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正義] 스승의날 기념 손쉬운 수업?
참 뻘쭘한 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스승의 날'을 폐지하자는 청원이 더러 있는데, 적게는 50~100여명, 많은 청원은 만 명 이상이 동의하였다. 쉽게 폐지되진 않을 것 같고, 스승의 날은 내일이고, 이 뻘쭘한 상황을 어떻게 지나칠지(?) 고민했다. 그래도 스승의 날이니까, 평소보단 내가 좀 편했으면... 이 날 마저 힘들다면 참 서러울 것 같았다. 그래도 스승의 날이니까, 스승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는 의미를 주기 위해 다음 활동을 생각해봤다.
1) 선생님 되어보고 소감 발표하기
우선 내가 학교에 와서 아침부터 아이들 하교 전까지 해야 할 일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보고, 해야 할 일들을 아이들에게 맡긴다. 1명의 학생이 10~20분씩 맡으면 우리반 모두가 골고루 '스승 체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 이 모든 것을 아이들이 다 해낼 수 있을까? 나보다 더 잘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1) 아침 자습시간 / 우유 챙기기, 독서 지도, 1교시 수업 준비, 교실 환기, 통신문 걷기, 일기장 확인 등
2) 수업 / 어떤 이야기로 수업 시작할지 고민, 모르는 친구가 손을 들면 옆으로 가서 친절하게 설명하기,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학생에게 수업에 참여하도록 말하거나 다가서서 도와주기, 수업 마무리 후 교과서 정리하게 하기, 공책에 쓸 주요 내용 칠판에 적기
3) 쉬는 시간 / 교실 생활지도, 복도 생활지도, 교실 전화 대신 받고 쪽지에 메모하기
4) 점심 시간 / 가장 늦게 밥을 먹기, 잔반 확인하기, 양치하는지 확인하기, 알림장 적기
5) 방과후 / 나머지 학생, 집에서 각자 1과목 씩 맡아 내일 수업 준비하기)
2) 선생님의 선생님 이야기 듣고 얼굴 상상해서 그리기
나는 학교에서 어떤 아이였을지 아이들이 무척 궁금해할 것 같았다. 선생님이란 존재를 구성하는 여러가지 마인드에는 '우상'과 '반발' 두 가지 심리가 크게 작용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잘 가르치는 선생님들에 대한 인상이나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전문직이라 주장하는 교사들의 교실 속 교육행위를 보면 상당부분 '어릴 때 본인이 보고 자란' 은사의 교육 행위를 그대로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이들에게 주로 하는 잔소리나 교육활동을 이런 관점에서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반발의 경우도 없지 않다. 살짝 떠들었다고 앞으로 나와 양 볼을 찰싹(아프진 않지만 소리가 나서 약간 기분 나쁠 정도로) 때렸던 영어 선생님, 내가 전 남자친구와 닮았다며 성을 물어보고 등에 자꾸만 손을 넣었던 초등학교 옆반 선생님, 지도서만 보고 우리는 수업 중 단 한번도 쳐다보지 않은채 작품의 참고자료와 자신의 지식을 일장연설하다가, 자고 있는 우리를 보며 '바퀴벌레'라고 말하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강남(혹은 해운대) 아이들은 지금 벌써 인수분해 10번은 돌렸다며 일차함수도 모른다고 타박했던 중학교 수학 선생님. 아, 한번 쓰기 시작하니 끝도 없이 써질 것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은 기억이 더 강하게 남아있다. 남몰래 참고서를 챙겨주던 중1 담임 선생님, 매일 모르는 문제를 5개씩 적어 오라던 중2 담임 선생님, 모든 학생을 공평하게 대우했던 중3 담임 선생님. 야자 시간에 조퇴하겠다고 하면 아무 이유없이 조퇴증을 끊어주며 웃어주시던 고1 담임선생님,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을 타박하며 짜증을 내도 절대 선은 넘지 않았던 고2 담임선생님, 모 대학의 어려운 수시 논술을 문제를 살펴보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문제를 풀어 주시던 고3 담임선생님. 마지막으로, 우리와 함께 뒷산으로 등산을 가고, 문집을 만들어주시고, 축구도 하며,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계획해주신 초6 담임 선생님까지. 이 많은 선생님들을 다 말해주고 나면 아이들은 나의 선생님을 어떻게 표현할까?
3) 부모님께 편지쓰기
세상에서 가장 오래 배우는 스승은 부모다. 수저를 드는 법, 똥오줌을 가리는 것, 세수와 양치질 하는 법, 옷 입는 법, 어른께 인사하는 법,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아프면 보살펴주며 잘하면 누구보다 기뻐하고 칭찬하는 진짜 스승. 부모님께 배운 것 중 가장 고마운 것 3가지를 생각해서 편지에 적어보게 하면 어떨까? 어버이날에 쓰는 편지는 형식적이니까, 이렇게 이색 이벤트를 준비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스승의 날을 없애자는 청원의 근본적인 이유가 '학부모'때문인데, 스승의 날에 부모님께 편지쓰기라...
누가 뭐라던 크게 상관 있겠는가. 나를 대우하지 않아도 좋다. 요즘 같은 세상, 갑질이나 안 당하면 다행 아닌가? 나를 존경하지 않아도 좋다. 나도 아이나 부모를 존경해본 경험은 별로 없으니까. 학생 개개인이 존경, 존중받도록 가르치는게 내 일이고, 그러다보면 누군가는 나를 대우하고 존경하겠지. 안해도 그만이다. 나는 이 일이 좋으니까.
스승의 날은 없어져도 스승은 영원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