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수업] 문단 나누기는 가래떡을 써는 것?
문단을 나눌 줄 모르는 아이들
고학년 학생들의 글쓰기를 살펴보면 대다수의 학생들이 '문단'을 제대로 나누지 못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3학년 국어에서 처음으로 배우는 '문단' 개념을 2~3년이 지나도 아이들이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는 것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기초를 제대로 다져놓아야 학년이 올라가도 제대로 된 글쓰기가 이뤄질 것 같아, 3학년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를 생각했다.
문단 나누기는 가래떡 썰기와 같은 것
내가 생각한 비유는 '가래떡 썰기'였다. 길게 늘어뜰인 가래떡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긴 가래떡을 접시에 그대로 담으면 어떻게 되겠냐고 물었다. 보기 싫고, 넘치고, 먹기에 불편할 것이다. 보기 좋게, 넘치지 않게, 먹기 좋도록 하려면 '가래떡을 잘라야 한다'는 답변을 쉽게 얻어 내면서, 문단 나누기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읽기 좋게, 종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이해하기 좋도록 글을 쓰려면 '문단'을 나누어야 한다'고 말이다.
문단 나누기 연습
교과서에 실린 글을 하나의 덩어리로 붙여서 쓰고, 작은 쪽지로 인쇄하여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이것을 '읽기 좋게, 이해하기 쉽도록' 문단으로 나누어 보라고 하였다. 4명 씩 5모둠, 총 20명의 학생들이 문단을 나누었는데 2모둠을 제외하고 모든 아이들이 종이를 아래처럼 나누었다.
.... 비평문을 쓸 때 "...."을 쓰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이 사진 한 장은 나에게 많은 형식과 관념을 깨어주면서 실소가 나오게 만들었다. 종이를 가래떡에 비유했던 나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른 부분을 보아하니 내용이 바뀌는 부분 근처에서 자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위안(?)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나눈 이유를 물어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발견한 또 다른 종이는 아래 사진과 같았다.
..... 이 종이를 보는 순간 웃음과 화가 마음 속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지금도 이 사진을 보면 참 웃기기만 하다. 3월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이렇게 자른 그 학생을 온전히 이해하기 때문에 그저 웃음만 나는데, 그 때 당시만 해도 수업 초반인데다 학생 관찰이 덜 되어서 그런지 화가 살짝 나기도 했다. 평소에 수업을 듣지 않고 가위를 자주 꺼내어 이리저리 자르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인데...
실패의 원인
3학년 수준을 고려할 때 문단을 나누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임을 미리 인식하지 못했다. 교과서엔 짧은 두 문단 전체를 처음부터 네모난 영역으로 설정하고 '문단'이라 정의하였다. 나는 이것이 너무 친절하다고 여겨 교과서 대신 문단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은 종이를 나눠 준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3학년 아이들에겐 좀 더 친절했어야 했다. 설령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뒷받침되더라도 글의 구조를 한 눈에 파악하고 나누는 일이 3학년 수준에서 이뤄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음으로 비유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봤다.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기 위한 비유였다고 생각다. 그러나 저 위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종이'를 가래떡으로 생각한 아이들에게 '글의 내용'을 수차례 강조하지 못하고 비유만 온전히 전달된 듯 하다. 분명 읽기 좋게, 이해하기 쉽게 나누어 보라고 했던 말인데, 아이들은 그저 '길이가 같도록' 절반으로 잘랐다. 마치 진짜 가래떡을 써는 것 처럼... 발문과 당시의 수업 분위기를 다시 되짚어 봐야 할 부분이다.
교생 실습때도 이런 수업을 해본 적이 없는 가장 처참한 수업 실패, 혹은 가장 웃긴 수업 일기가 되었다. 비평으로 시작하고 일기로 끝나버리는 이 글을 3가지의 다짐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째, 잘 해낸 2모둠을 생각하자, 둘째, 잘 해내지 못한 3모둠을 다시 생각하자, 셋째, 결국엔 잘 해낼 5모둠의 학생들을 끝까지 생각하자.
당분간 가래떡은 생각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