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업] 실패한 과학 실험?
과학교과서에 제시된 실험은 특정 과학 개념을 지도하기 위한 일련의 의미있는 과학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거대한 자연 현상의 과학적 원리를 실험실 안으로 축소시키고 시각화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자연 현상과 실험 현상이 완벽히 일치할 수 없다. 그런데 많은 교사들이 이런 현실적 어려움을 알고도 '실험'을 실패했다고 규정한다.
예를 들어보겠다. 5학년 2학기 해륙풍 개념 지도와 관련해 '낮과 밤에 바람이 부는 방향'을 학생들이 눈으로 쉽게 관찰할 수 있도록 '대류상자' 실험을 지도해왔다. 그런데 대류상자 실험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자연 현상'과 같이 무한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바람의 변화가 아닌 '좁은 상자' 안의 향 연기를 관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래 사진을 보면 뜨거운 모래가 있는 쪽의 종이컵에서 연기가 나와야 하지만 이내 좁은 상자 속은 향 연기로 가득차 양쪽의 종이컵에서 모두 연기가 나오게 되고, 연기의 흐름을 관찰하기도 어려워진다.
뿐만 아니라 물을 준 콩나물과 물을 주지 않은 콩나물의 성장 과정을 관찰하는 실험, 잎의 광합성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아이오딘-아이오딘화 용액을 떨어뜨리면서 생기는 색깔의 변화 실험 등도 모두 현장에서 가장 많이 '실패'하는 실험 중 하나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사는 올바른(?) 실험 결과가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원래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강의식으로 지식을 지도하는데 그친다. 어떻게 하면 이 실험의 실패를 줄일 수 있을까?
외국학교를 다닌 한국 학생의 의문
『대한민국의 시험』,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의 저자 이혜정 교수는 평가 연수 관련 강연에서 자신의 자녀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한국교육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자신이 외국에서 학위 공부를 하느라 자녀도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한국에 돌아와 자녀를 한국 학교에 보내었다고 한다. 외국과 한국의 전혀 다른 교육 방식에 자녀가 적응하지 못했을 거란 점은 누구나 예상했던 것. 예상했던 이야기지만 이교수의 자녀 입에서 나온 말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말이다. '엄마, (한국 학교는) 왜 이렇게 실패한 실험이 많아요?'
실패한 실험인가?
아무런 생각없이 사용했던 단어들이다. 실패한 실험. 많은 교사들은 실험 수업을 하면서 실패를 경험한다. 성공적인 과학수업을 위해서 몇몇 교사들은 '사전실험'을 통해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며, 어느 부분에서 학생들이 어려워하는지, 어떤 부분때문에 실험 결과가 실패하는지를 미리 경험, 연구하기도 한다. 바쁜 와중에 과학실로 내려가 실험도구로 직접 사전 실험을 해보는 교사는 시간을 투자한만큼 실험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고, 다음 과학 수업을 보다 알차게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이런 노력의 효과가 교사에서 멈추고 만다는 것이다. 왜 교사만 사전 실험을 통해 '과학'을 하는가?'
실패의 축적이 과학이다
수업을 하면서 실패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핵심 발문을 놓치거나 학생의 수준을 간과하고, 교사의 물음에 전혀 예상치 못한 학생의 답변이 나와 계획된 수업이 이뤄지지 않는 동료 장학의 경험. 그러나 그 실패의 과정을 되짚고 반성하면서 더 나은 수업을 설계한다. 실패가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반성하기만 하면 수업의 질은 하루가 다르게 향상될 것이다. 실패와 실수는 '더 완벽한 배움'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사전 실험에서 겪은 많은 변수와 실패 또한 교사가 실험을 완벽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것들이다. 교사에게 도움이 된 실패의 경험을 왜 학생들에겐 제공하려 하지 않을까? 교사가 사전실험의 실패를 통해 실험의 여러가지 현실적인 조건과 변인을 배워가는 것처럼, 학생들도 실험의 실패와 착오를 통해 다양한 경험과 변인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내 과학 수업은 '실패했다'는 한 마디와 함께 지식만을 주입하고, 실패의 반복 속에서 정답으로 나아가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
다시 수업으로 돌아가서, 학생들에게 연기가 양쪽에서 나오는 이유를 물었다. 다양한 추측이 나오지만 실험을 재설계하기 위한 모습까지 나아가진 못했다. 초등학생에겐 다소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지식을 얻고 끝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변인과 실험의 절차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하게 했다. 작년의 광합성 실험도, 재작년의 콩나물 실험도 모두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어릴적 그토록 많이 들었던 에디슨의 일화를 까먹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기억해보자. 현실 앞에 우리는 '실패한 실험'으로 마무리하고 말지만, 현실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에디슨의 도전은 수천번의 실패를 성공으로 만든 '과학'의 역사다. 서로 다른 실험결과가 나온 모둠끼리 [둘 남고 둘 가기]를 통해 실험을 재설계하는 일, 내가 예상했던 결과와 다르게 나왔을 때 혹시 놓친 변인은 없는지 검토하는 훈련. 과학 수업에서 발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