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돌 진로교육 도전기 : 마지막 나눔 축제
[도입]
끝이 보인다.
이 시스템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실제 사회의 끝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으면 돈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실제 사회에서도 죽으면 돈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모은 바둑돌은 졸업과 동시에 의미가 사라집니다."
라고 말하기엔.. 너무 가슴이 아프다.
고민 끝에 '나눔 축제'를 기획했다.
<별빛반 1기, 처음이자 마지막 나눔 축제 계획서>
1. 돈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돈만 욕심내서는 안 됩니다. 돈은 끝이 없기 때문이죠. 만 원은 10만 원을, 100만 원은 천만 원을, 1억은 10억을 가지고 싶게 만듭니다. 이런 욕심은 결국 자신을 괴롭게 합니다.
2.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죽을 때 자신이 가진 돈을 가져갈 수는 없죠. 돈을 현명하게 소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3. 그중 하나는 나눔입니다. 어차피 죽어서 가져갈 수 없는 재산. 자신의 자식에게 물려줘도 의미 있지만, 살면서 사회에 나누는 건 어떨까요?
4. 그런 의미에서 나눔 축제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바둑돌을 선생님이 그냥 가져가는 것보다 바둑돌을 통해 나눔을 경험하는 더 좋을 것 같아서요.
5.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친구들에게 나눌 물건이 있다면 준비해주세요. 물건이 없다면 자신의 재능을 나눠도 됩니다. 음식, 요요 하는 방법, 다 좋습니다. 거기에 바둑돌 가격을 매겨 주세요.
계획서를 만들며 쓴 글이다.
"자신이 나눌 물건이나 자신의 재능 등을 계획해 보세요."
아이들이 이렇게 나눔을 준비하는 동안
나도 일주일 전에 학급 운영비로 연필, 공책, 필통 등의 나눔 축제 선물을 샀다.
***
한편, 그동안 아이들이 은행에 맡긴 돈과 부동산에 투자한 돈을 전부 돌려줘야 했다.
바둑돌 개수가 당연히 모자랐다.
결국 새로운 화폐를 발행했다.
검은돌에 별 모양 스티커를 붙여
새로운 가치를 매겼다.
스티커가 잘 안 붙어서 테이프로 고정해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
바둑돌 한 개당 3개 알바비를 지급한다고 하니
15분 만에 끝났다.
노란돌은 하얀돌 25개,
빨간돌은 하얀돌 50개,
파란돌은 하얀돌 100개로 약속했다.
[전개]
나눔 축제 당일.
생각보다 아이들이 나눌 물건을 안 가져왔다.
돈은 많지만 소비할 게 부족한 상황.
공급보다 수요가 넘친다.
내가 준비한 선물은 초반에 다 팔리고
예쁜 필통은 너도나도 사겠다고 싸울 기세였다.
이렇게 경쟁이 붙으면 바로 경매를 실시했다.
"40개로 시작하겠습니다."
시작 가격보다 몇 배나 뛰었을까?
"180개, 낙찰!"
연필 하나에 5개로 팔았는데
경쟁이 붙으니 180개까지 뛰었다.
오늘이 지나면 바둑돌은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에
가격은 미친 듯이 치솟았다.
그럼에도 부자 아이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나왔다.
"선생님 돈을 쓸 곳이 없어요."
"저 600개 남았는데 돈 쓸 곳이 없어요."
"어쩔 수 없지.."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별빛반 기념품 판매합니다. 시간표 국어 자석, 하나에 20개!"
순간적으로 기념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교실에 있는 시간표 자석, 모둠 자석, 활동 순서를 알리는 손가락 코팅지 등
기념품으로 할만한 것은 무궁무진했다.
놀랍게도 가격은
"200개!"
까지 올라갔다.
"선생님 시간표 자석 팔면 내년에는 어떻게 해요?"
"새로 만들어야지~"
어차피 새로 만들 계획이었는데 잘 됐다.
아이들에게 감동(?)도 주고, 나눔 축제에 재미를 더했다.
시간표 자석을 기념품으로 구매한 학생.
뽑기 콘텐츠. 하나 뽑는데 바둑돌 몇 개를 받았는지 궁금하다(정신 없어서 못 물어봄).
나중엔 아이들끼리 경매했다.. ㅋㅋㅋ
돈 쓸 곳이 없어 앉아있는 안타까운 상황..
[정리]
"이제 마무리할게요. 남은 바둑돌은 전부 반납해주세요.
오늘로써 바둑돌 시스템을 마무리합니다."
마지막 '미덕 보석' 기념품 경매까지 마치고
마지막 선물을 나눠줬다.
"선생님이 고마운 친구들이 있어 따로 선물을 준비했어요.
먼저 바둑돌 시스템을 가장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가장 많은 돈을 번 재만이(가명)!"
상품은 몽쉘 박스다.
"다음으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가진 바둑돌을 아낌없이 나눠준 기부왕 수현이(가명)!"
역시 몽쉘 박스다.
열심히 참여해준 몇몇에게 더 상품을 준 뒤 진짜 마무리 지었다.
A4용지에 쓰인 이길 승(勝)은 예절 수업에서 내가 썼던 글자다. 돈 쓸 게 없다고 해서 기념품으로 팔았다. "선생님 영혼이 담긴 이길 승 판매합니다!" 가격은 50개.
***
남은 기간 2일.
졸업식 빼면 하루 남았다.
경매하느라 정신 없어서 사진을 많이 못 찍었지만,
이렇게 기록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