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
교대에 와서
공부를 가르쳐주며 인연을 맺었던 제자 중에
다연이라는 고등학생 제자가 있습니다.
다연이는 나이에 비해
인생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학생이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비교적 여러 가지 경험을 했었던
저와 잘 맞는 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연이와 저는 대화가 잘 통했고,
그래서 다연이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러 가는 날에는
늘 기대가 되고 기쁨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중간 중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나누었던 이야기는
다연이의 삶과 고민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사실 다연이는 공부를 아주 잘 하는
유학파 고등학생입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이모가 교수로 있는 미국 보스턴에서 생활하며 학교를 다니다가
7년 만에 우리 나라로 돌아왔습니다.
거기다가 성실하고 머리도 좋아서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국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최상위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가정환경과 성적.
당연히 자신감이 넘칠 것 같고, 당당할 것 같은
다연이의 주된 고민은
의외로 열등감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미국에서도 친구인 미국 아이들에 비해
영어도 잘 못하고, 생각하는 것도 달라서
외롭고 소외감이 들었었는데,
우리 나라에 와서도 국어도 잘 못하고,
문화가 다른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하겠다는 것.
어렸을 때 괜히 미국에 가서
자신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상한 아이가 되었다는 것.
그런 다연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또, 그런 진지한 고민이 기특하기도 해서
평소에도 다연이의 삶에 대해 저 나름대로 많이 생각해보고,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해주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굳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나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반대로 생각하면,
다연이 너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거잖아.
만약 나중에 미국에 가서 산다고 해도
너 만큼 한국말을 잘 하고, 한국과 동양 문화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또, 한국에 정착한다고 해도
너 만큼 서양 문화와 영어를 잘 알고,
외국인과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는 사실은
정말 큰 장점인 것 같아.
너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잖아.
있는 그대로,
나 자신에 대해 이해를 하고
그 모습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자신감 있게 살아도 될 것 같아.
나는 어린 나이에
그렇게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능력을 가진
다연이가 무척 부러운걸?
다연이는 저의 이 말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기는 했는데,
앞으로 다연이의 삶이 어떻게 진행될 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삶을 직접 살아가는 것은 다연이 본인이기에
모든 변화는 다연이에게 달린 것이겠지요.
성경에 보면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 격언에도,
모다피살(모든 일은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이라는 말이 있어요.
즉,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라는 말은
다연이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오면서 만들어낸 그들 고유의 경험과 색채.
또, 내 삶은 나만이 살아온 고유한 방식이고,
내가 걸어온 모든 길들은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도움이 되고 값어치 있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이러한 삶에 대한 믿음이
자신의 삶에 더 큰 만족을 주고,
더 기쁘고 감사하며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