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년 '시'스템] 아름다운 '동시' 만들기 - 4. 위기에 강한 우리 (코로나 병가ver)
각자 저마다의 사정으로 6학년에 모인 전입교사 2명과 기존교사 2명, 여3남1의 동학년은 그렇게 서로의 스타일과 취향을 확인하고, 기존 학교의 시스템에 적응하고 또 전수하면서 3월 한 달을 보냈다. 3월의 한 달을 서로 어떻게 느끼고 있었을까? 마침 코로나로 동학년 교사 몇몇이 번갈아가며 자리를 비워야 할 때 학년 운영이 어떻게 됐는지 되돌아보면 우리가 쌓아둔 체계를 성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을 공유하기에 - 대신 들어가도 큰 문제없는 학년부장회의
보통 학년부장은 부장회의에 들어가서 다양한 회의에 참여한 후 이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고, 학교의 여러 일을 직접 결정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부장회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나는 부장회의를 새롭게 바꿀 대안이 없는지 다양한 방식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혁신학교에서 진행하는 교사다모임도 부장회의의 폐해를 줄일 새로운 방법이었지만, 모든 교사가 학교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다모임이 바른 방향이라고 믿은 것은, '소수'가 '다수'의 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체계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대다수의 동료가 '교사'라는 직급으로 각자의 전문성과 개성을 존중받는 이 조직이라면, 당연히 모두가 참여하고 자기 견해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는데, 그건 사공 얘기고 - 전문가가 많으면 다각도의 관점을 접하면서 단단한 합의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교사가 전문가라고 주장한다면, 또 자신이 그런 대접을 받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나의 일을 위임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나의 이런 마인드를 잘 아는 우리 학년부장은 나에게 모든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한다. 어떨 때는 부장이 정해주면 좋을 법한 일도 나를 배려해서 세세하게 풀어놓을 때가 많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것이 부담스럽고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을 부장이 아닌 모든 교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능력과 지위에 걸맞은 당연히 알아야 할 권리이자 더 나은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 개인이 학년부장교사에게 많은 것을 위임하는 듯한 뉘앙스와 행동을 보이면 다른 동학년 교사들 역시 무의식적으로 자기 책임을 내려놓게 된다고 생각했고, 더 나은 방법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부장회의에 부장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사가 한 번씩 번갈아가며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부장회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것은 물론, 학년 전체가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경우엔 회의가 진행되는 방식과 분위기 자체가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모이느냐에 따라 같은 의견을 수렴해도 결정이 다르게 날 수 있음을 이해할 때, 교사 전체의 뜻을 합리적으로 수렴할 방법을 마련하는 첫발을 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안이 받아들여질 리는 없다.
우리는 이와 달리 우연치않은 계기로 부장회의에 한 명씩 돌아가며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한 명은 육아시간을 써야 하고, 또 한 명은 건강을 관리해야 하고, 또 한 명은 코로나로 인한 병가일 때 서로가 역할을 분담해 부장 회으에 참석했다. 모든 것을 세세하고 공유하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학년부장회의에 들어가는 것이 완전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늘까지 계산하면 4명의 교사 중 3명이 한 번씩은 들어간 셈이 되는데, 처음에는 우연으로, 또 나중에는 사정으로 들어갔으나 다음에는 '체계화시켜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쨌든, 우리는 누가 학년부장으로 들어가더라도 신뢰가 있다. 학년의 뜻을 잘 담아둘 정도로 소통이 많다는 뜻이고, 언제든 학년의 뜻을 곧바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며, 또 우리 각자가 '소수'임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소수에 대한 의견도 명확하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 교육과정을 함께 고민하기 때문에 - 보결도 동학년이 맡는게 더 편하다
코로나19 확진으로 병가에 들어간 적이 있다. 나는 내가 구성한 교육과정의 순서와 체계가 있고, 이 시기엔 꼭 '이 내용'을 해야만 하는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수업을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선 보결을 들어간 사람에게 내가 가진 수업의 구상을 전달하고 대신 해달라거나, 내가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보결을 하는 사람이나, 동학년 교사로선 부담스럽고 귀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육과정을 함께 의논하고 이야기했던 지난 한 달의 힘은 내가 수업과 교육과정에 대해 사뭇 진지하고, 제대로 하고 싶어한다는 뜻을 잘 이해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요구하는 것들 - 이를테면 '꼭 이 학습지로 해달라', '줌을 켜고 안내만 해준 후 내가 수업하도록 도와달라', '보결 들어가는 선생님께 교과서 ~쪽을 하고 글쓰기공책을 활용하도록 안내해달라' 등- 을 동학년 교사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따라주었다. 옆반 선생님은 음악 보결에 들어갈 때 '어떤 차시를 어떤 내용으로 해드릴까요'라고 물어줬는데, 그게 어찌나 고마운지 몰랐다. 먼저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병가가 4일을 넘어가니 계속 부탁하기가 힘든 시기였기 때문이다. 일주일의 병가 동안 2번의 음악 수업이 있었고 각각 다른 교사들이 보결을 해주었는데, 두 수업 모두 연속성을 지키는 수업이 이루어졌다.
내가 복귀하고 다른 동학년 선생님이 병가로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교육과정을 함께 고민하고 보기 때문에 서로의 수업 스타일도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병가 중인 교사가 요구하는 학습지나 수업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빨랐다. 다른 사람보다 서로가 보결을 해주는 것이 더 신뢰를 느끼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보결을 내가 더 맡아 수업을 하기도 했다. 사회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때 내가 직접 리드했었고, 현대사에 대한 지식도 자신있었기 때문에 나는 흔쾌히 나의 소중한 전담 2시간을 병가 중인 반의 보결로 들어가 대신 수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