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통합교육 이야기('현장특수교육' 기고)
국립특수교육원에서는 3개월에 한번씩 '현장특수교육'이라는 간행물을 발간합니다.
이번호에 한 꼭지를 맡아 글을 싣게 되어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장애 학생, 비장애 학생들 모두에게 필요하다.
이것은 특수교사로서 수행해야할 과업이다.
이것을 제대로 해 보고 싶지만, 의도한 결과를 얻은 적이 거의 없다.
이것은 여러 사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답은 ‘통합교육’이다.
통합교육을 법령으로 강제하고 있고, 장애이해교육을 연1-2회씩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물리적 통합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실질적인 통합교육은 사실상 어렵다. 그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던, 여러 사람의 도움 –통합학급 교사의 이해관계, 통합학급 학생들의 인식 수준, 통합교육을 위한 환경 조성을 위한 학교 관리자의 의지 등- 이 여전히 미흡하기 때문이다. 특수학교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같은 또래의 일반학교 친구들을 거의 만나보지도 못 한 채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여 본교에서는 최근 몇 년간 일반초등학교와 연계하여 통합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교육과정 편제의 차이, 학생들 이동 과정에서의 안전 문제 등을 감안하여 학기당 1회, 연2회 프로그램으로 구성하였으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대상: 부산혜송학교 4-5학년 23명, 승학초등학교 5학년 48명
2. 목표: 일반학교 학생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사회 구성원으로서 상호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특수학교 학생들에게는 사회성 발달과 의사전달능력 향상시키기 위함
3. 프로그램 운영 일시 및 활동 내용
연번 |
일시 |
내용 |
장소 |
주관학교 |
1 |
2018.5.2.(수) |
공공장소 이용하기 |
국립해양박물관 |
부산혜송학교 |
2 |
2018.10.31.(수) |
샌드위치 만들기 |
승학초등학교 |
승학초등학교 |
이 글은 일반학교 학생들의 시각에서 통합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심리적 또는 행동적 변화가 나타났는지 살펴보기 위해 승학초등학교 친구들의 당시 대화 내용, 행동 양식 등의 관찰, 사전 사후 실시하였던 인터뷰를 바탕으로 각색한 것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다.
5월 2일 수요일, 날씨: 흐리고 비
제목: 혜송학교 친구들을 처음 만난 날
국립해양박물관에 다녀왔다. 현장체험학습? No! 혜송학교 친구들과 통합교육이라는 걸 하기 위해서다. 혜송학교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다. 사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친구를 만난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만나기 전에는 조금 걱정이 되고, 떨리기도 했다.
국립해양박물관 로비에서 혜송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휠체어를 탄 친구도 있고, 다리에 어떤 기구를 차고 비틀거리며 걷는 친구도 있었다. 어떤 친구는 내가 인사를 해도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는가 하면, 또 다른 친구는 나를 너무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혜송학교 3명을 포함하여 우리 모둠은 총 10명이었다. 우리들은 선생님이 내어주신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박물관 구석구석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상현이는 몸을 비틀거리며 걸었는데, 다리 근육이 덜 발달되었고, 신체조절능력이 낮은 친구라고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상현이가 갑자기 팔을 휘둘러 내 등에 정통으로 맞았다. 내가 깜짝 놀라 쳐다봤는데, 상현이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상현이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라며 혜송학교 선생님이 대신 사과하셨다. 조금 화가 났지만, 그래도 꾹 참았다.
은솔이는 자꾸 내 말을 따라했다. 처음엔 짜증이 났는데 한편으로는 ‘얘는 자기 기분이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늘 다른 사람 말만 따라하니 말이다. 은솔이는 대체로 얌전한 편이었는데, 수족관 체험 부스에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돌변하였다. 너무 미끌거려서 만지고 싶지도 않았던 물고기들을 양손으로 덥썩 잡는게 아닌가. 은솔이의 대범함은 인정!
어느새 박물관 정복 미션이 모두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혜송학교 친구들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많이 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우리가 싫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 친구들의 얼굴이 또 생각날 것 같다.
10월 31일 수요일, 날씨: 맑음
제목: 샌드위치 만들기 하던 날
혜송학교 친구들이 우리 학교에 왔다. 지난 1학기 때 만난 후로 딱 5개월만에 보는 것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터라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했는데, 그 친구들이 우리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기억이 또렷해졌다.
은솔이가 우리 모둠이 되었다. 난 너무 반가워서 연신 손을 흔들며 인사했는데, 은솔이는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했다. 은솔이는 눈을 맞추며 인사하는 것이 어려운 친구라고 선생님이 설명해주셨지만 그래도 내심 서운했다. 식빵, 햄, 치즈, 방울토마토를 챙겨와 샌드위치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때 옆 모둠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상현이가 식빵을 양손에 움켜쥐고 위아래로 막 흔들자,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우리 반 지연이가 소리를 친 것이다. 식빵은 상현이의 손에서 종잇장처럼 찌그러지고 빵 부스러기가 책상 위를 뒤덮었다. 친구들이 어쩔 줄 몰라하자 선생님이 달려오셔서 정리를 도와주셨다. 상현이는 뭐든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샌드위치 완성! 우리반 친구들끼리하면 금방 만들고 벌써 다 먹은 후 정리까지 마쳤을 시간이었지만, 혜송학교 친구들을 배려하며 함께 만드니 시간이 배로 걸렸다. 하지만 어려운 관문을 거쳐 완성했다는 기쁨에 샌드위치는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한편 나에게는 쉽고 당연한 일이, 그 친구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운동장에 나가 한바탕 뛰어놀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두 번의 만남이었지만, 친구라고 부를 수 있고 또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혜송학교 친구들아, 내년에도 또 보자! 꼭!
단 두 번의 만남을 통해 무슨 통합교육이 될까 싶었지만,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그 의구심은 싹 사라졌다. 3시간 가량 함께 활동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고, 서로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승학초등학교 학생들의 타인에 대한 깊은 배려심이다. ‘장애’에 대해 궁금해 하기보다는 혜송학교 친구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하면 되는지 묻는 친구들이 많았다. 교사에게 질문을 할 때에도 혜송학교 친구들이 들으까봐 조심조심하며 살짝 묻곤 금방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계단을 내려갈 때에도 혜송학교 친구들의 걸음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내려가며, 휠체어에 탄 친구의 눈높이에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거 통합교육은 비장애 학생들에게 사실적 전달을 통한 이해와 배려를 강요하였다. 장애의 종류를 알려주고, 함께 생활하는 친구의 ‘장애’에 대해 설명해주며, 그 장애로 인한 어려움이 있으니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라는 식의 교육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오히려 비장애 학생들이 ‘장애명’에 갖혀 장애 학생들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하고 장애 학생들은 불쌍하며 무조건 도움을 주어야할 대상이라고 여길 소지가 컸다.
이러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먼저 ‘장애’를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비장애 학생들 스스로가 장애 학생들과 실제로 함께 생활해보며 느끼게 되는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고, 그 어려움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면 좋을지 방법을 토론하며 장애를 가진 친구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어려움이 있는 친구들은 없는지 주위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모든 사람의 외모, 성격, 취미, 취향 등이 다르듯 다름은 당연한 것이며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이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충분히 느끼고 이해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 뿐이다.
서로 다른 우리가 만들어 갈 재미있는 세상, 행복한 세상 만들기. 이제 다시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