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년 '시'스템] 아름다운 '동시' 만들기 - 2. 동학년 세우기
서로를 이해하고 학년교육과정을 설계하는 시간
이제는 지나가버린 2월 말, 서로 처음 만난 동학년과 함께 6학년의 1년을 설계하는 시간이다. 두 명의 교사는 전년도에 6학년을 했던 교사고, 두 명의 교사는 올해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진급한 교사다. 이들 4명이서 학년 교육과정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학기 초에 각자 교실을 청소하고, 학급게시판을 꾸미고, 첫날 해야 할 활동을 준비하느라 바쁜 것이 대부분의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학교는 처음부터 동학년이 모여서 '올해 이 아이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지' 고민하고 이를 문서로 남기도록 요구받는다. 그러니 새로 온 교사들에겐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서로의 경험과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점점 말하는 것이 제한되고 꺼려지기 마련이다. 새로 전입오신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들의 스타일이 궁금해요. "
"네? 스타일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수업이나 교육과정 스타일은 어떤지요.."
우리는 다소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아이스브레이킹 대신, 서로의 성향이 어떤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아이스브레이킹을 대신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서로의 성향이나 가치관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최고의 아이스브레이킹이었다. 어떤 스타일인지 미리 파악하고 나면, 협의 가능한 것과 어려운 것도 짐작할 수 있고, 이견이 있더라도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이틀 동안 걸리다
학교에서 꾸준히 추진하려는 핵심활동이 있다. 혁신학교는 학력 저하가 있다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적 측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혁신학교가 꾸준히 하던 것을 차용한 모습이기도 한데, 글쓰기, 독서, 연산 3가지다. 이 3가지 교육을 6년 동안 꾸준히 하기 전에 '왜 하는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이 '왜'라는 말이 참 막연하다. 사실 독서교육을 왜 하냐고 물으면, 저마다 생각이 다를 것 같지만 실은 거의 비슷하다. 문해력 키우기, 논리적 사고력, 어휘력 신장 따위의 보편타당한 말이 나오면, 우리가 이 활동을 '왜' 하는지 고민하는 것은 뭔가 어색하다. 우리가 그걸 모르고 '교사'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할 땐 포인트가 달라야 한다.
'왜 하는가?' 가 아니라, '왜 이것을 우선으로 두었는가?', '왜 이것을 6년 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처음엔 좀 멍한 생각이 들었다가, 나중에는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논리적 사고력, 어휘력 향상 등 일종의 모범답안 같은 것들. 나는 좀더 구체적으로,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보자고 했다. 좋은 말들은 이미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 좋은 것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이 아이들에겐 글쓰기가 필요한지, 즐기면서 할 수 있는지를..
아이들은 글을 쓰는 것을 싫어한다. 미디어 영향으로 글을 제대로 읽는 경험도 부족하고, 자기 생각을 정돈있게 표현하지도 못한다. 사실 글이라는 것은 자기 생각을 꽤 정갈한 표현으로 다듬는 행위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뚜렷하지 않으면 글 한 자 써내려가기도 어렵다. 생각이 없는 아이들을 붙잡고 글을 쓰는 것은 학생에겐 고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가 흘러가다보면, 글쓰기 과제를 하기 전엔 충분한 생각거리와 경험을 제공하는 활동을 계획하자는 합의가 이뤄지게 된다. (물론 그날은 이런 아름다운 합의문을 도출하진 못했지만..)
서로 힘이 되는 시간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할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생활교육은 공동으로 하자는 합의가 되었다. 문제가 있으면 반에 함께 들어가서 지도를 하고, 학생을 따로 불러 이야기하더라도 서로 불쾌해하지 말자는 합의가 이뤄졌다. 다행히 공동생활지도의 힘을 이해하고 있는터라 쉽게 합의가 됐다. 나는 농담삼아 '00이 말 안 들으면 1반으로 바로 보냅니다', 'ㅁㅁ는 작년에 제가 가르쳤으니 바로 저한테 보내주세요'라는 말을 주고 받았다. 이런 말 한마디 덕분에 고학년 학교생활에 대해 막연함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