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맹 탈출_05] 제자의 결혼식에 다녀와서
(신부가 직접 그리고 디자인한 청첩장입니다.)
이틀 전 제자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좋은 날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륵 흘렀습니다. 아마도 4학년이던 아이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자신의 짝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감격했었나 봅니다. 그림처럼 ㅁ자 한옥(신부네 가족의 한식당 건물)의 오른쪽 벽면을 따라, 그리고 그 옆을 따라 늘어선 꽃담을 따라 두 줄로 나란히 선 하객들이 저 끝에 서 있는 신랑, 신부를 바라보며 서 있고, 주례 없이 신부 친구인 사회자가 무선마이크를 들고 이리저리 다니며 신랑신부에 대한 덕담을 부탁하여 하객들의 참여가 식의 일부가 되는 결혼식이었습니다. 또, 꽃담 위 기타를 든 친구가 노래도 불러주고 이보다 더 간소할 수 없는 말로만 듣던 그런 작고 예쁜 결혼식이었습니다.
마당에 차려진 유기농 부페음식들이 왠지 신랑, 신부의 건강한 마음과 맥을 같이 하는 느낌이 들어 음식 하나하나 골고루 큰 접시에 담아 신부 쪽 친구들 자리로 예약된 곳에 앉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친구 한 명, 중학교 친구 한 명, 고등학교 친구 네 명, 대학교 친구 세 명, 직장 동료 두 서너명. 저는 선생님 대표로 참석한 듯 하여 살짝 기분도 좋았습니다. 제자의 어머니께서 신랑신부와 가까운 인연이 있는 사람들만 초대했다고 하셔 심증에 물증을 살짝 더해 우쭐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6반이었는데요. 선생님 옆 반이었습니다.
민정이랑은 초등학교는 같이 나오지 않았지만 고등학교에서 만났구요.
선생님 반 지날 때마다 게시판의 선생님 자화상이 선생님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첫발령 학교 제자의 결혼식에 가서 두 번째 학교와 인연있는 학생도 만납니다. 이것도 인연이지요. 아는 척 해준 것이 고마워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게다가 중학교 친구는 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훈수까지 드니 우쭐함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그림 잘 그리고 성격도 좋아 전학오자마자 씩씩하게 친구들과 잘 지내던 민정이는 모 방송국에서 드라마 세트, 아이돌 컴백 무대 디자인 일을 했는데요, 일하면서 만난 인연을 반려자로 맞았다고 합니다. 결혼식에 가기전까지 민정이와는 4학년 교실에서의 인연 이외에도 몇 년 걸러 한 번 씩 만날 있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원 준비를 할 때에는 민정이가 미술실기 모델이 되어 주었고요, 집에서 방정리를 하다가 4학년 민정이가 그린 그림을 발견하여 (몇 년 동안 연락이 뜸했지만) 사진파일을 보내며 다시 연락이 되기도 했습니다.
(4학년 민정이의 자화상입니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자기 소개서를 제게 검토해 달라고 하며 또 몇 년 만에 다시 만나기도 했고, 방송국에서 첫 월급 탄 돈으로 산 머그컵 세트를 학교로 보내주어 다른 선생님들께 자랑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고마운 제자이기도 하고, "선생님, 오늘 뮤직뱅크 꼭 보세요. 엑소랑 미쓰에이 컴백무대 제가 디자인했어요."하며 문자를 꼭꼭 보내주던 제자입니다.
그런 민정이의 결혼식에 다녀와서 선생님하길 참 잘했다 또 한 번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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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반에 있는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은 10년 후, 20년 후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1년 동안의 인연이 아니라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시간이 가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면 얼마나 특별한 인연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