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체력 02. 쟤? 같은 반이었는데... 야, 너 이름 뭐야?
참을 수 없는 희미한 존재감
# 3월의 어느 날, 이름 외우기 놀이가 한창인 교실.
"야, 쟨 누구지?"
"쟤? 같은 반이었는데... 야, 너 이름 뭐야?"
"...서희정."
서운함, 민망함, 불쾌함 등 여러 감정이 올라오는 듯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조용히 이름 석 자만 말하고 만다.
# 4월의 어느 날, 시끌시끌 모둠 활동 중.
"야, 야, 야! 아 빨리해!"
"아, 왜 짜증이야? 너나 잘해."
"응, 아니야-!"
"야, 이거 빨리 가져와!"
"아 이 oo아, 이렇게 하라고!"
서로를 상처를 주지 못해 안달이 난 듯, 더 날카로운 말을 찾아 서로의 가슴에 꽂고 있는데-
정작 그 상황 속에 있는 아이들은 너무나 익숙해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 친구와 찾은 서점, 어느 선생님의 책 속에서.
한 활동이 눈에 들어왔다. 온라인상에서 닉네임을 서로 부르듯이
각자 자신의 별명을 소개하고, 별명 뒤에 '님'자를 붙여 존중하며 부른다는 내용이었다.
힘의 불균형, 바로잡기!
# 이듬해, 두 번째 학교에서 2월의 어느 날.
학급 운영을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던 중, 세 개의 조각들을 끼워 맞췄다.
6학년이라 아이들 사이 힘의 불균형이 제법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더 강하게 무시하며 막말할 수도 있고, 더 주눅이 들어 소심하게 위축될 수도 있기에
이 힘의 불균형을 조금씩 천천히 평등하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로 풀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서로 이름조차 기억을 못 하는 것이 현실이라
별명 대신 원래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님모심' 활동을 하기로 계획했다.
# 어색함 #오글거림 #이런 거 왜 함? #이상한 선생님 #올해 폭망..
3월 2일, 첫날에 서로의 짝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르며 연습 중인 6학년 교실.
학교에 가면, 희정님 옆에 사랑님~ 게임을 하며 서로 이름도 외우고, 님모심도 연습했다.
#희정님, 잘 좀 해YO~!
님모심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말끝에 자연스럽게 '요'를 붙였다.
물론 모든 아이가 그런 것은 아니었기에 혼란이 왔고, 아이들은 명확함을 요구했다.
그래서 토의 끝에 서로 존댓말도 쓰기로 했다.
보완관을 정했고, 서로 반말을 쓰거나 '님'을 붙이지 않으면 '미안합니다. OO님'하며 사랑의 인사*를 하기로 했다.
자존감 UP, 소속감 UP
#한 달 뒤, 계속 해야할지 고민이 있어서 솔직한(?) 학생들의 평가글을 받아봤다.
불만이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호평이었다.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나도 존중받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친구가 무시하고 욕할 때가 많아서 싸우거나 울 때가 많았는데, 그런 일이 줄어든 것 같다.'
'친구가 욕하면서 부르면 나도 똑같이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내가 좀 뿌듯하다.'
#호칭 바꾼다고 기업 혁신 아니야.
매년 '내 이름을 불러줘' 3월 2일 첫 활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작년부터는 관리자 분들의 긍정의 뜻으로 학교 전체로 확산되어 운영했었다.
1학기 때는 학년별로 요일을 정해서 운영하였고,
2학기 떄는 매일로 확대하여 실시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선생님도 학생에게 '희정님, 발표해봅시다.' 이렇게 경어를 쓴다는 것,
저학년 학생들이 서로에게 '님'을 붙이고 존댓말로 말을 한다는 것,
현실적인 운영 팁 부분과 특히 선생님들의 공감대 형성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1년 평가회 때, 각 학급에 자율성을 두는 것이 더 좋겠다 싶었지만-
학부모님들의 학교 만족도 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이 나왔기에 그냥 그대로 운영하기로 했다.
올해 3학년을 맡았는데, 에 내 이름을 불러줘가 유독 우리 아이들 입에 착 붙지 않는 듯 했다.
계속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부쩍 깊은 요즘이었다.
그런데, 2017년 3월부터 삼성전자에서 공통호칭을 '님'으로 정하고 시행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더 찾아보니 CJ 이재현 회장은 '이재현님'으로 통하며 2000년부터 시행중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계속 찾다보니 복장, 호칭 변화가 기업 혁신이 아니라며 한발 더 나아가 일하는 방식을
뿌리부터 송두리째 바꾸어야 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조금씩 천천히 물들이다.
# HOW TO ?
황금 연휴에 강원도 백운산에 다녀왔다. 곤돌라를 타고 야생화가 아름답다는 하늘 길로 향했다.
노랗게 빨갛게 조금씩 천천히 단풍이 들어가고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을법한 산비탈 사이사이 쨍- 한 형광빛 단풍나무가 몹시 예뻤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 나를 존중하는 마음의 힘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학급, 자존감과 소속감을 키우는 학급 문화
#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만들어가는 문화로
5학년의 한 학급에서 경어 사용에 대한 학생들의 반대 의견이 있어,
토론을 진행했다고 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당연히 경어 사용 반대, 폐지 등으로 결론이 날 것이라 예상했다고 했다.
그런데 판정단 8명 중 6명이나 찬성의 손을 들었고, 결국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귀찮고, 어색하고, 서로 존댓말 하기 싫은 반대 주장보다
서로 존중하고, 욕과 싸움이 줄어 사이가 좋아지는 찬성의 의견이 큰 차이로 우세했다는 소식.
찬성 패널에 작년 우리 반 아이들도 열심히 근거를 준비했다는 이야기에
혼자 조금 뿌듯했다. 잘 키웠네 그뤠잇!! :)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며 만들어 가는 학급 문화,
이런 경험이 쌓이는 것이 진정 '뿌리부터 바꾸는 혁신'의 첫 술이 되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