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배우다] 워싱턴,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걷다
[걷다가 배우다]란 주제로 글을 쓰면서 내가 왜 ‘걷다’와 ‘배우다’를 연결 짓게 되었는지 점점 뚜렷해진다. 특정 장소나 공간, 길 또는 풍경을 따라 걸으면서 접하게 되는 모든 만남과 경험들은 그냥 스쳐 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보태어져 이해의 폭을 넓혀 주고, 새로운 질문과 또 다른 생각을 만들어내어 나를 움직인다. 이렇게 ‘걷다’와 ‘배우다’ 사이에는 ‘생각하다’의 과정이 스며들어 있다. 결국, 내가 ‘배우다’를 ‘움직이(인)다’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 때, 움직이(인)다는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모두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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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이 길게 올라간다. 끝난 후 음악이 자막만큼 길어서 그 사이 여운을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주말에 영화,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 2015)’를 보고 (물음표를 통해) 떠오르는 해시태그는 #기억, #정체성, #진실, #역사, #조국, #인간존중, #생명윤리, #다양성, #가족……. 사실 이보다 더 많은 키워드가 끊임없이 떠오른다. 여기에 영화 이야기는 자세히 적지 않겠다. 대신 이 영화로 인해 지난 여름방학의 길고 강렬했던 그 하루의 걷기를 떠올리며 글을 쓰려고 한다. 그 걷기는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 몰(National Mall)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박물관(Holocaust Memorial Museum)에서의 경험이다.
이 곳은 박사과정 공부할 때 듣던 박물관 교육 전공과목에서 주말을 이용한 견학 수업으로 한 번 가본 곳이다. 처음 갔을 때는 다른 박물관과 미술관도 함께 방문해야 하는 하루코스 일정이라 자세히 보지는 못했었다. 기회가 되면 꼭 하루를 온전히 바쳐 이 박물관만 열심히 걸으며 보리라 마음먹고 돌아왔었다. 다녀온 지 수년이 지났어도 전시의 시작부터 끝에 다다르기까지 공간과 공간 사이의 길이 관람자의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이때의 기억으로 올 여름 내 발길은 한 번 더 그쪽으로 향했다.
박물관 1층의 내부 전경 ⓒ 손명선
홀로코스트 생존자로부터 직접 듣다
어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나 일단 들어서면 공간의 위치를 살펴보고 어디서부터 관람을 시작할 것인지를 정하게 된다. 1층 안내 데스크를 지나 아래 강당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금방 시작될 강연회 안내가 있어서 본 전시 보기를 잠시 미루고 아래로 내려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로 들어차 있는 공간에 은발의 곱게 차려 입으신 할머니가 사회자와 들어오셨다. 진행은 사회자가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무대 위의 작은 모니터로 사회자와 생존자 분의 말이 그대로 타이핑 되면서 청중에게 보였다. (가끔 할머니의 말이 중얼거리듯 들리고 불분명했지만 그대로 타이핑이 되었다.) 폴란드에서 자신이 어떤 생활을 했고 나찌의 영향 아래 어떻게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이 어땠는지에 대한 개인의 역사를 대담형식으로청중들에게 전했다.
ⓒ 손명선
홀로코스트 생존자에게 질문하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두근두근 쿵쿵. 심장이 뛰었지만 안하면 후회할 것 같아 청중들 사이를 가르는 계단 위 마이크 앞에 섰다. 영어로 질문을 해야 하니 좀 더 긴장했던 것 같다. 강연자는 미국으로 건너와 교사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이 역사 속 진실을 통해 꼭 알려주고 싶었고, 꼭 가르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하니 내가 한 말이 그대로 무대 위 모니터에 타이핑이 되었다. 내 질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하기 위해 힘쓰느라 사실 그분의 대답을 집중해서 듣지는 못했다. 그래도 답변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은 학생들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나 존엄성’은 꼭 가르치고 싶었다는 것.
ⓒ 손명선
질문하고 나오는 길에 강연을 마친 그 분께 사인을 받는 자리가 있었다. 그곳에서 사회자도 박물관 관계자도 서 있었는데 나를 알아보며 질문을 해주어 고맙다고 하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적절한 질문이어서 행사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아끼지 않으며 박물관 건물을 지은 건축가가 누구냐는 질문에도 척척 대답해주고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 가면 관련 책자도 살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존중해 주고 응원해주는 그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으쓱해져서 1층으로 본 전시를 보기 위해 올라갔다.
ⓒ 손명선
역사적 장면의 '목격자'가 되다
해외여행 중 가장 긴장할 때가 남의 나라에 도착해서 입국심사를 받을 때가 아닐까? 비행기가 착륙하고 내 여권에 입국허가 도장이 찍히면 그때서야 긴장이 풀리고 이제부터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구나 한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의 전시 관람도 시작부터 긴장감을 주었다. 본 전시 관람을 하기 전 신분증(Identification Card)을 하나씩 받는다. 첫 장을 열어보니 홀로코스트 희생자 중 한 명의 프로필과 사연이 적혀 있다. 박물관의 의도를 상상해 보면, 관람객 입장보다는 홀로코스트 ‘목격자’(혹은 '경험자')의 입장에서 전시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 준비를 돕기 위한 물건인 셈이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리는 동안 그 사람의 프로필을 읽다보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자세히 보기에도 끔찍한 장면에 직면하게 되었다. 첫 걸음부터 충격을 받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더더욱 긴장 하게 되었다. 이제 드디어 전시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함께 걸을 준비가 된 것이다.
