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일지 - 첫인상
전화가 왔다. 어제 확정공문이 왔기에 인사차 올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갑자기?'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어짜피 발령 받기 전에 한번쯤은 인사를 하러 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다. 먼저 이야기 꺼내기도 약속 잡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먼저 이야기해 주심이 너무 감사했다. 딱히 바쁜 일이 없었기에 당일 약속임에도 흔쾌히 응했고 동료파견교사도 함께 하기로 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처음이라서 그런가 편하면서도 불편했다. 교사들은 최대5년 이내에 학교를 옮겨야 한다. 나이가 많던 적던 학교를 옮길 때마다 겪는 그 이질감이 바로 이 느낌이었다.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과 동시에 뭔지 모를 불안함이 밀려온다. 이런 인사이동이 큰 흐름으로 봤을 때는 장점이 단점보다 많은 것은 알지만 이 순간만큼은 쉽지 않다. 누구라도 그럴 것 같다. 세상 적응력 좋은 나도 피해갈 수 없다.
이게 뭐라고 고민이 되었다. 정장을 입고 가야하나 뭐라도 사들고 가야하나. 사회생활도 벌써 16년 차이지만 사바사, 케바케인지라 늘 눈치를 봐야 한다. 너무 편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옷차람에 간단한 간식을 동료파견교사와 나눠 사서 연수원으로 향했다. 앞으로 일년동안 매일을 출근할 길이라 생각하니 종종 나드리 삼아 다니던 길이 뭔가 새롭게 느껴졌다.
동료파견교사를 만났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같은 부서에 파견된 교사가 2명 뿐이라(다른 부서에 2명 더 있음) 결국 서로 의지하고 도와줘야할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면에서 지인이라는 점과 동갑이라는 점을 상당히 감사한 일이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어 대화도 잘 통할 듯 했다. 동료교사가 경쟁상대가 아니라는 것이 그저 좋았다. (현 근무지에서의 분위기와 사뭇다름)
팀장, 부서장, 원장 순으로 대면식을 했고 이후 부장님의 인솔로 다른 부서 직원들과도 얼굴보며 인사를 했다. 사실 파견교사의 위치는 말단인지라 부담이 없었다. 부서에서 하는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톱니바퀴의 역할이기에 남들보다 더 빠르게 갈 필요가 없어서 이 자리가 더 매력적이게 느껴졌던 것 같다. 기존에 계시던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해줘서 너무 좋았다. 내가 착각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경계심이 없는 시선이 반가웠다.
간단하게 학교에서의 삶과 다른 점들에 대해서 알려주셨다. 팀의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 해줄 것 (이건 뭐... 당연한 것이고), 이 곳에서의 일들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하지 말 것(눈치 백단이라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함), 기세등등하지말 것(맞다. 나는 벼슬이 아니다. 이 점은 늘 인지하고 살아야겠다), 외부활동을 자제해줄 것(나는 워낙 외부활동이 많았기에 주의해야할 점이었다. 특히 근무시간 내에는 이곳에 집중해야겠다 다짐함)을 부탁해주셨다.
마지막으로는 전입자와 만났다. 사실 전입자와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었다. 그리 티내지 않았던 것은 선발과정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까 싶어 서로 조심했었다. 결론이 나고 나서야 편하게 인사할 수 있었다. 업무를 간단하게 인수 인계 받았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안해본 일이기에 더 세심하게 볼 필요가 있었다. 표정이 밝아보였다. 이 곳의 생활이 행복해서 밝은 건지, 이제 나가서 밝은 건 지 알 수는 없었지만 오늘 본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첫 인상이 참 좋았다. 16년 전 신규교사 연수를 받을 때보다도, 13년전 1정 정교사 연수를 받을 때보다 많이 바뀐 이 곳이 어색하지 않았다. 나름 추억이 가득한 이 곳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참 좋다. 문득 나의 첫인상만큼 저들이 본 나의 첫인상은 어땟을까 고민도 해본다. 원장님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만날 떄의 모습보다 떠날 떄의 모습이 더 중요합니다."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 말이겠지만 나 역시 이 곳의 유배생활을 떠날 때 행복한 모습으로 서로에게 인사를 나눴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