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주인공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아빠’ 혹은 ‘우리 아버지’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는지요?
저는 어렸을 때는 어려움이었다가,
미움으로 잠시 바뀌었다가
이제는 애틋함, 이해,
때로는 사랑이라는 단어도 조금씩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아들은 나이가 먹어 가면서,
아버지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참 오래 걸린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정말 성실하고 어마어마한 끈기를 가지고 계신 훌륭한 사람이지만,
자식들에게는 감정 표현을 거의 안 하시는
가부장적인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식들이 당신이 원하지 않는 길을 갈 때,
반대도 크게 하시고,
그 표현을 아프게 하신 경우도 많았아서
제 마음에는 그렇게 가끔 한번씩 생긴 상처가 아물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가장 최근 일로는
제가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 두고,
수능을 준비해서 교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입니다.
그 후로 정말 오랫 동안
집에서 마주쳐도,
길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도, 본 척도 안하시던 모습.
공부하다가 점심 때가 지나서
부엌에서 늦은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방에서 나오시다가 그것을 보시고는 기분이 나빠지셨는지
보란 듯이 곧바로 방문을 쾅 소리나게 닫고 들어가시던 모습.
아버지가 제 마음 속에서
미움으로 바뀌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대 입학 후,
잠시 일했었던 근처 병원에서
어머니뻘 되시는 사무관님께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아버지가 그러시는 이유는
자식이 힘들게 사는 것이 싫어서,
그런 불확실하고, 힘든 길을 내 자식이 가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파서
그러는 것이라구요.
아버지가 저에게 했던 행동들만 생각하며 아버지를 미워했던 저에게,
제가 아버지께 어떤 불효를 했고,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했었던,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해주었던,
정말 귀한 말씀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셨다고 해서
행동을 함부로 해서는 안되겠지만,
그 말씀이 제가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는
출발점이 된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랬던 제가 이제 곧 아빠가 됩니다.
미웠었지만,
이제는 사랑하게 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저도 곧 아빠가 됩니다.
자연스럽게
육아에 대한 각오와 앞으로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 지에 대해서
가슴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서
어느 정도 자라면 꼭 이 이야기를 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사랑한다.
아빠가 원하는 것은 네가 잘 되는 것 밖에 없어.
아니, 네가 잘 되지 않아도, 공부를 잘 하지 못해도
그래도 난 너를 사랑해.
넌 언제까지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야.
네가 내 아들(딸)이기 때문에,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해.
정말 사랑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마음 속으로만 꼭 감추어두지 않고,
직접 표현을 통해, 전달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두가 주인공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잘 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많이 못 할 수도 있겠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가슴 속에 넘쳐 흐르는 사랑.
어떤 때에는 나의 생각과 상관없이
자식이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기도 하겠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마음 속에 가득 넘치는 사랑.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사들은
우리의 또다른 아들, 딸들인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그러한 마음들을 늘 간직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모두가 주인공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버지인 나는,
교사인 나는,
내 자식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내 제자인 우리 아이들을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겠습니다.
술과 마약,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이 아이 안에 있는 공허함을 걱정하십시오.
이 아이는 지금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았고,
이 아이가 원하는 건 바로 사랑이에요.
이 아이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알려주면 됩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널 사랑한다.
네가 지금 술하고 마약하는 것,
아버지는 네 걱정이 되고, 나중에라도 너에게 나쁘게 될까봐 걱정하는 것이지,
네가 술을 마신다고, 마약을 한다고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아버지의 사랑은 그런 게 아니야.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알려주지 않으시면
아이들은 모릅니다.
그것이 진리인데,
진리를 말해주지 않으면 공허감만이 있고
진리가 없는 그 자리에 많은 거짓들이 얼마나 이 아이들을 공격하는지
제가 그 전략을 아버지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지요.
- 故 이민아 목사님의 ‘땅끝의 아이들’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