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正義]_그에겐 손쉬운, 나에겐 아쉬운..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할 때 참 부끄러운 과목이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미술이고 또 하나는 음악이다. 아직 미술 수업에 대한 공부는 시작하지 못해 발령부터 지금까지 지나치게 허용적이고 자유로운(?) 미술 수업을 추구하고 있지만, 음악 수업에 대해서는 2년 전부터 꾸준히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나름의 틀을 잡고 있다. 2년 가까이 공부해도 음악 교수법이나 학생들의 음악적 역량을 자유자재로 끌어올리는 수준까진 아니지만, 수업을 보는 눈이나 음악 이론, 그리고 음악수업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정립하며 소기의 성과를 얻고 있다.
배운 것이 있으면 가르치고, 드러내고 싶은 법, 그게 교사의 마음이다. 설령 그 배움의 깊이가 다소 낮더라도, 남이 보기에 의미가 없는 것일지라도 내가 생각했던 배움을 드러내고, 더 좋은 문화가 형성되길 바라는 마음은 어느 교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 곳 에듀콜라에 글을 쓰는 여러 선생님이나, 기타 다른 교육사이트에서 자신만의 수업 일기나 철학을 공유하는 선생님들도 나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내가 배운 내용이 너무 좋아 다른 선생님과 함께 하고 싶거나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슬며시 '음악 수업 연구회'를 하고 있다고 말을 꺼낸다.
그런데 나의 기대와는 다른 모습의 반응을 보일 때 약간 아쉬움이 든다. '음악은 그저 아이들이 즐거우면 그만 아니냐', '아이*크림만 있으면 간단하지', '엄청 음악 수업 열심히 하나보네'와 같은 말을 들을 때면 내가 공부했던 이 시간들과 정립했던 철학들이 한 순간에 '과잉행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내가 생각하는 음악의 정의와 수업에 대한 나의 열의를 열심히 말해보고도 싶지만, 이내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입을 굳게 닫아버린다. 나 또한 내가 자신이 없는 과목에 대해서는 무덤덤하고, 무분별한 수업을 하고 있으니까, 내 열의를 보일 자격이 크게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내가 생각하는 음악 수업의 목적은 학생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다. 하루 2~3곡의 노래를 부르면 우울증이 없어진다는 어느 외국 대학의 연구 결과, 음악을 통해 눈물을 흘리는 관객의 모습과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뛰어난 가수의 열창을 보고 있으면 '음악'이 지닌 힘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런데 교사가 음악을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작은 활동으로 치부해버리면 아이들은 이런 '음악'의 힘과 감동,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 시기에 부를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화음이나 감동을 놓칠 것이고, '난 음악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의식은 고착화된다.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한, 많은 아이들은 음악을 통한 삶의 높은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세상 모든 것 사라져도, 음악은 영원히 남아있는데!
미디어에 녹음된 소리와 사물의 진동으로 우리의 신체에 직접 들리는 소리의 차이를 아이들은 느껴본 적이 있을까? 계이름 하나 읽기도 어려운 아이들 24명에게 소프라노 리코더를 불게 할 때 들리는 소리는 얼마나 귀에 따가울까? 소리(1성부)와 소리(2성부)가 만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정확한 음정을 내지 못해 부끄러워 하는 아이들에게 음악의 힘과 가치를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음악 수업의 질문들은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 나가야 할 수업의 방향과 소재를 풍성하게 해준다. 이런 고민 없이 '즐겁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음악 수업은 아이들로 하여금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문화의 한 영역을 잃어버리게 만들지도 모른다.
기능이 안 되어 음악수업이 매일같이 힘들었던 한 소년은 어느덧 당시의 소년같은 아이들 앞에서 서 있고, 어느날 음악수업의 매력을 느껴 사운드 오브 뮤직의 영화같은 장면을 교실 속으로 옮겨보려 한다. 사소하고 쉽게 넘겼던 특정 과목의 수업을 누군가는 깊이 있는 고민과 철학으로 연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 가치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넓어서 교육의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깨달음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