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년 '시'스템] 아름다운 '동시' 만들기 - 1. 우리가 6학년에 모인 사정
진지한 학년 고민
2021년도에도 여전히 코로나19로 학교는 뒤숭숭했다. 등교수업을 늘리려는 현장의 노력 덕분에 1-2교시는 원격, 3-6교시는 등교수업을 하던 '진짜' 블렌디드 수업 환경으로 1학기를 보낸 후, 밀집도 완화에 따라 2학기는 전면 등교를 했다. 2학기가 되어서야 아이들과 조금 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2월이 다 되어서 확진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끝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그 사이에 아이들과 쌓은 신뢰, 정이 굳건히 쌓였다. 내가 6학년을 원하게 된 배경이었다.
학년은 조금 일찍 정했다. 전입발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는 모두 모여 원하는 학년을 골랐다. 나는 그때까지도 '육아시간'을 써야 한다는 생각과, 확진자는 늘어나는데 학교는 정상화하겠다는 정책의 엇박자에 큰 걱정이 되어 고학년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좋았지만 내 개인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해를 만들고 싶었다.
투명하고 부드러웠던 학년 선정
새로 오는 선생님의 숫자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12~4명 쯤 바뀌는 것으로 들었다. 학교 문화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라 학교에선 기존 선생님과 새로 오신 선생님이 학년에 고루 배치되도록 노력하자는 합의를 만들었다. 학년 선택은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자유롭게 이뤄지며, 학년 밑에는 자기 이름을 적은 붙임쪽지를 붙인다. 누가 어떤 학년을 선호하는지 다 알 수 있게 되고,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는 공간에서 양보와 타협이 이뤄진다.
나는 1지망, 2지망으로 1학년과 2학년을 붙였다. 둘 다 해보지 않은 학년이지만 그런 것은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1학년과 2학년은 앞에서 선정했던 우리 학교의 합의에 따라 이미 정원이 가득찬 상태였고, 서로 간에 친밀도가 높아 내가 비짓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6학년으로 갔지만, 전입교사 대부분이 젊은 교사들이라 6학년의 경쟁률은 치열했다. 다른 학년은 각 1자리씩 남아 있던 탓에, 6학년을 지망한 선생님끼리 따로 모여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치열한 경쟁률 속에서도 내가 6학년을 선점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 선생님이 학년에 2명은 포함되는 것이 좋겠다는 구성원의 '합의' 때문이었다. 기존 교사 혼자서 학교 시스템과 문화를 전수하는 것은 버겁고 어렵다. 덕분에 나는 정원의 2배수에 가까운 선생님들 사이에서 6학년에 안착하였다. 한편 새로오신 선생님들은 저마다 6학년을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였는데, 대체로 고학년을 많이 경험했다는 이유가 많았다.
한 차례의 의견 조율을 거친 후 합의점이 드러나지 않아 전체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에서는 다른 학년에서 소위 '어필'할 시간을 가져보자고 제안하였고, 몇몇 학년 부장선생님들이 화기애애한 농담과 학년 홍보 탓에 6학년을 지원했던 여러 선생님들이 각자 다른 학년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박수와 격려의 분위기 속에 경쟁률은 낮아졌고, 학년부장과 나를 제외한 나머지 2반의 자리에 마지막까지 남은 3명의 선생님이 장고의 시간을 거쳐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 선생님은 전년도 학년이 4학년이었는데, 이미 해본 학년이라 다른 학년을 하고 싶다고 했다. 또 한 선생님은 고학년만 10년 넘게 했고 전년도에 6학년을 했기 때문에 교육과정의 연속성을 강조하였다. 결국 4학년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올해도 4학년으로 가겠다고 (조금은 아픈) 양보 끝에, 6학년 4명이 확정되었다.
속사정과 다짐
우선 학년 부장은 기존 구성원 중에서 희망자에 한해 배정되었다. 학년 부장은 처음부터 6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내가 6을 할거란 생각에 함께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 큰 마음을 먹고 6부장을 지원하였다. 우리 부장은 나와 같은 5학년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으니, 정말 큰 마음을 먹은 것이다.
나는 6을 선호했다. 마지막으로 6을 한 것이 2015년이었고, 현재 5학년 아이들의 교육을 좀더 이어나가고 싶은 개인적인 욕구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자아실현보다 더 중요한 육아 사정이 있어 마지막엔 6을 포기하려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1,2를 지원했는데, 사전에 1,2학년 부장으로 정해진 분들과의 어떠한 교감도 없던 것이라 사실상 1,2 지원이 어려워 6으로 돌아왔다.
마지막까지 6을 지원했던 전입교사 3명 중 한 명은 6부장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서로의 신뢰가 있었던 것 같아 계속 6을 희망했다. 또 한 명은 고학년을 오래 했다는 장점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지원했던 1명은 나와 꽤 가까운 사이라 나를 보고 지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그와 미리 동학년을 하자고 이야기했던 적이 없었고, 서로 아는 사이라는 이유로 동학년을 함께 하는 것도 내 신념과는 다른 부분이라 적극적으로 6에 남을 여지가 없었다.
결국 그는 자연스레 6을 양보하게 됐다. 양보를 한 교사는 (나와 가까운 사이인 이유로) 기존 구성원인 내가 양보하지 않았다며 나를 기득권이라고 (농담 삼아, 하지만 진심으로 ㅎㅎ) 비판했다. 나는 (순순히) 인정하며 (미안한 척) 손을 흔들었다. 어지간히 6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누군가의 양보와 상심을 기억한다면 올 한 해의 학년 구성과 운영에 더 큰 책임감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가까운 사이라 농담을 하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은 학년 운영에 힘을 보태어, 양보한 사람에게 보람이 느껴지도록 노력하는 일 뿐이다. '기득권이지만 나보다 낫군'. 이런 생각이 들도록..
이렇게 해서, 전년도 6학년을 경험해 교육과정을 잘 아는 전입교사 2명과, 전년도 아이들의 교육활동을 책임졌던 2명의 교사가 모여 동학년이 되었다. 아이들을 잘 알고, 교육과정을 잘 알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