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正義] 학예회 고찰 3_민원
학예회가 끝났다. 지금부터 내가 쓰는 이 모든 내용은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어디서 주워 들은 어느 학교의 어느 교실의 옆 교실의 학예회가 끝난 후의 이야기다. (원래 '이건 내 친구 이야긴데...'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자기 이야기라고 하던데..) 무대가 성공적으로 끝나 기분좋은 마무리를 하며 한 숨 돌렸다고 생각하던 차에 어느 학부모로부터 민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절차와 합의를 거쳐 모두가 만족해하는 학예회에 무슨 민원이 발생한 것일까? 혹자는 '교권 침해' 아니냐고도 하던데, 민원의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써야만 완벽한 상황과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겠지만 사정상 온전히 글로 옮기지 못해 질문거리로 민원 내용을 대신한다.
1. 무대에서 맨 앞, 가운데에 설 아이는 누구이며, 만약 한 명을 정하라면 누가 서야 할까?
2. 학예회 무대에서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던 아이들에 대해 관객은 어떤 생각을 할까?
3. (초등학교 학예회에서) 무대의 구성과 자리 배치는 누구의 권한이고 누구의 책임일까?
4. 공연에 대한 기쁨과 실망의 감정을 표현한다면 교사와 학생 중 누구에게 해야 할까?
....
민원의 내용을 다 듣고 난 후에 책상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봤다. 어떤 동료는 기가 차다면서 화를 내기도 했고, 어떤 동료는 "네가 이해해, 그게 '그 분들'의 마음이야"라며 나에게 '그 분'의 마음을 풀어줄 특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조언했다. 모든 이들의 감정에 공감했다. 그 선생님의 마음에도, 내 마음 속에도 아마 같은 감정이 혼재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같은 사람인냥...)
그러나 감정을 풀어줘야 할 사람은 그 분(민원인)이 아니라 그 분의 '아이'였다. 상황인 즉 무대를 지켜보던 어른의 체면이 구겨지게 되어 버리자 애꿎은 아이에게 화를 내었고, 아이는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아이는 그저 모범을 보였고, 자기 역량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만 하겠다고 의사표현을 했으며, 무대에서 최선을 다한 것 뿐인데... 그게 어른의 눈에는 성이 안 찬 모양이다. 그것으로도 화가 안 풀려서 교사에게 항의까지 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안 좋았는지 백번 이해되다가도 이 상황에 대처하는 나의(아니 내가 아는 그 선생님의^^) 기분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대가 끝나고, 민원을 받은 후에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은 학생에 대한 위로였다. '혹 서운하진 않았니, 친구나 선생님 때문에 불만이 있진 않았니' 하고 물어보는 것. '그런 것은 아닌데... '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보면서, 우리 어른들이 조금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체면보다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는 어른이 되길, 그리고 아이들의견 못지 않게 아이들만 보러 오는 관객을 염두에 두는 교사가 되길. 어른 모두가 '잘못도 없는 아이에게' 눈물 흘리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되지 않을까.
아무리 싫은 학예회라도 이에 대처하는 태도와 방법은 옳았다고 믿었는데, 구성원의 합의와 만족을 위해 나름 고심하고 노력했다고 믿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런 태도와 방법의 결과가 한 학생의 눈물로 끝나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 체면을 위해 교사는 상처를 받아도 되는 것까지는 늘 있던 일이라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아이에게만은 상처가 안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주, 강당에서 게릴라콘서트 형식으로 다시 한번 무대를 선보이고, 민원인이 아닌 나의 소중한 제자를 위해 기분을 풀어줘야겠다. 이번 학예회도 역시,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