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에듀콜라
2017년 전국 단위 연수에서 만났던 인연으로 뒤늦게 들어온 모임 에듀콜라
교육을 톡 쏘다는 슬로건이 인상적이었고,
편집장이 매력적이어서, 그리고 글쓰기가 좋아서
고민 없이 한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벌써 6년이 지났다.
그 사이 나의 삶에도, 세상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2024년이 찾아왔다.
2024년 다시 만난 에듀 콜라는 예전과 많이 달랐다.
복작대던 사람이 줄었고, 사람들도 많이 변해있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활동이 줄고
매체의 다양화로 글을 읽는 사람이 줄었고
기존 멤버들은 자신의 장점을 살려 떠나는 이도 있었다.
나 역시 그 변화의 물 줄기의 하나였다.
30대 초반(모두 그쯤 나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열정으로 가득 찼고 자신감이 넘쳤고 건강했던 우리가
이제는 삶의 무게를 조금씩 더 짊어지게 되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40대가 가진 무게는
20대의 자신감이 싹 틔운 30대에 열정이란 꽃이 맺은
결실이라기에는 아직 설익고 무겁기만 하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저 열매들을 살찌우기 위해서
우리는 부단히 대지의 양분을 빨아들이며
여름날의 무거운 날씨와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이겨내고 있다.
가끔은 내 몸에서 붙은 매미소리가 무겁고,
기둥을 수없이 오르내리는 개미의 발걸음도 따갑다.
그저 이 열매에 양분이 가득 차기만 기다리며
말 그대로 존 버의 시기가 찾아왔다.
그 존 버의 시기에 다시 만난 에듀콜라 사람들은
5년 전의 반가움을 세록 떠오르게 해줬다.
"아 나만 미친 게 아니구나..."
교육현장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싶었고,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내가
에듀 콜라에서 느낀 첫 감정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었다는 안도감과 공감대는 그들 속에 내가 파묻힘에 거리낌을 없애줬다.
혼란의 시기를 겪고 다시 만난 그들에게서도
"아 나만 힘들 게 아니구나..."
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받게 되었다.
누구나 힘들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제일 힘들다.
하지만 그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럼에도 에듀 콜라다.
그동안 너무 많이 내버려 뒀던 것 같다.
누가 읽기나 해?
요즘 누가 글을 읽어!
댓글도 안 달리는 데
바쁘니까.
뭐 핑계를 찾고자 더 노력한 것 같다.
아니 그 핑계를 글로 썼다면 에듀 콜라를 가득 채웠을 수도 있다.
그나마 가장 핑계 다운 핑계를 찾아본다면
아마
더 잘 쓰고 싶어서, 더 잘 써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초심은 그게 아니었는데
글의 내용보다 글의 기교에 더 신경을 쓰느라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잘 버텨준 두 편집장님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다시 한번 에듀 콜라에 탄산을 불어 넣어야겠다.
미디어 시대라 할지라도 누군가는 글을 읽을 것이고
글이 흥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내 글의 공감을 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세상에 내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2017년의 내 모습을.
터진 꽃봉오리에서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려 안간힘을 내뿜던
그 초심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날
솥뚜껑에 고기를 구웠다.
뜨거운 불 앞에서 정신없이 고기를 구웠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 정성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기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왜 나만 힘든가라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들이 맛있게 먹어주니까 그냥 좋았다.
뭐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런 유대감이
에듀콜라가 아직도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주제도 없고 모습도 다르고 정신없이 제멋대로 올려진 솥뚜껑 위에 올려진
저 고기와 야채들이 우리에게 한바탕 행복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이제 에듀 콜라에 다시 불을 지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