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콜 소모임 후기]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 볼까(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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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월에 걸친 1학기 글쓰기 모임, '글밤' 이 끝났다.
되돌아보며 드는 생각들을 몇 가지 열쇠말로 갈무리해 본다.
1. 세렌디피티: '뜻밖의 기쁨'
글밤, 처음에는 내가 좋다고 시작했지만 왠지 정말 하기 싫고 격렬히 쉬고 싶어서 거부감이 드는 날도 있었다. '아, 하기 싫어 미치겠다!' 안 그래도 바쁘고 다들 힘든 시기라 참석율이 저조한데, 나까지 빠지면 이러다가 다 망할 것 같아서 책임감으로 이겨 내야 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하지만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접속한 날도 있었다. 그러나 선물처럼 의외의 즐거움을 보답으로 받았다. '글밤 동지들' 덕분이다.
글을 쓰는 것도 좋았지만 글 쓰기 전에 대화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사실 소심하고 내향적인 내가, 평소엔 지친 날이면 동굴에 틀어박혔던 내가 굳이 먼저 나서서 하지 않는 일들(그래봤자 안부를 궁금해 하고 농담 몇 마디 한 게 다였다.)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금방 기분이 전환되고, 위로를 받기도 했다. 모임을 이끈다는 것도, 소심함을 극복하며 억지로 얘기하는 것도 해 보기 전에는 힘들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편견이었다. 다들 정말 정말로 피곤했던 날에는 어느새 동심으로 돌아간 듯(혹은 반쯤 미친 듯) 화상 채팅 필터를 이용해 온갖 배경과 이모티콘으로 본인을 치장하는 놀이를 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친 표정으로 다같이 무지개 가발 쓰고 낄낄대는 모습의 애잔함(?)과 즐거움. 우리는 그렇게 글밤 동지가 되어갔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특히 명선 샘의 텃밭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오랫동안 곱씹게 되었다. 별것 아닌 텃밭에서 벌어지는 정치학(?) 얘기도 재밌었지만 나랑 비슷한 듯 다른 상황에서, 교육적인 관점으로 열심히 대처하는 모습, 사진을 찍으며 조용한 기쁨을 얻는 모습이 부러워서였을까. 그랬던 것 같다.
2. 엉덩력의 재확인
들어가기 싫은 날도 많았다고 고백했지만, 일단 모임을 시작하면 어떤 글이든 쓰게 되어 있었다. 쓰기 전에는 쓸 게 없다고 생각하고 글밤 동지들에게 그 생각을 이야기하는 순간 갑자기 뭘 쓸지가 번쩍 떠올라 쓴 적도 있다. 물론 그 글들이 다 유용한 글은 아니었고, 쓰다가 관둔 글도 있다. 그래도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한번 쓴 다음 모임에서는 또 그보단 수월하게 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고, 배설하듯 쓴 글은 내 삶에 보탬이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무엇보다도 일단 앉아야 쓴다는 걸 알았다. 쓰기 시작하면, 꼭 쓰려던 얘기는 아니지만 뭔가 쓴다. 쓰는 행동은 가까운 시일 내에 또 쓰는 행동을 불러온다. 평소에 쓰지 않았던 내가 이렇게나 글을 썼다는 기분은, 마치 미루던 청소를 하고 난 뿌듯함과 비슷하다. 여기서 얻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 당장의 숏폼 영상 시청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이 아닌, 미지근하지만 단단한 즐거움이다.
3. 연결이 주는 해방감
글쓰기 모임을 통해 비록 답답한 온라인 화상 모임이지만 각자의 편안한 공간에서 연결되었다. 지역과 장소를 초월하여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들 바쁜 시기에는 짧은 10분이라도 들어와서 얘기하고 가시라고 했다. 쓰고 싶은 글 주제가 아니라면 근황이라도 얘기하고 가라고 했다.
처음에는 나좀 봐, 오기 싫은 이유가 있을 텐데 굳이 짝사랑도 아니고 뭐하는 거야, 생각도 했지만 꼭 그렇진 않았다. 바쁜 중에 짬을 내어 10분이라도 들어와 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편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시도록 하고, 나도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듣고 나면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어도 왠지 뒷맛이 괜찮았다. 잠깐 들렀다 가신 분들도 분명 그랬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뭘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 매일 오가는 시공간, 내 안에 갇혀 있던 생각은 나와 다른 시공간의 육성을 들을 때, 혹은 타인의 이야기를 엿볼 때 조금은 해방된다.'
1학기 중반, 고달픈 마음에 모임을 얼른 마무리하여 털고(?) 싶어 하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말해 주고 싶다.
'걱정 마, 넌 분명 잘했다고 생각할 거고, 2학기에도 또 모임을 하고 싶어질 거니까!'
1학기를 함께 통과한 글밤 동지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