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헌 책을 버렸습니다”
한 날 아내가 낑낑 거리며 박스를 옮겼습니다. 뭔 일인가 싶어 보니 지인께서 자녀가 어릴적 읽던 책을 물려주셨던 것입니다.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내용이 좋은 터라 책장을 채웠었지만 아이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저는
“저는 오늘 오래된 아이들의 헌 책을 버렸습니다”
저 수많은 책들은 제 욕심을 의미합니다. 아이가 조금 더 책을 많이 읽기를, 이왕이면 더 좋은 책을 읽기를 욕심냈던 것이었습니다.
그 좋다라는 의미가 아이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욕심은 곧 아쉬움이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과연 전시용 책이 가치가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책도 읽히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읽을까하는 마음에 쉽게 놓지 못했습니다.
일년이 더 지나도 선택받지 않는 책이 과연 존재의 이유가 있을까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참 행복합니다. 어디서라도 “어 내가 책에서 봤던 것이다!”라며 떠올려 줄 때면 가슴속에서 뿌듯함이 쏫구칩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어 아이의 삶의 지혜가 되길 바랍니다. 언젠가 아이에게 나의 지식 이상이 필요할 때 책이 곁에 있어준다면 좋겠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책의 양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책 잔뜩있으니 마음껏 찾아보라는 것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곁에 두는 편이 낫겠습니다.
옷에도 유행과 스타일이 있듯이 철 지난 다른 취향의 책은 돈가스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보리밥뷔페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이에게 한권씩 보여주며 낡은 책을 정리했습니다. 버려지는 책들이 아까워 나눔을 생각해보았지만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정리를 했습니다.
한결 비워진 책장을 보니 가득 찼을 때 보다 더 책이 잘 보였습니다. 가벼워진 책장처럼 아이의 책읽는 마음도 가벼웠으면 합니다.
다시 채움을 위해 비우려 하지 않으려고요.
비우기 위해 비워보려 합니다.
비워진 게 원래 모습이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