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正義] 한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글 해득 관련 설문조사에서, 무려 90퍼센트에 가까운 교사들이 '학교 수업만으로 한글을 깨우칠 수 없다'고 응답했다. 언론은 이를 기사화했고 기다렸다는 듯 네티즌은 자극적인 댓글을 썼다. '그게 자랑이냐? 당신들의 일인데', '전문성이 없네', '교사가 왜 필요하니, 그대들도 적폐구만', '한글도 못 가르치는 90퍼센트의 교사 퇴출하면 되겠네' 등 댓글에는 시민의 분노를 넘어 혐오가 녹아 있었다. 정말 우리는 적폐인가?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기사는 '초등학교 교사'들이 1학년 학생들의 한글 지도를 완벽히 책임지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왜 우리 아이들은 '어리석은 이도 열흘이면 다 깨친다는' 한글을 완전히 습득하지 못하는가? 왜 초등학교 1학년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그 쉬운 한글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하는가? 문제의 본질에 대한 취재 없이 현상만을 거론하는 언론의 보도에 많은 시민들의 분노와 혐오가 교사를 향하고 있다.
학부모도, 교원도 알다시피 1학년 담임교사의 대다수는 교육경력 20년 이상에 가까운 고경력 교사다. 그들은 교과서가 얼마나 자주 바뀌었는지, 내용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던 산 증인이다. '2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교사들이 '학교 수업 만으로' 한글 해득이 어렵다고 90% 이상 응답을 했다면 언론은 그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배경을 다양하게 소개하거나, 교사의 목소리를 심층적으로 취재했어야 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이 없는 피상적인 언론 보도는 건전하고 비판적인 여론 형성 대신 혐오만을 남겼다.
공교육의 한글지도와 관련해 현장 교원이 제기했던 문제는 바로 '어려운 교과서'와 '부족한 (한글지도) 수업 시수'다. 한글이 아무리 쉽다 하여도 8살 어린 학생을 대상으로 지도할 때엔 충분한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다.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은 없고, 짧은 시간 안에 지도해야 할 교과서는 지나치게 어려운데 반해 입학한 학생들의 서로 다른 수준 차이는 수업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많은 원인을 단 하나도 다루지 않는 일부 질책성 기사를 보고 있자면, 학생의 문제 행동에 대한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체벌로만 다스리는 과거의 교육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세 얼간이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아미르 칸 주연의 영화 '지상의 별처럼'은 글을 읽지 못해 교사와 가족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부적응 행동을 보이는 소년 '이샨'의 이야기를 다룬다. '글자가 춤을 춘다'고 말하는 이샨의 행동을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교사와 가족들과 달리 램(아미르 칸)은 이샨이 '난독증'임을 알고는 이샨에 맞는 특수교육을 시키면서 글을 깨우치게 하고, 그림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각각의 아이들이 모두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언제쯤 알게 될까? 얼마 있지 않아 모두들 알게 될 거야. 모두에겐 저마다 속도가 있다는 것을.. ' 영화 속 램의 명대사다. 교사에게 한글을 지도할 시간을 주면, 학생들은 한글을 배울 여유를 얻게 되고, 그제서야 한글은 비로소 쉬운 글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