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수업] 교과서를 믿지 마라!
중국 국보 1호, 청명상하도 속 고려인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에는 '고려'시기의 역사를 서술하는 페이지의 동기유발 자료로 중국의 국보 1호인 '청명상하도'를 삽화로 제시하고 있다. 대단원 2단원인 '세계와 활발하게 교류한 고려'에 알맞은 삽화인 이 그림은 중국 북송 말 장택단이 그린 북송 도성의 풍경으로, 청명절의 북송 상인과 주변 국가의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이다. 혹이 두 개가 난 낙타를 이끌고 성문을 지나는 상인의 모습과, 갓과 도포를 쓴 고려인의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어 고려의 교류사를 확인하는 중요한 자료로 제시되고 있다. 나 역시 수업에서 이 부분을 자세히 확대하여 아이들에게 보여주었고, 아이들은 신기한 눈동자로 그림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고려인이 북송을 방문하는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며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정말,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사람은 고려인일까? 고려인이라고 주장한 연구나 학자는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교과서에 제시된 삽화를 본 많은 교사와 학생들은 별다른 의심없이 삽화 속 인물을 '고려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고려인(?)스러운 복식을 콕 집어 설명해주고 있는데다, 교과서란 권위있는 매개물이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인물은 '고려인'이라 보기 힘들다.
어느 네티즌의 주장
청명상하도에 대한 수업을 하고 난 이후, 어느 웹사이트의 중국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청명상하도'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여기에도 역시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인물이 고려인이라 주장하고 있는데, 이 글에 대해 한 네티즌은 고려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림 속 복식의 갓은 고려의 전유물이 아니며, 갓이 발달한 역사를 살펴보건대 창이 긴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송나라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쓰는 '차양(햇빛가리개)' 정도의 모자라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전통적인 갓은 18세기에 원나라 말기 무관복장이 변형된 것인데, 위 그림은 11세기 작품으로 시기가 맞지 않다는게 그 근거다.
의심이 들었다.
근거가 너무 구체적이었다. 교과서를 믿지 말라고 평소에 가르쳤던 내가 교과서를 너무 믿어버린 탓에 충격을 받았다. 그 삽화는 고려와 주변 나라의 교류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삽화이기에 상당히 중요한 자료로 수업에 활용되는 부분이었다. 이 사실을 많은 선생님들이 모른채 지나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욱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 교과서를 집필하신 분과 역사를 전공하신 교수님께 문의하였다. 과연 두 분은 뭐라고 대답을 하였을까?
고려인이라는 단정은 확대 해석
두 분의 전문가 모두 비슷한 대답을 주셨으나 입장은 약간 달랐다. 두 분의 공통된 의견은 그림 속 복식을 우리나라의 전통 갓이나 두루마기로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점에 동의하였으며, 그 근거로 위 의견과 비슷한 고려시대의 복식 변화 단계를 예로 들었다. 고려의 복식은 초기(신라 복식) - 중기(송나라 복식) - 중기(원나라 복식) - 말기(명나라 복식)의 순으로 각 나라의 영향을 받아 변화되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갓(흑립)은 조선시대에 형성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림 만으로 정확하게 복식을 구분하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점, 그리고 그림 속 인물을 '고려인'이라고 주장하는 주체가 중국의 청명상하도를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 측 입장이라는 점과 묘사된 인물의 복식과 주변 행렬 등을 판단할 때 '고려인이 맞다고 보긴 힘들지만, 아니라고 보기에도 힘들다'는 입장을 알려주셨다.
교과서를 의심하라
아이들에게 역사를 지도하면서 늘 강조하는 이야기다. 시대에 따라,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교과서 속 내용은 삭제되기도 하고 바뀌기도 한다는 것. 교과서가 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 그런데 내가 교과서를 너무 믿고 아이들을 지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상당히 부끄러웠다. 물론 이 부분은 어느 한 사람의 정치적인 의도로 왜곡하거나 삭제한 역사는 아니기에 다행이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교과서를 의심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5학년 선생님들이 고려 수업을 위한 참고 자료로 사용하였으면 한다.
※ 다만 고려인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중국 측 박물관이 고려인으로 추정한 근거가 미확인된 실정)으로 인해 현재 5학년 2학기 교과서에는 삽화가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나옴. 고려의 복식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들(고려불화를 비롯한 기록들)이 모두 고려후기이고, 원 간섭기에는 몽고풍 의복의 착용이 강요되었던 탓에 그림 속의 인물과 같은 갓을 찾기는 어렵다는 점이 있으머, 차양은 보편화된 것이라 고려인도 쓸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