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수업] 그림에 어울리는 시 쓰기 (3학년 2학기 국어 4단원)
시화는 어떤 역할일까
보통 시 쓰기 수업에서 활용되는 '시화'는 시를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하기 힘든 이미지를 활성화시키는데 활용된다. 시에 사용된 낱말이 매우 어려워서 이미지화하기 힘들거나, 시를 이해하기 힘든 독자를 배려하기 위해 사용하면 효과적일 것이다. 시는 경험에서 우러난 감정을 매우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함축적인데, 이로 인해 시를 읽는 이의 마음에 각기 다른 시상으로 떠오를 것이다. 열린 시상을 원한다면 시화는 기피해야 할 대상이지만, 시를 쓴 이의 확실한 의도를 전달하고 싶다면 시화도 시의 감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화는 어떻게 수업에 활용되었나
그런데 이 시화 그리기가 국어 또는 미술 수업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살펴보면, 시 또는 그림의 본연에 충실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대개 시를 읽고, 시의 내용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수업의 한 활동으로 구성된다. 어린 학생들은 시 속에 드러난 구체적이고 표면적인 낱말이나 문장에 초점을 잡고 그림을 표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의 함축성을 해치는 구체적인 그림이 드러나 오히려 시의 감상을 방해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데, 교실 속 수업자가 이런 세세한 부분을 챙기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시화 그리기 활동의 애초 목적은 시가 아니라 '시간'이기 때문이다.
시화를 새롭게 활용하는 방법 - 先시화, 後시 쓰기
미술 시간에 '달 콜라주'를 하고 난 후 교실 게시판에 붙여두었다. 그냥 놔두기엔 너무나 아까운 작품들이었다. 같은 소재인 달을 두고도 많은 학생들이 저마다의 생각과 감정을 서로 다른 그림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시를 바라볼 때 다양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이 작품을 시 쓰기 수업과 활용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몇 작품은 그림으로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기에, 그림을 잘 드러내는 시 쓰기로 수업을 구성했다.
마음에 드는 (친구의) 작품을 골라 시로 쓰기
이 때 시화의 소재를 '자기 작품'이 아닌 다른 친구의 작품 한 가지를 고르라고 했다. 누구의 작품을 고른 것인지는 비밀로 하고, 그 작품에 어울리는 시를 쓰게 했다. 다만, 시를 낭송한 후에 누구의 작품을 참고한 것인지는 퀴즈 활동으로 열어두었다. 퀴즈의 의도는 시를 '직접적으로' 쓰려는 3학년 학생들에게 나름의 '은유적 사고'를 유도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연필을 연필이라 부르지 말고, 달을 달이라 부르지 말라고 지도하였다. 대신 떠오르는 다른 대상, 또는 그림에서 얻은 느낌을 바탕으로 그럴듯하게 표현해보게 했다.
효과
그림을 감상하는 효과가 있으니 미술 수업을 한 셈이다. 그림을 설명이 아닌 시로 나타내는 과정에서 '언어'와 '상황'을 생각하게 했으니 꽤 함축적인 시 쓰기 활동이 되었다. 퀴즈 활동이 더해지니 학생들이 즐거워했다. 시를 금방 쓴 친구들이 많았지만, 다 쓴 시를 한 명씩 검토해주는 과정에서 작품과 시를 비교해보게 했고, 직설적으로 드러난 낱말은 작품을 다시 보면서 다른 낱말로 바꾸어보도록 독려했다. 이는 우리반 학생의 심리와 시상을 파악하는데에도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도, 시에 어울리는 그림그리기가 아니라 그림에 어울리는 시 쓰기로 선후를 바꾸었더니 국어 시간 다운 수업이 이루어졌다. 친구가 그린 작품에서 얻은 놀라움과 감동을 시로 나타냈으니 3학년 2학기 4단원, 시 쓰기 활동에 알맞다. 자신이 표현한 감정을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반응, 표현하게 되었다.
우수작 소개
우수작 두 편을 아래에 소개한다. 굵은 글씨로 된 표현은 나와 학생이 3번 이상의 소통과 수정을 거쳐 만들어 낸 표현들이다. 아래 두 작품의 그림은 '우주시계'라는 한 작품을 참고한 시다. 아래에 따로 적은 글귀는 처음에 '달'을 가리키거나, 그림 속에 그려진 확실한 대상을 가리켰다.
* 세 개의 마법 지팡이, 큰 언니, 작은 언니,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