진형민 지음) 온작품읽기를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소리질러, 5학년!’ 이라는 제목으로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작품도 워낙 재미있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함께 하며 그 작품이 학생들에게 무척 인상깊게 남았지요. 끝나고 나서 뭔가 아쉬워 뒤풀이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닿아, 직접 작가님을 모실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렇게 설렌 마음으로 자리를 마련했지만 아이들이 다투거나 크고 작은 사고를 치는 것은, 날을 가리지 않나 봅니다. 늘 그렇지만 특히 예측하지 못한 일이 자꾸 생기는 해였고, 그날은 아무 일도 안 생기길 바랐지만 역시나였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먼저 행사 장소로 내려 보내고 문제가 생긴 학생들과 해결을 하느라 꽤 늦게 내려갔습니다. 다행히 다른 학생들이라도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있어 긴장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반 몇 명의 친구가 저에게 열심히 눈짓을 보냅니다. 뭔가 싶어 보니, 작가님이 다음 책을 내실 때 넣을 삽화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눈짓을 보냈냐고요?
작가와의 만남이 있기 한 달 전, 저에게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박승우 시인이 시를 쓰고 우수출판콘텐츠 지원을 받은 뒤 제가 삽화를 그려 ‘나무동네 비상벨’ 동시집이 정식 출간된 것입니다. 교사들이 읽는 자료나 책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에 삽화를 넣은 것은, 그것도 이렇게 많이(30점 이상) 그려 넣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귀한 여름방학 절반 이상을 그림 그리는 데에 쏟았기에 더욱 소중했던 것 같습니다. (^^) 제가 한 획 한 획 그린 그림이 고스란히 동시집에 들어가 있는 것이 어찌나 놀랍던지요.
우리 반 학생들에게는 비밀로 할까, 알릴까 하다가 자랑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좀 쑥스럽긴 했지만 알리고 싶었습니다. 학생들은 제 생각보다 더 놀라고 더 난리가 났습니다. 평소에 책이나 시, 그림에 관심 없던 학생들도 신기한지 자꾸만 제게 책을 받아 들여다보고 펴 봅니다.
“이걸 진짜 쌤이 그리셨다고요?”
“시가 전부 짧은데 뭔가 재미있어요!” (일부러 시인이 지었던 시 중에서 짧은 길이의 동시를 모아 그림과 함께 엮은 시집이었거든요. 학생들이 금방 알아챘습니다.)
“우와! 대박! 진짜 여기에 우리 쌤 이름이 있어!”
평소에 책에 영 관심이 없던 친구가 엄청 좋아합니다. 왜 그러냐고 하니 ‘우리 선생님이 유명한 사람이 되면 우리 반도 뭔가 유명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라며 더 유명해지랍니다. 뭔가 유튜브 구독 수가 늘어가는 것과 비슷하게 느낀 걸까요?
또, 책 읽거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친구는 삽화를 보며 어떻게 했는지 묻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자극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다음 작업을 추천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선생님! 다음에는 이런 시집에 그림을 넣는 건 어때요?”
다시 돌아와서, 그 친구들이 열심히 눈짓을 보낸 건, 선생님도 그림 잘 그린다고 작가님한테 한 번 얘기해 보라는 신호였습니다. 참 고맙지요. 작가와의 만남 강의가 모두 끝나고, 이제 한 명씩 작가님한테 싸인을 받으러 줄을 섰습니다. 아까 그 친구들은 다시 제게 다가와 재잘댔습니다.
“아, 우리 쌤도 작가인데...”
“쌤도 삽화 잘 그린다고 제가 한 번 말해 볼까요?”
“선생님, 직접 한 번만 말해 보세요!”
우리 반 학생들 앞에서, 저도 이 순간만큼은 빛나는 유명 작가였습니다.
제가 창작물을 냈고, 그 결과가 공식적인 무엇으로 드러나고, 이름이 있다는 것. 교보문고에 제 이름을 검색하니 관련된 책이 나온다는 것. 그게 개인적으로 뿌듯하다거나 기분 좋은 일이 될 수는 있지만, 사실 학생들에게는 심드렁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겠지요.
그런데, 의외로 여러 학생들이 그 사실을 크게 느끼고, 자기들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방법을 궁금해하거나, 자기 발전에 좋은 자극을 받는 학생들도 있고요. 혹시 모르지요. 그 중에 저처럼 언젠가 출판물을 내는 학생이 나올지도.
이렇게 알아주고 응원해 주는 작은 친구들이 있으니, 저도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작은 욕심을 더 내 보게 됩니다. 계속 조금씩이라도 즐겁게 쓰고 창작해 보아야겠다, 다짐한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 제 책을 만든 이야기,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