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기억하기
제가 사는 청주에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눈이 내렸습니다.
함박눈.
눈이 내리는 것을 발견한 것이 밤 11:47이었기에
저는 잠시나마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와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행복한 순간들을 동시에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창문을 열고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 버튼을 눌러 보았습니다.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열심히.
예전에 회사를 다니던 시절,
프랑스에 출장 갔을 때가 떠오릅니다.
도착한 곳은 비록 시골의 한 공장이었지만
프랑스까지 와서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업무 특성상 늘 혼자 출장을 갔었기에
주말에 긴 시간 차를 운전해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준비는 완벽했습니다.
여행 가이드북, 카메라, 귀에 꽂을 MP3까지...
하지만 이 모든 준비가 쓸모없는 일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디를 걸어도 아름다운 거리,
어디서나 흘러나오는 수준 높은 길거리 연주,
그때 그때 마음 속에 깊이 스며드는 로맨틱한 분위기.
하지만
그 분위기에 취하면서도
저는 사진을 열심히 찍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진을 찍느라
그 순간을 눈에,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진을 찍지 않으면 그 순간들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저는 사진을 열심히 찍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당연하게도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사진이나 글 없이는 기억을 되살리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또, 때로는 기억은 나지만
사진이 없어 아쉬운 순간들도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진이 없어도 또렷이 기억이 나는 그런 순간들 역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7년이 지난 지금,
파리에서 찍은 그 때의 그 사진들보다
그 때, 그 순간 제 마음 속에 저장되었던 기억과 느낌들을
더 많이 꺼내보고,
그 때의 그 기억을 행복하게 추억하는 것을 볼 때
저에게는 그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때로는
행복했던 그 순간을 온전하게 기억하는 것은
사진도 아닌, 영상도 아닌,
그 순간에 제가 느꼈던 그 마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