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교육] 주급 명세서 파헤치기
배우장 급여는 2주마다 지급한다. 이 이름을 어떻게 붙여야 할까? 달마다 주는 급여를 월급, 1주일마다 주는 급여를 주급이라 하는데 2주마다 지급하는 것은 애매했다. 격주급? 2주급? 월급? 흐음.. 그냥 '주급'이라 부르기로 했다.
월급이란 이름은 너무 긴 호흡이어서 역동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2주급이라 부르자니 길이가 길다. 입에 도저히 붙지 않는다.
"배우장 급여는 2주마다 지급하지만 '주급'이라 부를 거예요. 원래 주급은 1주일마다 주는 급여지만 배우장에서는 2주일마다 지급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학생들에게 안내하고 배우장 주급 명세서를 게시했다. 주급 명세서 출처는 유튜브 '세금 내는 아이들'임을 미리 밝힌다.
주급은 직업이 있는 학생들만 받는다. 직업은 매월 새로 공지하고 면접을 통해 바꾼다.
주급 외에 국회의원 기본소득을 도입했다. 학생들 모두 학급의 법을 만든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사실 기본소득이 없으면 돈을 못 버는 학생들에겐 세금 걷기가 애매하다. 내가 번 돈에서 세금을 납부한다는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서 기본소득을 도입했다. 물론 직업이 없는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도 크다.
세금은 주급과 기본소득을 합한 금액에서 10%를 징수한다. 계산하기 편하게 주급과 기본소득 단위를 10 단위로 맞췄다. 그러면 세금은 주급과 기본소득을 합한 금액에서 마지막 0을 뺀 금액이 된다. 2학기 즈음에 일부러 국가 재정 위기를 도입해서 세금을 높일 계획이다.
자리 임대료는 부동산 개념을 위해 도입했다. 후에 부동산을 구입한 학생은 자리 임대료를 면제할 것이다.
전기세는 교실에서 쓰는 전기도 그냥 쓰는 것이 아님을 느끼도록 도입했다. 여름철 에어컨을 가동할 때 전기세를 높일 계획이다. 그러면 전기의 소중함을 조금이나마 체감하지 않을까?
건강보험료도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도입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로 병원 진료를 싸게 받을 수 있듯이, 배우장 국민들도 건강보험료를 냄으로써 보건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후에 소득이 높은 학생들은 건강보험료를 더 높여 받을 생각이다.
실수령액은 (주급+기본소득) - (세금+자리 임대료+전기세+건강보험료)의 값이다. 직업 목록에 명시된 주급을 그대도 받는 줄 알았던 학생들이 의문을 갖는다. 왜 실수령액이 적지? 그제서야 세금에 관심을 갖는다. 목적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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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걷은 세금, 임대료, 건강보험료 등은 배우장이라는 국가를 운영하는 데 쓰인다. 가령 전기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돈은 500루비. 전기세로 걷은 세금은 270루비. 230루비가 부족하다. 이는 소득세(10%)에서 메꾼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내가 낸 소득세(10%)가 어떻게 쓰이는지 체감한다.
그렇다면 국가를 운영하는 데 쓰이는 돈은 어떻게 정할까? 자리 사용료로 1500루비, 전기 사용료로 500루비, 건강 보험으로 500루비를 선정한 근거는 무엇인가? 교사 재량이다. 학생들이 낸 세금과 비교해서 최종 국고가 적당히 남을 정도로 조절하면 된다. 나도 이 개념은 처음 도입하는 거라 구체적인 정도를 정하기 애매하다. 올해 해보면서 조금씩 조절하려 한다.
최종 국고는 배우장 학생들이 낸 세금 합계에서 사용료를 뺀 값이다. 3월 주급 명세서에 제시된 배우장 국고는 182루비. 최종 국고는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칠판에 써 둔다.
배우장은 이 최종 국고로 운영된다. 무엇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학생들이 느껴야 한다. 이를 위해 어떤 일을 추진할 때는 이 국고를 기준으로 운영해야 한다. 가령 직업이 없는 학생들을 위한 지원금을 지급할 때 국고에서 지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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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급 명세서의 실수령액을 보면 직업이 있고 없고에 따라 금액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업이 없으면 실수령액이 20루비다. 가장 많은 돈을 받는 직업을 가진 학생은 실수령액이 380루비다. 19배 차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의 차이는 커질 것이다.
빈부격차 문제를 내 입으로 이야기하기보단 학생들에게서 끌어내고 싶었다. 학급임원 3명을 불렀다.
"미션입니다. 이 주급 명세서를 보면 문제점이 있어요. 어떤 문제점인지, 그리고 그 대안은 무엇인지 다음 등교일까지 생각해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