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있다. - 파브르 곤충기
엄마. 집중력 짧은 아이들을 데리고 40분짜리 수업을 하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야.
40분 잘 앉아 있는 아이들도 있는 데 집중력보다는 인내심에 가까운 것 같아.
내 경험으로는 그래. 지루해서 조냐고? 안타깝게도 반대야. 항상 시끄럽지.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 교실 분위기가 달라. 우리 반 애들은 나를 닮나 봐.
안 그래도 동동 떠다니는 교실이 한 번씩 뒤집어질 때가 있어.
특히 더위가 시작되려는 요즘 같은 늦봄이면 말이야.
한 번씩 교실에 손님이 찾아와.
주로 남자아이들은 그를 환영하려고 실내화나 책을 쥐고 여자 아이들은 소리를 꽥꽥 질러줘.
뭐 소리 지르는 남자도 있고 몸이 먼저 반응하는 여자 아이들도 있어.
그 분께서는 노란색 검은색 줄무늬 옷을 화려하게 입으셨어.
긴 다리와 큰 눈이 아주 매력적이야.
날린 몸동작으로 들어와서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놔.
문단속 따윈 안중에도 없다니까.
가끔은 새벽부터 들어와서 우리를 기다릴 때도 있어.
정말 못 말려. 맞아. 벌이야. 정확이 말하면 쌍살벌.
얘가 날아다닐 때 두 길고 가는 다리를 쫙 펴고 나는 데 이게 대나무살과 비슷하다고 해서 쌍살벌이야.
언뜻 보기에는 말벌 같은 데 전혀 다른 친구야. 성질이 독하지 않아서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데.
어느 정도 괴롭혀도 도망가규 대들지는 않더라고.
매년 봤는 데 물리거나 쏘인 건 한 번도 못 봤어.
어쩌면 내 사냥 기술이 뛰어나서 그런가 봐.
오히려 안쓰럽고 고마운 아이야. 겁쟁이에다가 맨날 말벌한테 공격당한데.
얘네는 바퀴벌레나 나방의 유충을 잡아먹는데. 물론 물리면 꿀벌보다는 아프데.
아이들이 알레르기가 있을 수도 있고. 그러니 나는 사냥을 해야겠지.
감히 만물의 영장의 아이들을 한낮 벌레가 겁을 주다니 말이야.
처음에는 실내화나 책을 사냥을 했어. 원샷원킬 한방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 거야.
근데 사실 고민을 많이 했어. 도덕 시간에는 생명존중을 알려줘야 하거든.
그리고 아이들이 행여 따라 하기라도 할까 봐 작전을 바꿨어.
창문을 열고 대화를 시작했지.
“아 브라운이야. 선생님이 키우는 애완곤충이야. 걱정하지 마 우리 애는 안 물어요. 브라운 나가!”
라고 하자 거짓말처럼 창문으로 나갔어.
아이들은 나를 우러러보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나는 곤충과 대화하는 초인이 되었지.
하지만 우연도 한두 번이었어. 결국 나는 잠자리채와 채집통을 했어.
우리 반뿐 아니라 수업 중에 옆 교실에서 환호성이 들리면 종종 출동해서 생포했어.
투명한 통에 넣어서 심지어 관찰을 시켜주기도 했어.
일 년에 한 번 정도 이렇게 처음 생포한 날은 곤충학 시간이야.
말벌과 쌍살벌의 차이에서부터 생명존중, 곤충의 생물학적 가치 등을 이야기해주면 40분이 금방 흘러가.
그래야 다음에 또 들어와도 아이들이 덜 놀래. 안 놀라는 게 아니고 덜 놀라.
이게 다 엄마 아빠 덕분이야.
어릴 적 가르쳐 줬던 곤충 채집기술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에프킬라는 사용할 줄 알아도 잠자리를 채를 처음 만져봤다는 13살 아이들을 보면서
7살 때 뒷산을 뛰어다니며 수많은 곤충을 겁먹게 했던 꼬마는 잠자리채 질 한두 번에 영웅이 되었어.
근데 엄마 사실 이 잠자리채로 말이야.
교실에서 벌만 잡은 건 아니야.
교실은 또 다른 정글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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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땐 엄마가 생각이 난다.
오늘만큼은 우리 반 아이들처럼
엄마한테 실컷 고자질하고 싶다.
어두운 밤 침대에 누워 졸려 무거운 눈꺼풀을 참고
하얀 창에 검정 글씨로 아무에게도 말 못 한 오늘을
두 엄지로 두드려 내려가 본다.
선생님이 되어도 난 엄마 아들이고
결혼하고 아빠가 되어도 난 엄마 아들이다.
나도 엄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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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저도 말벌처럼
등장만으로도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면...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