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배우다] 인천, 신흥동 일대를 걷다
걷다가 배우다
장소와 장소가 만나 풍경을 이룬다. 장소와 장소가 만나 만들어지는 풍경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이야기가 공존한다. (동인천역에서 도보로 7분 정도 거리에 있는) 율목도서관 일본식 마당 아래로 펼쳐진 언덕을 지그재그로 내려오면서 신흥동의 재개발과 보존의 사이사이 이야기에 직면하였다. 재개발과 보존의 양극단에서 풍경의 리듬이 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처음 온 장소의 지나온 이야기, 현재의 이야기, 미래의 이야기를 엮어서 함께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낯설어 살짝 영화 속 세트장 사이를 돌아다니는 느낌도 났다. 동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낯설었다. 그 이유는 내가 그 속에서 산 경험이 없고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의 끈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사람이 사라진 공간 속에는 물건이 남고 흔적이 남았다. 뜯겨나간 건축물의 낡은 부분들, 빛바랜 페인트, 깨진 기와들. 이 건물들도 모두 사람을 맞이한 첫날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모두를 떠나보내고 시한부 신세가 되었다. 짧은 시간 속에 사라질 장소와 장소 사이를 걸으면서, 그 과정을 기록하는 건축가와 사진가, 그림, 다큐 영화로 남기는 분들이 있어 다행이다 생각하면서도 같은 기억과 모습으로 더 이상 발 디딜 수 없을 장소와 풍경에 대한 아쉬움은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이 동네에서 한 평생을 사신 분들이나 수십 년 살다가 이사한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얼굴이 달라지는 것이라 정말 큰 별일일 것이다. 그래도 두 번째 답사에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떠나기 전까지 “지긋지긋하다. 어서 여길 벗어나야지.”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떠나고 남기는 기억과 생각들은 다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한다는 생각. 눈물을 머금고 떠나는 사람도 있겠고 새로운 삶터로 홀가분히 떠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이곳에서 현재 일어나는 일을 좋다 또는 나쁘다, 부와 가난, 새 것과 헌 것의 이분법적 사고로 파악한다면 너무 많은 목소리를 간과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이것은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할 우리의 이야기이다.
동인천 탐험단의 신흥동 답사에 참가하다
인천 구도심인 동인천, 신흥동의 재개발과 보존 사이를 기록하고 계신 건축가와 사진가, 동아시아 일식건축을 연구하는 건축학자, 인천도시역사관 관장님인 역사학자가 이끄는 답사를 3주에 걸쳐 토요일 마다 3시간씩 함께 했다. 재생건축에 대한 도시재생 뉴딜지역이자 재개발 지역인 두 얼굴을 가진 신흥동, 일제 강점기 삶의 흔적과 기억이 장소와 건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인천 신흥동 일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먼저 배성수 관장님의 글을 빌려 소개한다.
신흥동 일대 1883년 개항한 인천 제물포를 중심으로 일본, 청국의 전관조계와 다섯 나라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각국공동조계가 설정되었다. 개항 1년 전 영국과 체결한 조영수호통상조약에서는 조계지 밖으로 10 리 이내의 구역을 잡거지로 정하여 외국인의 토지 및 가옥소유와 임차가 가능하게 했다. 개항장은 외국인 전용 주거지인 조계지와 조선인과 외국인이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잡거지로 구성된다.
조계 외곽 잡거지에 위치한 신흥동 일대로는 개항 초기 조선 상인과 부두노동자들이 모여 살면서 화개동과 기정동이라는 행정구역에 편제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이곳에 살던 조선인들은 조계를 벗어나 잡거지로 진출하는 일본인들에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조선인 마을이었던 이곳에는 하나쵸우[花町]이라는 일본식 지명이 붙었다.
한일병합 후 신흥동 해안을 매립하여 이곳에 일본 자본의 대규모 정미공장이 들어섰고, 공장 인근으로는 일본인 간부의 주택과 조선인 노동자가 거주하는 줄 사택이 지어졌다. 1938년 율목도서관 남쪽 구릉 일대로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실시되어 긴담모퉁이길 초입에 인천부윤 관사를 비롯해 관공서 관사가 들어섰는데 광복 이후까지 주민들은 이 골목을 관사골목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인천도시역사관 관장, 배성수) |
재생건축가와 함께 걷다
이의중 건축가는 건축재생에서 건축물이 이후 세대에 어떤 가치로 전해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하였다. 즉, <건축물의 가치를 알고 고쳐 쓰자>를 강조하며 작업에 임하고 있다. 이 분은 동인천 빙고(1920년도의 얼음창고를 2015년에 현재의 아카이브 빙고로 재생건축)를 비롯하여 그 일대의 과거의 건물에 현재의 쓸모와 미래의 가치를 더하여 숨을 불어 넣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건축은 삶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2002년 인테리어 붐이 일어나면서 집 고쳐주기 TV 프로그램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의 '집 고치기'는 Before와 After가 확실한 인테리어 정비에만 초점을 두었다고 한다. 반면, 그가 중요시 여기는 재생건축은 원래 갖고 있던 그 건물만의 건축적 DNA를 살리면서 그 건축물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건축가의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한다. 또한 재생의 과정을 거친 건물들은 지역공동체 속에서 다양한 이야깃거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과 함께 또 다른 이야기를 계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 부분은 나도 크게 동감하는 부분이다.
