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일지0 - 프롤로그
난 유배를 가기로 했다.
유배 : 잘못을 저질러 죄인을 먼 곳으로 격리 수용한다.
의 유배는 아니다. 물론 아무 잘못도 없이 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유배를 당할 만큼 죄를 짓진 않았다.
나의 유배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격리 수용이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달렸다. 큰 대의 따윈 없었다. 먼 미래를 예견하여 준비할 안목도 큰 꿈을 펼칠 욕심도 없는 것이 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볼 수 있지만 그건 니 사정이고,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다만, 그냥 살기보다는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하루하루 내가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했고, 내게 주어진 일을 더 잘 해내려고 버티며 살았을 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고, 선생으로서, 가족의 구성원으로써 소홀하지 않도록 살았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어깨에 놓인 짐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조금 힘들었다. 계속 달릴 수도 있겠지만 쉬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재충전의 기회를 주고 싶어 나 스스로를 격리시키고자 한다.
두 번째는 제목 그대로 배움이 있는 유배다.
선생으로서 교사로서 -선생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의미, 교사는 교육공무원으로써의 의미라 개인적으로 정의한다.- 나쁘지 않은 삶이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여 더 배우고 연구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이 살았다. 새로운 것을 알면 신나고, 모르는 것이 생기면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앞만 보며 쌓아온 배움의 길에 놓친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생물학적 인간의 신체구조는 앞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가끔은 옆도 보고 아래도 보고 뒤도 돌아봐야 한다. 40, 불혹을 앞둔 이 시기에서 나의 길에서 놓친 배움의 조각들을 주워 담아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는 중년의 길로 들어가려 한다. 멈춤으로 배움을 실천해 보고자 한다.
그 길이 의미 없지 않도록 유배일지를 쓰려 한다.
나의 일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가 하던 일을 멈춰서 나를 돌아보려 한다.
1년이란 기간 동안 무엇을 깨닫게 될지 설렘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