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것과 늦는 것
저는 참 느린 사람입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해서 선택도 느리고,
어떤 일을 시작한 후에도
몰입하는데 도달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며,
어떤 일을 잘 하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걸립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신중함으로 좋게 봐주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게으름 또한 같이 있음을
저 스스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참 늦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성격이 여유롭다 보니,
어떠한 일에 대해서 늦었다는 생각을 잘 안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시기적으로 늦었다 할 지라도
주변과 비교하고, 주변의 눈치를 보기보다
상황이 허락되는 한에서 거리낌 없이 해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용기라고 좋게 봐주기도 하지만,
사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비효율적이라 안 하는 일을
저는 비효율적이라도 그냥 제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성격 덕분에,
바로 그 늦음과 느림 덕분에,
저는 주변을 한 번씩 더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제가 선택한 이 삶에 대해서
조금은 더 큰 감사함과 행복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올해 개학이 늦어지면서
학생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마음에
담임을 맡게 된 학생들의 학생부를 몇 번이나 정독해 보았습니다.
그 중에 유독 눈에 띄는 문구가 하나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꿈이 매우 확고하며,
잘 하고 싶은 욕심에
수업 시간 내에 주어진 과제를 다 완성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지만
늘 최선을 다 하고,
과제의 완성도 또한 매우 높음.
주어진 시간 내에 완성하는 연습을 조금만 하면
많은 발전이 기대되는 학생임.
도대체 어떤 아이길래,
이렇게 어린 나이에 벌써 자신의 꿈을 확고히 정했을까?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 하는 멋진 모습은
누구에게 배웠을까?
궁금증이 커졌습니다.
늘 느리고 늦는 저로써는
그 궁금증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개학 후 그 학생을 만났습니다.
학생의 이름은 은지.
꿈은 가수이며,
어리지만 밝고, 심지가 굳은 훌륭한 아이입니다.
저희 학교는 주1회 등교인지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은지가 1번이었던지라,
거리 두기를 하면서 한 줄로 급식을 먹으러 갈 때
은지에게 잠시 이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왜 가수를 하고 싶은지...
어쩌다 그런 멋진 꿈을 가지게 되었는지...
선생님,
저는 노래 부르는 것이 너무 좋아요.
조금 더 크면
노래 가르쳐주는 학원도 다니고 싶고,
가수가 될 수 있도록
공부도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들을 거에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토록 자신의 꿈을 사랑하고, 열심히 이루어가고자 하는 그 마음이
너무 기특하고, 예뻐 보였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꿀벌은 몸통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아서
원래는 제대로 날 수 없는 몸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꿀벌은 자기가 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당연히 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날갯짓을 함으로써 정말로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느린 것과 늦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 있어서
은지는 분명히 느리기는 하지만, 늦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느림도
자신의 일을 더 잘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느림이기에
은지의 느림은
은지의 삶에 더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비록 가수라는 꿈이
우리 나라에서는 여러 주변 환경들이 도와 주어야 하는 것이기에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이루기가 쉽지 않은 꿈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열정과 결의를 가지고 있는 아이라면
가수가 꼭 되든지
혹은 가수가 되지 않더라도
꿀벌처럼 자신의 행복을 위해 힘껏 날아오를 것이라고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잘 가꾸어 나갈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 은지의 삶과 꿈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