덤으로 기술적인 측면이지만, 건축가로부터 전해들은 전문용어인 '나가야 주택'이 무엇인지는 답사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지난 번 [동인천 건물들]이란 시민대학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몇 번 보았지만 이번 답사에서도 지붕의 색깔은 다르지만 길게 이어진 하나의 건물로 착각할 수 있는 나가야 주택을 볼 수 있었다.
신흥동 나가야 주택 나가야[長屋] 주택이란 일본식 연립 주택 또는 다세대 주택의 일종이다. 여러 세대가 나란히 이어져 있으면서 외벽을 공유하는 건물, 또는 긴 하나의 건물을 수평으로 구분하여 각각에 출입문을 만든 형식의 주택을 말한다. 신흥동 일대에는 이러한 나가야 주택이 상당수 남아 있는데 일제강점기 개항장 인근에 살았던 조선 서민들의 대표적인 주거양식이라 할 수 있다. (배성수) |
지붕색은 집의 구분을 보여준다.
동아시아 일식가옥 연구 학자와 함께 걷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쓰시는 분인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님(한양대학교 교수)은 일본 건축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설명해 주셨다. 현재 어린이 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는 율목도서관의 별관은 리키다케라는 일본인의 별장이었다. 율목도서관에서 지난 번 답사 때에는 일본식 '정원'이라고 들었는데 '마당'이라고 표현을 하셔서 그 차이를 여쭈어 보니 집앞의 작은 공간을 수목과 바위로 꾸민 것은 '마당'이고 관광지에서 만날 수 있는 큰 규모의 것은 '정원'이라고 하면 된다고 정리해 주셨다. 또한 도시 내의 마당은 공동마당의 특징을 갖고 있다고도 알려주셨다. 다른 형태의 지붕의 구조, 공동주택의 구조를 직접 그림으로 그려가며 설명해주시며 이해를 돕는 세심함을 보이셨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남겨진 일식가옥에 대한 설명을 직접 일본인의 지식과 관점을 통해 듣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일본인이 거주하면서 한국 기후에 맞춰 개조한 모습이 보이는 이 집은 돌출된 창문의 2중창, 전쟁 이후에는 시멘트로 밖으로 보이는 기둥들을 덮어 칠한 흔적이 보인다고 하셨다.
역사학자와 함께 걷다
역사학자와 걷는 답사는 같은 장소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을 흔적과 단서를 통해 숨은 그림 찾기 하는 과정과도 같았다. 한 공간이나 장소에 대한 다양한 시간대의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니 도인이 따로 없었다. 상상력이 자동으로 발휘되는 걷기의 과정이었다. 과거에 유곽이던 건물이 지금은 골목집이란 평범한 식당(그래도 이전 모습을 많이 유지하고 있음)이 되어 있고, 양조장 건물은 시의 주차장이 되어 있다. 처녀목욕탕(처녀작처럼 처음 만들어진 목욕탕이란 이름인데, 최근 성인지 감수성교육에서 부적합 용어로 배운 기억도 떠올리며)의 굴뚝은 현재 '불고기 7900원'이라고 크게 써 있는 현수막 걸린 건물과 중첩되어 보여진다. 정미소였거나 쌀 창고였던 곳은 현재 공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고층 아파트 앞쪽에 커다란 굴뚝만 남아 장소의 과거를 말해준다. 답사 중간에 가장 의미심장하게 들었던 이야기는 시가 관리하는 주차장이 된 예전의 양조장 앞에서였다.
배성수 관장님은 장소성과 역사성이 소중한 건물들은 때려 부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복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하시며 복원과 재현의 차이를 설명하셨다. 복원은 그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도 함께 전할 수 있는 것이고 재현은 뼈대만 앙상하고 알맹이 없이 뭉개어 맥락없는 조형물과도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사실, 역사의 흔적은 다니면서 정말 많았다. 단지 못보고 지나칠 뿐이고 그냥 익숙하게 우리의 삶 속에서 묻혀 가고 있을 뿐. 물론, 삶의 고달픔 속에 이것 저것 다 챙길 정신이 없었을 형편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건물을 지을 때 지형을 대하는 태도는 일본과 우리나라가 다름도 설명해 주셨다. 한국의 전통가옥은 경사지를 있는 그대로 이용하지만 일식 가옥은 축대를 쌓고 지대를 평평하게 만들어 집을 짓는 특징이 있다. 이것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인천의 '긴담모퉁이길'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같은 장소(걷는 길의 동선이 이끄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를 누구와 함께 걷느냐에 따라 보고 듣는 것이 달랐다. 이번 답사를 세 번 모두 참여하길 잘했다 했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답사 인솔자 외에도 매번 8명 남짓 되는 참가자들이 함께 걸었는데 함께 향하는 길에서 자신의 관심과 배경에서 올라오는 질문들을 해주셔서 덕분에 특정장소, 건물, 길에 대한 더 폭넓은 이해가 가능했다.
이 글에는 걸어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오롯이 적기보다 문득문득 떠오른 생각과 배움의 기억을 적었다. 그 지역의 기억을 남기며 재개발이나 도시재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손선생의 책꽂이에서 관련 도서를 몇 권 소개하고 싶다.
승효상(2012).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컬처그라퍼
심보선 외(2013). 99%를 위한 주거: 더 나은 건축을 위한 상상과 제언. 북노마드
작은 것이 아름답다(2018, 9월호) 재생건축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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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집의 시간들(2017)
다큐영화, 말하는 건축가(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