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존경받는 선생님 되기
리지
0
825
2
2020.05.01 21:46
꿈: 존경받는 선생님 되기
정인재 선생님을 기억하며
교사가 된지 어언 9년이 지났다. 자기계발서에서 숱하게 들은 말 중에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으로 매일 3시간씩 훈련할 경우 약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 10년을 어느새 1년여를 앞두고 있는데 여전히 난 좌충우돌 중이다.
햇병아리 시절에는 초보니깐 좀 서툴러도 괜찮아라는 자기방어제가 있었다. 작은 시골학교에 첫 발령이 나서 10명 안팎의 아이들과 오순도순 학급살림을 재미있게 꾸려갔다. 시골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처럼 거칠지도 않았고 왕따니 학교폭력이니 무시무시한 말을 입에 올릴 일도 없었다. 그 곳에서의 4년이 너무 안정적이었던 걸까. 도시로 나온 5년차에 난 무너지고 말았다. 도시에 첫 발령 났다면 남들은 새내기부터 겪었을 부침을 나는 5년차가 되어서 처음 겪게 된 것이다. 학급에는 내 말이든 다른 선배 교사의 지시든 불응하는 막강한 아이가 있었고 여자아이들은 지난 시간부터 이어져 온 왕따, 은따 문화가 성행했고 무기력하거나 폭력적인 남학생들부터 사소한 걸 트집잡으며 사사건건 교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아이들까지. 사상 최대의 위기였다.
너무 힘든 한 해는 병가와 휴직까지 써가며 도피를 택했다. 세워둔 계획과 일정이 모두 무너지고 내 자존감은 바닥이 났다. 한 해에 상을 5개나 받은 2년차 때, 교원평가 만점을 받은 4년차 때의 영광을 뒤로 하고 나는 바닥까지 내동댕이쳐졌다. 엄하게 꾸짖으며 무서운 얼굴로 분위기를 잡으면 망나니처럼 날뛰던 아이들도 순한 양이 된다는데 나는 왜이리 어려울까라며 하루하루를 자책하며 보냈다. 그러면서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학급긍정훈육, 비폭력대화법, 감정코칭, 123매직, 교사역할훈련 등 교육계에서 핫하다는 책은 다 찾아보았다. 그렇게 헤매고 또 헤매다보니 조금씩 민주적인 학급 운영 방식의 길이 보이는 듯 했다. 시골에서 만난 순하고 얌전한 아이들만 있는 곳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개성이 넘치는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아이들을 존중하며 민주적으로 학급을 운영할 수 있다는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언젠가 앙케이트 설문지를 보았을 때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은 재미있는 선생님이라는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요즈음 아이들은 유튜브 세대라 그런지 초임 때 가르친 아이들과도 또 다르다. 집중력이 짧고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며 지루한 것을 싫어하고 재미있는 활동만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사의 딱딱한 강의식 수업이 아니더라도 스마트폰으로 얼마든지 동영상을 통해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다양한 체험을 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그에 발맞춰 교사로서 수업 동기유발부터 수업 마무리까지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활동적으로 구상할 수 있을까 늘 고민이다.
뿐만이 아니다. 학습지도와 양대 산맥인 생활지도도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성, 진로, 독서, 동아리 활동 등 지도해야 할 분야는 많고 전문성은 더욱 요구된다. 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도 따라가야 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교사 자신의 다양한 경험과 끊임없는 연구일 것이다. 여행, 견문, 실험, 체험, 독서 등등. 죽은 지식이 아닌 살아있는 지혜를 제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연찬해야 하는 길이 바로 교사의 길이다.
진정한 스승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정인재 선생님(드라마 학교2013 중)
정인재 선생님의 든든한 지원군, 강세찬 선생님(드라마 학교2013 중)
방송된 지 한참이 지나서야 학교2013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그 드라마가 방영됐던 2012년 당시 옆반 제자의 "선생님, 정인재 선생님 닮았어요."라는 말 한 마디에 눈여겨 본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에서는 장나라가 열연한 열혈 기간제 선생님, 정인재 선생님이 등장한다. 아이들을 누구보다 진정으로 위하고 교육의 발전을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지만 현실적 장애물에 깨지고 무너지기도 하는 선생님. 드라마 속 제자들과 학부모는 그런 선생님에게 등을 돌리기도 하는 등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지만 결국에는 진심을 믿어주고 응원하는 열렬한 지원군이 된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읊었던 정인재 선생님의 진심이 드라마 속 화면을 넘어 내 가슴에 공명을 일으켰다.
나도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칠지언정 계속해서 성장하는 교사로 남고 싶다. 대학원도 가고 학습연구년제도 도전하고, 하고 싶은 게 많은 꿈 많은 교사다. 이 모든 도전을 성취하여 아이, 학부모, 동료 교사들에게 존경받는 교사가 되고 싶다. 사회에서의 교사라는 위치, 내게 주어진 이 길을 건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래오래 기억되는 교사로 남고 싶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