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正義] 운동회
운동회의 역사
운동회는 언제 시작한 것일까? 왜 그런지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 운동회는 일제의 잔재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실은 정반대였다. 1896년 영어학교에서 영국인 교사 허치슨의 지도 아래 평양 어딘가에서 '화류회'라는 이름으로 운동회를 열었던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1910년 국권피탈 직전까지 전국의 수많은 사립학교, 청년단체에서 국권회복을 위한 교육구국운동의 일환으로 많은 운동회가 열렸다(출처:https://goo.gl/9JtdKz). 내가 생각했던 운동회와는 전혀 다른 출발이었다. 개성을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보다 단체의 협동을 중요, 강조하는 운동회의 성격 때문에 나도 모르게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나보다.
운동회의 의미
요즘같이 문화생활이 널리 퍼지지 않는 예전의 운동회는 지역사회의 축제였다. 학생이 모여 여러가지 경기를 하고, 마을 어르신들이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듯 보며 한바탕 웃는 마을 잔치의 성격이었다.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남아서 학교에서는 학부모 경기, 어르신 경기를 따로 준비하고 있다. 때문에 운동회가 지니는 학교의 여러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없어지지 못하고 지속되어 왔고, 학생을 위한 교육의 장임에도 어른이나 지역 사회를 신경써야 하는 불편함도 여전히 존재해 왔다.
운동회의 변화
학생들에게 운동회는 최고의 날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밖에서 뛰어 노는 일이니 더더욱 재밌다. 가장 바람직한 변화이자 학생에게 좋은 것은, 승부가 없는 운동회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승부를 강조하는 운동회는 교사들의 인식 변화와 노력으로 점점 사라지고 레크레이션 성격으로 변화하면서 아이들에겐 더더욱 즐거운 날로 자리잡고 있다. 교사에게는 '줄서기', '대형', '입퇴장 연습' 등 불필요한 질서 교육을 정규교육과정 시간에 진행해야 하는 불합리함 때문에 많은 지적이 있어 왔고, 이에 따라 파행으로 운영되는 교육과정을 개선하고자 이벤트 업체에 위탁해 운동회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변하지 않는 운동회의 꽃, 달리기
달리기는 이런 운동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뀌지 않는 운동회의 꽃이다. 달리기가 없으면 운동회가 아니라는 말은 그만큼 계주가 지니는 박진감, 흥미진진함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여전히 현장의 여러 학교에서는 개인달리기와 이어달리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승부를 내어 등위를 매기는 달리기 방식에 대해 여러 교사들이 많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달리기 자체가 지니는 상징, 이른바 '운동회의 흥행보증수표'라는 인식 때문에 쉽게 개선되지 못했다.
모두가 달리면 어떨까?
이전 근무지에서는 모든 학생이 이어달리기에 뛰었다. 몇몇 학생들을 위한 운동회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바꾸기 위해 체육부장님이 제안하신 내용이었다. 당시 8반까지 있었으니, 한 학년이 뛰는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모두가 재미있게 뛰어 반응이 좋았다. 모든 학부모가 자녀의 뛰는 순간을 지켜보고 사진을 찍었으며, 모두가 참여했기에 책임을 분담하는 효과도 매우 컸다. 그렇다보니 승부에 대한 박진감은 조금 떨어졌지만, 거리를 좁히는 학생에겐 뜨거운 함성이 쏟아졌으며, 최선을 다해 달리는 마지막 주자에게도 박수가 쏟아졌다.
모두가 달리는 것은 위험하다
이런 좋은 효과 덕분에 이번 근무지에서도 '모두가 함께 뛰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런 좋은 효과가 모든 학교의 학생들에게 일반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다. 달리기를 못해서 정말 운동회가 싫었다는 한 부장님의 말씀, 오히려 못뛰는 아이들에게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의견이 전체 교직원 회의에서 나왔다. 결론은 학생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4-6학년 모두가 참여한 학생다모임에서 달리기 방식을 결정하기로 했는데, 아이들은 '대표를 뽑아 계주를 진행하자'고 결정지었다.
안타까움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심경을 글로 썼더니 두 분의 학부모가 덧글을 남겨주셨다. 6년동안 운동회 때 비가 오길 바랐다는 초등생을 둔 한 학부모의 댓글, 운동회가 악몽처럼 기억되고 있다는 또 한명의 댓글을 보며 내 스스로의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모두 참여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구나'.
반장, 미안해.
나도, 두 분의 학부모들도, 학생들도, 늦게 들어오는 부끄러움보다, 여러 사람 앞에서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즐겁게 뛰어보는' 경험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경험을 해봤다면. 민족의 단합을 위해 퍼져 나갔던 그 옛날의 좋은 취지마저 없어져 버리고, 아이들에게 부끄러움과 악몽으로 기억되는 운동회로 남는다면, 우린 도대체 무슨 교육을 위해 운동회를 하는 것일까?
그림책 '틀려도 괜찮아'의 제목처럼 이 말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느려도 괜찮아'. 우리반 계주 대표는 무조건 '하고 싶은 사람' 중에서 '가위바위보'다. 시합으로 뽑자고 제안한 반장, 미안해. 선생님의 뜻을 헤아려 주렴... 그리고 선생님의 설명에 흔쾌히 이해해 준 반장에게 참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