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정의]- 학예회 고찰 1
학예회, 왜 하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공연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교육적 기회라서? 아니면 아이들과 공연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양보와 타협을 배우는 인성교육이라서? 것도 아니면 자녀의 가장 예쁘고 귀여운 순간을 간직하려는 가족에 대한 배려? 학예회 때마다 아이들과 시름하고, 교과 교육과정 운영에 심각한 침해를 받으며 고민하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학예회가 그냥 싫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교사의 입장에서 말하는 푸념이고, 하기 싫은 것에 대한 정당화 또는 합리화, 변명일 수 있음을 쿨하게 인정한다. 그래도 싫은 건 싫다. 하기 싫은 마음이 해야 한다는 마음보다 압도적으로 큰 것을 어찌할 것인가?
나름대로 학예회의 긍정적 의미를 생각하고 내 스스로를 설득해보려 했다. 일정한 목표를 설정해 연습하면 보다 확실한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고, 무언가를 배우는 학습자 입장에선 재미도 느끼고 추억도 쌓으니 일석삼조다. 책상에서 공부만 하는 것보단 아이들 수준에 맞게 뭔가 뛰고 움직이는 활동 자체가 더 나은 교육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니 긍정적 의미는 매우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한가지 문제는 서로 다른 아이들의 욕구다.그런데 아이들은 저마다 무대에서 선보이고 싶은 것이 다르다. 학교에서 열리는 학예회는 이런 학습자의 욕구를 모두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를 선택하고 수없이 연습해서 무대에 올려야 한다. 학습자의 개성은 무시되고, 교육과정은 파행으로 운영되며, 이 과정에서 교사는 힘들고 학생은 마음이 상한다.
이런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을 해보았다. 그러나 공연 내용을 합의하는 과정은 정말 지옥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다른 아이들을 설득하고, 얼래고, 달래고, 협박한다.' 주어를 교사로 바꾸어서 쓸 수도 있는 이 공포의 문장. 고학년의 경우에는 이 과정에서 따돌림이 생기거나 그룹 간의 갈등으로 발전해 학교폭력문제로 커지기도 한다. 교사 입장에서는 '이게 뭐라고'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문화가 넘쳐나는 시대라 다양한 공연 문화를 향유하고 있고, 학생들 또한 태권도나 방과후댄스 등의 다양한 여가활동, 예체능 활동을 과외 활동으로 충분히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학교에선 하지 말자, 이게 내 생각이다. 학예회가 정말 싫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선배님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예전에는 학예회가 열리면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의 발길이 넘쳐났는데, 그 이유가 볼거리가 없던 옛날이라 학예회가 마치 마을의 잔치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각자가 좋아하는 예체능활동을 골라서 하고 있고 다양한 문화 행사가 도처에 널렸는데, 왜 굳이 바쁜 학교에서 학생들의 개성을 살라지 못하는 단체 행사를 열어야 하는게 그분의 주장이셨다. 이 주장에 따른다면 학예회와 같은 집단적 공연 준비는 지양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주장이다.
그러나 내 마음에 드는 주장을 실천할 힘도 방법도 없어 어쩔 수 없이 학예회를 준비하고 있다. 현실에 수긍하고 아이들을 달래어 모두가 만족하는 학예회로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우리반 학생들의 개성이나 욕구는 너무나 다양해서 모두를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아직도 학급 전체로 학예회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학생들의 성장 현실과 학교의 행사를 운영해야 하는 현실 사이의 충돌 속에서 괴로웠다. 그리고 나는 '우리반 학예회 뭐해요?'라고 쉬는시간마다, 나를 볼 때마다, 틈 날때마다 숨쉬는 것처럼 물어보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학예회가 싫으니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곤 해결 방안을 궁리해야만 했다.
학예회를 싫어하는 교사의 푸념, 옳은 것일까? 그른 것일까?
-다음 편에 계속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