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正義] 아물지 못한 상처
패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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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5 22:19
#1.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제자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자랑을 했다. 4월 3일에 맞춰 간다는 이야길 듣고 '좋은 학교'라고 생각했다. 현기영 씨가 쓴 '순이삼촌'과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중학교 시절 읽었는데,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의 충격적인 문체와 내용은 지금도 심상으로 남아 가끔씩 떠오르곤 한다. 언론에서는 4.3사건 당시 생존했던 제주도민과 지식인의 인터뷰를 모아 보도했고, 많은 사람들은 4.3사건의 아픔을 다시 떠올렸다. 아물지 못한 상처임을 기억한다면 또다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2. 2014년 4월 16일, 나의 제자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를 향해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있었다. 그 학교는 비록 4월 3일에 맞춰 수학여행을 간 학교는 아니었지만, 독립기념관을 꼭 8월 15일에 가야 하는 법은 없는 것처럼... 아이들은 4월의 제주를 향해 푸른 진도 앞바다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시간은 기억하기 힘든ㅡ 그러나 기억해야만 하는 또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4월 16일, 3학년을 맡은 나는 4년 전 초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았던 이 아이들 앞에 담임교사로 서 있다.
#3. 3,4학년 아이들은 다음달에 생존수영 교육을 받으러 간다. 전국의 모든 학교 학생들이 아마도 이 교육을 받고 있을 것이다. 2~3일의 현장체험학습, 보통은 체육 교과를 시수로 정하고 '수영'을 배우러 간다. 매주 1시간 씩 이뤄져야 할 체육수업은 이상한 이유로 생긴 '생존수영' 과정에 집중되어 시간을 빼앗기고, 마냥 즐거워해선 안 되는 태생의 이 체험학습 앞에 아이들은 그저 싱글벙글 웃고 있다. 철없는 아이들에게 웃지말라고 정색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실 그대로를 설명할 수도 없다. 마음 속 한 켠에는 당혹감과 부끄러움이 가득해지고 있다.
#4. 내 부끄러움의 출처는 생존수영이 생기게 된 배경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 현장에는 '생존수영'이란 이름의 체험학습을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지침이 내려왔다. 그날 제주로 가던 수백여 명의 고등학생과, 아이들을 살리려고 끝까지 남아 있던 생님들은 차가운 진도 앞바다에 빠져 생존하지 못했다. 비극의 원인은 지금도 밝혀지고 있지만, 누구도 그날의 사고에 대해 '학생들의 수영 실력'을 참사의 원인으로 꼽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이후 누군가는 '학생들이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생존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나보다. 수많은 교사들이 이 이생한 생각에 따라 협조해야 한다.
#5. 이미 2014년에 이미 수영교육 의무화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네티즌의 반대 여론으로 취소되었다. 2016년 한 의원은 초중고 수영교육 의무화를 주장하며 '세월호의 교훈을 잊었냐'고 말했다. 교훈을 잊은 것은 누구인지, 아니면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나라도 아물지 못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이들의 행태에 제대로 된 가르침을 전해야 할 것 같다. 아물지 못한 상처임을 올바르게 기억한다면, 적어도 나의 세대나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선 또다른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