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가치] 4. 공문에 휘둘리지 않는 원격수업
답답하다
가끔 학교로 내려오는 공문을 보고 있자면 착잡해지는 마음을 어디에다 풀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민원 전화를 걸어서 화를 내고 싶을 정도로 분노에 차오를 때도 있고,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릴 때도 있습니다. 애써 '특수한 상황이니만큼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쉽게' 글 몇 줄로 현장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대부분이 현장교사 출신인데 우리의 마음을 너무 모르는 것은 왜일까?" 답답한 현상을 조금은 차분하게 바라보기 위해, 그간 읽었던 두 권의 책을 인용(혹은 패러디?)하면서 생각을 펼치고자 합니다.
1) 원격수업으로부터의 도피
에리피 프롬이 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에는 현대인이 자유를 회피하는 이유를 역사적 배경으로 풀어내면서 자유를 포기하는 인간의 모습을 사회심리학적으로 분석, 서술합니다. 중세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유산계급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그들은 억눌려있던 개성과 욕구를 드러낼 수 있었지만, 동시에 불어난 재산을 지켜내고 대중으로부터의 지지와 신망을 얻기 위해 다른 부자와 경쟁해야 했던 과정에서 통제의 대상이 된 하층민과 자본을 독점한 유산계급으로부터 경쟁할 엄둘를 내지 못한 중산층의 소외감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로부터 도피하고자 합니다.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현상을 프롬은 3가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첫째, 권위주의로의 회귀 - 모든 것을 결정해주던 대상의 지시만을 기다리는 형태가 있습니다. 둘째, 경쟁상대를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 셋째, 사태에서 한 발 물러나 관망하며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곱씹어 볼수록 코로나19가 들이닥친 학교사회의 모습과 참 닮아 있습니다. 봉건사회가 무너지는 것처럼 학교사회는 코로나19로 일시에 휘청거립니다. 휘청거리는 학교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 상급기관은 열심히 대책을 마련하고 공문을 생산하면서, 업무담당자과 학교책임자는 학생의 안전과 학교의 안녕을 위해 공문에 의지하여 대책을 수립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20-30년을 학교에서 오로지 학생의 교육을 위해 헌신했던 수많은 교사들은 (결코 파괴까진 아니지만) 동료와 함께 통일된 플랫폼을 선정하여 급변하는 사태로부터 안정을 되찾고자 합니다. 반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성장할 여력이 있는 밀레니얼 세대의 교사들은 자신의 주특기인 IT기술과 에듀테크를 접목하여 새로운 수업을 개척하고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나갑니다.
2) 줌은 원격수업을 집어 삼킬 것인가
여전히 시도교육청 단위나 학교장 회의에서는 유튜브에 업로드된 학습 컨텐츠를 링크하는 교사의 원격수업 방식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실시간 쌍방향'수업을 권장해야 한다는 회의로 특정 수업도구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학생과 직접 소통하는 담임교사가 직접 나오는 컨텐츠라면 더욱 좋겠지요. 간단한 과제제시형보단 학생과 소통할 수 있는 형태의 과제가 더욱 좋을 것이고, 필요할 경우엔 화상 수업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앞선 글에서도 장황하게 지적하였듯이, 어느 것도 현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는 학습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교사들은 '실시간 쌍방향'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특정 수업도구만 강조한다며 '윗선'의 지시와 지침 강조에 대해 불만을 표출합니다. '실시간 쌍방향'이 무엇인지 의논하고,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일이 우선될 때 모든 교사의 교육이 존중받고 원격수업의 질이 높아질텐데, 이런 기회조차 오지 않거나, 형식적인 소통 뒤에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학교도 있습니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 삼킬 것인가'의 저자는 유튜브 시대의 새로운 리터러시 도구로써 영상 매체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텍스트의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임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상황에 맞는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는 것이 진정한 리터러시이고, 시간의 연속성을 한 번에 담고 '생각을 깊게 정리하도록' 유도하는 텍스트의 가치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동시에 영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현재 아이들의 리터러시도 동시에 존중받아야 하며 특정 방식을 이용한 지식의 전달과 평가로 학생들의 리터러시 역량을 평가하는 것을 '리터러시를 정의하는 권력'이라고 비판합니다.
* 출처: 유튜브는 책을 집어 삼킬 것인가(혹시, 수업을 다루고 이해하는 리터러시 역량을 정의하는 것은 누구의 권력인지 생각해보셨나요?)
