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正義] 방학숙제 생각해보기 1
0. 방학숙제, 어떻게 할까요?
교사다모임 시간에 여름방학 숙제에 대한 안건이 올라왔다. 예전부터 늘 생각했던 것인데, 학년에서 한 명이 대표로 '방학계획서'를 무의미하게 작성하고, 이를 모든 반으로 배부하는 '일괄식, 통일식' 방학숙제에 대해 필자는 굉장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이런 느낌이 싫어 작년부터 '우리반 만의 방학 과제'를 계획해서 나눠주곤 했다. 학교를 옮기고 나니 이젠 내가 했던 고민을 모든 교직원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고,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교육을 고민하는 동료 선생님들께 고마움으 느껴지기 시작했다.
1. 그냥 없애자.
방학숙제를 없애자는 의견이 나왔다. 수년 전부터 일부 학교에선 '숙제 없는 방학'이란 모토가 심심찮게 언론에서 보도되곤 했다. 노는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방학만큼은 온전히 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놀랍게도, (3학년인) 우리반 학급 회의 시간에서 한 학생은 '방학은 공부를 쉬는 기간이므로 숙제를 해선 안 됩니다'라고 발표하기까지 했다. 어른인 내가 약간 부끄러워졌다. 없애는 것,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놓을 방(放), 배울 학(學)이니까.
2. 조금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가 갑작스레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방학숙제는 과연 아이들 만의 문제일까? 어느 선생님이 학급 밴드에 '개학 관련 공지글'을 올리셨을 때, 일부 학부모가 댓글을 통해 '드디어 해방', '살았다'와 같은 문구로 개학이 찾아옴을 반가워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학부모가 매 순간 느끼는 일일텐데 어찌 그리 학교에는 야박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동시에, 숙제는 부모를 위한 것임도 동시에 느꼈다.
부모가 집에서 자녀에게 자주하는 말 중 한 가지가 바로 '숙제는 다 했니?'다. 정말 부모는 자녀의 배움을 걱정하여 숙제 여부를 물어보는 것일까? 가정마다 서로 다른 경우가 있겠지만, 자녀가 숙제를 하는 그 시간이 부모에겐 상당히 편한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겠다는데, 부모인 나를 찾지 않고, 30분~1시간, 많게는 2시간까지 책상에 앉아있는, 이보다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어디있을까? 숙제를 없애면 부모가 자녀에게 할 수 있는 말 1가지가 사라지게 되고, 아이는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숙제 없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부모는 은근히 화가 날지도 모른다. 자녀를 통제할 권력 하나가 사라져 버렸으니.
3. 없애자고 하는 것도 통일이라 반대!
어찌보면 숙제를 없애자는 의견과, 있어야 한다는 의견의 절충이기도 하다. 왜 방학숙제를 없애는 것까지 통일해야 하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맞다, 사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업무처리와 교육지도에 대한 다양성을 부정하고 뭐든지 '하나'로 통일하려는 습성이다. 다양성이 죽은 사회의 끝이 무엇인지 정녕 모르는 것일까? 한편 사실 나 또한 숙제가 없는 방학을 꿈꾸던 한 때의 초등학생이었지만, 학생들의 학업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교사의 입장에서 숙제가 아예 없는 것은 정말 불안한 일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도, 교사의 입장에서 숙제를 내주지 않는 것이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다.
<각자 부족한 것을 보충해보자>
1학기를 보내면서 우리반 아이들이 조금은 보충했으면 하는 것들이 떠올랐다. 우선 아이들과 함께 방학 숙제에 대해 논의했고, 아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 대체로 학생들은 숙제가 없는 것이 낫다고 했지만, 일부 학생은 조금은 있어야 한다며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3학년 수준에서 이토록 놀라운 균형을 보여주는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칭찬했다.
학생들의 학습수준과 맞벌이부부가 있는 가정 여건을 고려해 학생들에게 방학숙제를 제시하기로 했다. 다만, 일괄적인 방학 숙제가 아닌 '개개인에게 필요한 방학 숙제'를 설정하여 제시하기로 했다. 각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고, 내가 한 명씩 확인하였다. 대체로 아이들은 자기 숙제를 설정할 때 '추상적'으로 적어 오는데,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수치화'가 중요함을 설명하면서 아래와 같은 원칙으로 숙제를 설정했다.
1) 수치 설정 : 수학문제 20문제 풀기 - 방학 40일 동안 20문제를 푼다고? 500~1000문제로 상향 조정
2) 목표 초점화 : 단원을 정하기 - 4단원 곱셈(두 자리수 x 한 자리 수)
3) 지속성 확인 : 설정한 수치와 목표를 1주일 단위, 1일 단위로 나누기
4) 동력 설정 : 체크판 나눠주고 부모님께 확인 받기, 방학 후 모두 완료한 학생은 사제동행 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