ⓒ 손명선
침묵 속에서 걷다
첫 장면부터 강렬하여 말문이 막혔다. 엘리베이터를 꽉 채워 함께 내렸던 관람객들도 일시에 얼음.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여름방학 성수기라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이 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에도 예외 없이 밀려들었지만(물론, 시간대마다 적정 관람객 수를 조정하기 위해 미리 관람예정 시간을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하지만) 시작부터 유난히 조용하다. 전시 사진과 전시물, 지도, 자세한 전시 설명들을 모두들 주의 깊게 읽으며 전시 관람을 한다. 공통의 느린 걸음걸이가 관람자들 각각을 일체감으로 묶어주는 느낌을 받았다.
통로의 유리벽엔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 손명선
공간이 주는 상상력으로 걷다
전시공간에는 전시작품 또는 전시 오브제 각각이 건네주는 메시지나 내용들이 있지만 그 각각의 것들이 서로 관계 속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보게 된다. 그보다 한술 더 떠서 이야기 한다면, 전시 공간의 배치나 흐름 자체가 전시물들과 어우러져 관람자를 강력한 힘으로 안내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종종 만난다. 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Holocaust Memorial Museum)도 그랬다. 관람객의 시선과 동선, 감각을 통해 전시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전시 디자인에 신경 쓴 박물관이다. 공간도 공간 사이도 모두 중요하다. 좁아지고 높아지고 어두워지고 밝아지고 심지어 박물관의 서늘한 온도도 (계산된 건지 아닌지 모르지만) 오싹한 느낌을 가중시킨다. 빛과 어둠, 그리고 그림자. 책 제목으로 접한 듯한 이 세 글자의 조합이 전시 내용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희생자들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간
ⓒ 손명선
ⓒ 손명선
ⓒ 손명선
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걷다
너의 목소리는 물건으로부터 나오고 공간으로부터 나오고 공간에서 새어나오는 빛으로부터 나왔다. '목격자'로서 충분히 찾아낼 수 있는 울림있는 목소리였다. 물리적으로는 비디오나 오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생존자의 목소리로 그들의 절망, 고통, 희생의 자전적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고 사건의 스토리를 전하기도 하였다.
ⓒ 손명선
바르샤바 게토에는 나찌 치하에서 일어나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들을 틈틈히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학의 역사학자들, 수십 명의 작가들, 교사들, 랍비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우유캔에 자신들이 쓴 일기, 문서, 포스터 등을 타임캡슐처럼 넣어서 언젠가 끝날 그 지옥같은 나날들의 진실을 후대에 알려주기 위해 바르샤바 거리에 묻었다고 한다. 이렇게 무서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안위도 어찌될 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진실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 손명선
부모와 격리 된 채 전쟁과 수용소 생활을 겪는 어린이들은 상상만 해도 착찹한 심경에 휩싸이게 한다. 그보다 더한 사실은 유대인들을 대학살하던 그 기간 동안 150만명이나 되는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박물관을 걷는 도중 만난 어린이들의 그림은 그들의 심경을 전해듣기에 충분했다.
ⓒ 손명선
걷다가 오감으로 느끼다
통로에 들어서자 알싸하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신발들이 한 공간에 널부러져 있는 광경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희망을 잃은 신발들이 이곳에서 관람자들과 인간에 대한 존엄과 삶을 향한 희망에 대해 다시 물음표를 던진다. 삶이 빠져나간 물건들을 마주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서대문 형무소에서의 관람 경험처럼 실제 장소에 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만큼의 전율도 느껴졌다.
ⓒ 손명선
미술작품과 함께 발걸음을 멈추다
한참을 참혹하고 믿기 힘든 역사적 장면의 '목격자'로 공간 속 여행을 하다 긴 계단을 내려가자 하얀 벽면에 하얀 작품들이 걸려있는 공간을 맞이하였다. 수많은 텍스트와 시각적 이미지와 생존자들의 목소리, 희생자들의 사진들과 직면하다 빈 공간을 보니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비바체로 마구 몰아치다 드디어 나온 쉼표 같았다. 온몸으로 작품을 관람한 느낌이었다.
ⓒ 손명선
ⓒ 손명선
질문이 나와 너를 연결하다
여름 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조금 누그러진 시각에 박물관에서 나와 내셔널 몰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멀리서 누가 부른다. 돌아봤더니, “Are you the Korean teacher who made a question in the museum?”한다. “맞다.” 답하면서 동시에 이 사람이 아까 그 강연장에 함께 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인가보다 했다. “You asked a very important question.”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반응을 보니 강연장에서 용기 내어 마이크를 잡은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목소리를 내어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 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각을 넓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순환의 첫걸음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이 글을 쓰다보니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1999)
폴란드로 간 아이들(2018)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