책에서는 글이 여전히 중요함과 동시에 영상 또한 학생의 삶과 밀접하니 글만으로 학생을 평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를 우리의 현실에 비춰볼까요? 우리는 여전히 면대면 수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면대면만으로 수업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화상 도구가 지니는 근본적 결함은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현장의 면대면 수업'보다 훨씬 어렵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교육계의 일부 구성원은 혹시 우리가 생각하는 지식과 수업의 전달 방식으로 '실시간 상황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가르치는 것' 혹시 하나만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꼭 교사가 칠판 앞에 서서, 또는 얼굴을 드러내어 지식을 설명하고 소통하는 것만이 바람직한 수업은 아니며,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리터러시 역량을 키우는데에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원격 수업은 왜 끔찍한가
이미 페이스북이나 오마이뉴스를 통해 다음의 링크 기사를 많은 분들이 접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일지라도, 필자의 개인적 경험과 너무나 딱 맞아 떨어지는 이 글을 보면서 잠시 인용하지 않을 수 없어 소개합니다.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Premium/at_pg.aspx?CNTN_CD=A0002650509
대학(원) 마저 원격수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지금, 성인조차도 수업 내용을 화상 도구로 듣고 질문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즉각적인 소통과 감정 인식을 위해 항상 기다려야 하는 현상, 화면공유나 소회의실 기능을 이용한 모둠학습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수업의 큰 부분을 소통보다 강의식으로 구현되는 모습은 어른마저 힘들게 합니다.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형태라 학생의 신체적 피로는 더욱 커지는 가운데, 도구 활용에 익숙해진 일부 선생님의 줌 수업은 훨씬 단조롭고 편안하게 흘러갑니다. 수업을 따로 검색할 필요도 없으며 과제를 제시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화면 너머의 (비디오를 끈)학생들이 제대로 듣고 있는지, 안 듣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어서 '준비된 수업'을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정말 이런 방식의 수업이 좋은 수업일까요?
이런 실시간 수업은 실시간 쌍방향이 아닌가요?
사실 어떤 방식을 활용하든, 2화의 글에서 언급했듯 최고의 플랫폼인 '교사'의 의지없이 어떤 수업도 만들어지기 힘듭니다. 우리는 교사의 의지를 북돋아주는 다양한 여건을 조성하고, 제약을 해결해 나가면서 수업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다양한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화상수업만 강조하는 것은 애석한 일입니다.
저 또한 화상 수업을 수차례 진행하면서 다양한 도구로 학생 참여중심 수업을 만들어보려 했지만, 기술적 문제와 기기 활용 역량이 떨어지는 학생을 이해시키는데 큰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화상 도구에 접속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다 접속을 하여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화상수업에서 다뤘던 차시의 교과서 내용을 살펴보면 유독 전체적으로 낮은 수준의 결과물을 접하였고, 특히 해당 수업 시간 안에 접속 자체를 할 수 없는 학생이 한 반에 3-4명 씩 있다는 것은 출석 문제와 함께 수업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인식하게 됐습니다.
결국 학생 개개인의 호기심이나 학습 더딤을 해결할 다른 방식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면서, 다양한 선생님들의 수업 사례를 눈여겨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인상깊었던 것은 학교 내에서 '정해진 시각'에 반 학생 전체와 함께 단톡방을 만들어 대화 시간을 가지는 사례와, 학습자의 영어학습 촉진을 위해 학생과 교사 간 1:1 카톡방을 만들겠다는 어느 선생님의 글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학생들에게 '언제든 좋으니 카톡으로 질문하라'는 메시지를 수업컨텐츠 말미에 제시하였고, 담임선생님을 통해 알림장에도 안내하였습니다. 아래는 그렇게 해서 이뤄진 '실시간 수업'의 또다른 경험입니다.
수업 컨텐츠 내용: 차가운 물과 따뜻한 물이 접촉할 때 온도가 서로 같아짐을 보여주는 '열 평형 실험'
과제 내용: 구글 스프레드시트 표에 '숫자를 입력'하여 열 평형이 이뤄짐을 눈으로 확인한 후 그 까닭을 적기
학생들은 실험 컨텐츠를 시청한 후 제가 제시한 과제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실험관찰을 작성하여 사진을 올리거나, 아래의 스프레드시트 과제를 해결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하면 됐습니다. 과제를 제대로 수행했다면 아래 그림과 같은 그래프가 자동으로 그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학생이 내용 예측을 잘못하여 그래프가 x자로 교차하게 되어, 이를 고쳐주는 과정에서 이뤄진 '실시간 대화'입니다.
