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知의 세계] 마티스, 태양의 색을 오려 붙이다 (1)
21살의 저는 참 미술에 관심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때는 사실 미술이 뭔지도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도 잘 몰랐어요.
세계인이 모두 아는 화가 이름 몇 개를 알고 있을 뿐이니 미술 사조나 조형 원리같은 것은 머리 아픈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과 수업을 듣던 중 뇌리에 박혀서 떠나지 않는 그림 하나가 수업이 끝나도 계속 눈에 밟히더라고요.
"아무렇게나 그린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가위질 하나하나에 아마 작가는 혼신의 힘을 다했을 것이다. 쉬워 보인다고 작품이 쉬운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렵게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작가가 원하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내가 아는 만큼 보이고 생각하는 만큼 수준이 정해지는 그런 작품이다. 미술사적으로 이 사람이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 하나도 모르지만, 일단 나에게 '미술은 재미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에 이 작품이 정말 재미있고 마음에 든다."
라고 감상평을 적어서 과제로 제출했었습니다.
이후 미술관에 가면
신기하게도 미술관에서 이 작가의 작품들은 느낌만으로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나봐요.
그 작품은 바로
'앙리 마티스'의 '달팽이'입니다.
앙리 마티스
앙리 에밀브누아 마티스(Henri Émile-Benoit Matisse, 1869년 12월 31일 - 1954년 11월 3일)는 20세기 야수파 프랑스 화가이다.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꼽힌다. 프랑스 북부 노르파드칼레의 르샤토캄프레시스에서 태어났다.
22세 때 파리로 나가 그림 공부를 하고, 1893년 파리 국립 미술 학교에 들어가 구스타프 모로에게서 배웠다.
1904년 무렵에 전부터 친분이 있는 피카소·드랭·블라맹크 등과 함께 20세기 회화의 제일보로 불리는 야수파 운동에 참가하여, 그 중심 인물로서 활약하였다.
그는 조각·동판화에도 뛰어났고, 직물의 디자인, 삽화 등 새로운 분야도 만들었다. 그리고 대표작으로 <춤> <젊은 선원>이 있다.
- 위키백과
인생의 전환점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옵니다.
마티스가 '20세기 최고의 화가'가 되는 것도 아마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겁니다.
마티스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법조계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일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 물감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티스는 맹장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옆 환자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심한 마티스는 무료함을 달래고자 그냥 그림을 한 번 그려봤습니다.
놀라운 순간이죠.
바로 이 순간이 '20세기 최고의 화가'를 탄생시킨 순간입니다.
(옆 환자분, 누군지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퇴원을 하고 나서도 마티스에게는 온통 그림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22살의 나이,
미술을 하기에는 늦었지만 마티스는 과감히 집안의 반대를 뿌리치고 무작정 프랑스 파리에 발을 딛었습니다.
역시는 역시였던가요.
미술을 시작하기에 22살은 너무나도 늦은 나이였습니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모든 것을 쏟은 수많은 화가 지망생들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마티스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학생들과 기본기부터 배우고, 미술관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또 공부했습니다.
노력한 만큼 그림실력은 늘었지만 마티스는 자신의 그림이 늘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합니다.
"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색으로만 그림을 그리려고 할까?"
이 때부터 마티스는 눈에 보이는 색이 아닌 '내가 느끼는 색'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모자를 쓴 여인>
물감에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한 두 방울 섞은 느낌.
피부색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피부색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색조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마티스의 색이 '야수같이 포악하다!'라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사물에 고유한 색이란 없습니다."
마티스는 사람들의 비난에 콧방귀를 끼고 보란듯이 자신만의 색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모자를 쓴 여인>이 주목받고 난 뒤 마티스는 한 점의 그림을 더 그립니다.
<마티스 부인의 초상, 녹색의 선>
제목 그대로 마티스가 자신의 아내를 그린 그림입니다.
아내인 아멜리 부인은 남편이 그린 자신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에서 우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마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름다운 부인을 창조하는 것이 아닌 그림만을 그렸을 뿐이이다."
(아내에게도 자비 없던 마티스... 그대는 무엇....)
70살이 되어서야 마티스는 '거장'이라고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고흐를 생각한다면) 살아 생전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지만, 사실은 굉장히 늦은 나이에 유명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22살 그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서 70살이 되기까지 마티스는 항상 기쁜 순간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쁘지 않은 순간도 기쁘게 그리려고 했습니다.
그런 마티스의 가치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이 바로 <이카루스>입니다.
<이카루스>
마티스는 <이카루스>를 2차 세계대전에 완성했습니다.
전쟁 중이었지만 그림에서는 '전쟁'의 슬픔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히틀러가 예술가들을 탄압하고 억함하더라도 마티스는 강렬한 자신의 색으로 기쁜 모습만 그렸습니다.
"나는 지쳐버린 사람에게 조용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마티스와 같은 시대에 예술을 했던 피카소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티스는 뱃속에 태양을 품은 것 같다. 그의 색깔은 마치 태양의 색과도 같다."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펼치던 마티스에게 두 번째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병원에서 처음 붓을 들었던 마티스의 손에 다른 것이 쥐어지는 이 순간은
바로
2편에서 투비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