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위대함
저는 36살에 교대를 입학한 덕분에,
그러지 않았으면 못 만났을 인연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학교 동생들부터,
역시 사랑하는 고등학생, 중학생 제자들.
회사에 계속 다녔었다면
부장님, 차장님, 과장님 등 어른들과 함께 하는
사무적인 생활이 주가 되었을 저에게
이러한 인연들은
정말 새롭고, 축복이고, 또 감사한 인연들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을 열고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남녀노소의 차이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며칠 전, 오랜만에 혜림이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혜림이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제가 학원에서 근무하면서 만난 고등학교 학생(지금은 대학생)입니다.
작년에는 저 역시 임용고시 준비 때문에
혜림이의 고3 시절을 함께 해주지는 못했지만
늘 성실하고 착실한 모습에
제가 많이 아끼고, 잘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멋진 제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혜림이의 꿈은 교사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연락을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수능 시험에서 평소보다 점수가 잘 안나와서
좋은 대학교 사회 복지학과에 진학을 했습니다.
우리가 만난
그 날은 별다른 말 없이
혜림이의 고민들을 조용히 들어주었습니다.
나처럼 늦게 교사가 되고 싶어서 교대에 온 사람도 있으니
언제든지 마음이 남아있으면
다시 도전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혜림이를 가르치는 동안에
이미 수없이 많이 했었던 이야기이기에
그 날은 별다른 말 없이
혜림이의 걱정들을 조용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혜림아!
만약 너가 사회복지사가 된다면, 정말 위대한 사회복지사가 될 것 같아!!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혜림이의 따뜻함과 온화함,
그리고 성실함을 잘 알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겠지만,
그 때는 이상하게 제가 평생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었던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습니다.
혜림이는 저의 ‘위대한’이라는 표현에
‘제가 무슨...’이라는 말과 함께
그럴 리 없다는 듯 함박 웃음을 터뜨립니다.
하지만 故 장영희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아주 위대한 순간들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위대한 순간,
내가 나의 모든 재능을 발휘해 위대한 일을 성취할 날을 기다린다.
그러면서 내게는 왜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하고 슬퍼한다.
그렇지만 그 위대한 순간은
우리가 모르는 새 왔다 가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하찮게 생각하는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무심히 건넨 한마디 말, 별 생각 없이 내민 손, 스치듯 지은 작은 미소 속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대통령에게도, 신부님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자동차 정비공에게도
모두에게 골고루 온다.
- 故 장영희의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中 -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혜림이가 교사가 되든, 사회복지사가 되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열정으로 주어진 일을 사랑하는,
그런 위대한 사람이 꼭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혜림이와 저의
10년 후, 20년 후 모습은 과연 어떨까요?
그 때는 이루어놓은 업적 같은 것은 없더라도,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감사함으로 기쁘게 해나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스물과 마흔의
또 한 번의 10년을 각자 위대하게 살아보자고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였습니다.
노자 曰,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려 너무 애쓰지 말라. 진정한 위대함은 위대하지 않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