아래의 붉은색 숫자를 올바르게 고쳐서 정확한 그래프가 나왔는데, 처음엔 이와 같지 않았습니다.
가장 오른쪽 대화를 보면 교사인 저의 대화만 계속 이어집니다. 이유는 저와 학생이 동시에 '스프레드시트'에 접속한 채로 같은 화면을 보면서 수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20명의 학생에게 이와 같은 과제를 주면 15명 이상은 스스로 해내거나 부모님의 도움을 얻어 해결해 냅니다. 4-5명의 학생은 교사에게 묻거나, 묻지도 않은 채 포기하고 있지요. 교사는 이 4명의 학생과 1:1로 대화하면서 무엇이 어려운지 물어보고, 이에 맞는 학습 방법을 코칭해줄 수 있습니다. 한편 비록 정해진 시간표 내에서 이뤄진 대화는 아니지만, 밀린 과제를 언제든 다시 접속해서 해낼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합니다.
학교의 가치는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모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도록 존중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동시에 교사와 학생 간의 1:1 대화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자존감을 상승시킵니다. 교사와 온라인 상에서 얼굴을 맞대고 수업하면, 학교에서 면대면으로 수업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형성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실에서 칠판이나 tv만을 바라보며 교사의 판서와 설명을 듣던 일제식 수업의 형태로 옮아가는 구조적 요인을 더욱 강화할 뿐입니다. 다양한 온라인학습도구(멘티미터, 줌 소회의실 기능 등)를 사용할 줄 아는 교사는 학생의 모둠활동과 협력구조를 유지하면서 수업을 해 나가겠지만, 그것 마저도 교실 속에서 추구하던 진정한 모둠 학습의 효과를 구현해 내는데엔 한계가 있으며, 이해의 속도가 더딘 학생이 있는 교실 속 상황처럼 기기 활용을 어려워하는 학생의 뒤처짐이 여전히 발생합니다. 학생의 학습속도를 배려하려면 화상수업의 활용은 선택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더 나은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공문으로부터 휘둘리지 않으려면
사실 공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교사의 철학에 좌우됩니다. 현장에 있는 교사도 모두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엄중 책임을 묻겠다'거나,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책임 소재가 나에게 온다'는 프레임 속에는 진정한 책임 - 바로 학생을 교육해야 할 의무 - 가 빠져 있습니다. 양쪽 누구에게도 생산적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전문성을 지니고 또렷한 목표를 인식하고 있는 유능한 교사라면 다시, 학생을 위한 교육으로 초점을 옮겨야 할 때입니다.
에리히프롬은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근대인의 불안을 해소하는 대안으로 '연대'를 제시합니다. 우리는 지금껏 꾸준히 선생님들과 연대해 왔습니다. 쉬는 시간, 방과후, 꾸준히 협의회를 가지고,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조금 더 서로를 의지하고, 믿고, 실시간 쌍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 논의하면서 선생님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업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를 수용하고, 적극 지원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방법도 배워 나가면 됩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리고 유튜브 링크를 걸어야 할 수밖에 없거나 링크가 더 효과적이라 생각하는 교사들의 마음, 전문성을 동료, 학부모와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시간도 필요할 것입니다. 불안을 해소하고 우리의 수업 행위가 평가 절하되지 않기 위한 방법은 동료와, 학부모와, 그리고 학생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입니다. "00이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화상 수업을 잘 따라오고 있는데요, 꽤 많은 학생이 접속 자체를 어려워하는데다 수업에 따라오지 못하고 있어 화상은 선택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00선생님, 저는 화상수업을 해보니 뒤처지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데다 아침에 접속 자체가 안 되어 결석률이 증가하는데요, 그래서 과제를 제시하고 통화로 점검하는게 효과적이었습니다.", "
이런 방식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때 우리는 공문으로부터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서로의 장단점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겉으로만 보이는 것에 치중하고 효과성은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눈에 보이는 민원에만 초조해한다면, 오히려 학생 교육의 책무를 저버리는 '가장 무책임한' 행위일 수 있음을 함께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학교 구성원은 진정으로 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연대하는 모습이야말로, 학교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교육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온전히 보여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