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방X에듀콜라] 김규아 작가와의 인터뷰 -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 『연필의 고향』 김규아 작가를 만나다
인터뷰어: 유새영
인터뷰이: 김규아
장소제공: 마포구 책방 사춘기(유지현 대표)
유새영: 인터뷰를 위해 3개의 주제를 준비해 왔는데요. 첫 번째는 작가님의 작품관에 대해서, 두 번째는 아동관과 교육관에 대해서, 세 번째는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에 대해 여쭤보려고 합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작가님의 소개를 듣고 싶은데요.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인교육대학교 졸업 후 용인에서 교직생활을 하시다가 독립출판으로 『물고기가 발걸음을 멈추면』(2016), 프로젝트 시집 『사사롭고 시시하게』(2016), 『연필의 고향』(2018)을 출간한 뒤 현재는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신데요.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독자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김규아: 안녕하세요(웃음). 얼마 전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한 작가 김규아 입니다. 자발적인 행복을 찾으려는 욕구를 발견한 직후 새로운 삶을 선택했고요. 즐거운 것들을 삶의 중심에 두면서 제가 좋아하는 것들 즉,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창작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새영: 본격적으로 『연필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샘터에서 정식 출간 된 작품이기도 하고, 김규아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해서 독자 분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 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저 역시 독립책방에서 『연필의 고향』을 보고 깜짝 놀랐었어요. 저희 반에도 연필이나 지우개를 모아 놓는 바구니가 있거든요. 가끔 그런 친구들이 있잖아요. “선생님, 연필 없어요. 안 가져왔어요.”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저기 바구니에서 가져와.”라고 하는 게 거의 일상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작가님이 교육경력이 없는 분이라고 생각해서 『연필의 고향』을 읽고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싶어 신기했습니다.
가끔 동화책 작가님이나 그림책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지금의 교실과 다른데?’ 싶을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이건 지금의 교실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잖아요. 혹시 『연필의 고향』을 쓰게 되신 이유나 모티프가 있나요?
김규아: 제 교실에도 연필의 고향처럼 주인 없는 연필을 꽂아두는 컵이 있었어요. 그 컵을 처음 뒀을 때만 해도 이야기를 만들게 될 거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5학년 담임이었는데 이야기에 나왔던 것처럼 실제로 샤프심이 없어지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유새영: 반 아이들이 전부 다요?
김규아: 전부는 아니고 몇 명이 그랬어요. 1달 정도였나, 일정 기간 동안 샤프심이 없어진다고 애들이 이야기를 한 거예요. 도둑질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게 통은 남겨둔 채 샤프심만 사라지니까 분위기를 심각하게 만들어서 “범인이 누구야?”라고 추궁하기에도 좀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연필의 고향』에 나온 선생님처럼 “그만 해라. 장난이 지나치다.” 하고 말로만 경고를 하다가 ‘우리 반 애일까? 다른 반 애일까?’ 혼자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연필이 샤프심을 납치한 거라면 재미있겠다.’라는 데까지 생각이 흘러가서 지금의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었어요.
유새영: 처음에는 연필들의 귀여운 반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연필의 고향』을 읽어주기 전에 생각을 했던 게, 흔히들 교실에서 샤프심 쓰지 말라고들 하잖아요. 끊어지면 샤프심 집어넣고, 다시 빼고 하느라 그 시간 동안 집중을 안 하니까요. 그런데 무조건적으로 샤프 쓰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것보다 이 책을 함께 읽고 “샤프를 쓰면 연필이 슬퍼하잖아.”라고 이야기하면 되겠다, 싶더라고요. 저희 반 아이들에게 제가 그런 식으로 비유를 많이 하거든요.
작가의 말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는데, “잃어버리기 쉬운 것들 중에 ‘나’는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모든 창작자들이 작품의 주제나 메시지를 밝히지는 않지만, 혹시 주제나 메시지에 대한 힌트를 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규아: 보편적인 메시지를 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연필의 고향』을 표면적으로 보면 교실에서 일어나는 연필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연필을 소중히 하자. 물건을 아끼자.’와 같은 메시지로만 읽힐 수도 있는데요. 저는 작은 일들이 모여서 큰 일이 된다고 생각해요. 작은 사건들이 커져서 결국 큰 사건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작게 보면 소소한 연필의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크게 보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라든지 그 사람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거든요. 물론 다뤄지는 이야기는 다르지만 작은 마음이 모여 큰 마음이 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품고 있는 마음과 연필들이 품고 있는 마음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작은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다면 자라서 더 큰 것들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새영: 연필의 작은 마음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좋은 힌트를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특히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너의 주인이 되어줄게.”라고 하면서 연필을 한 움큼 잡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 부분이 통쾌하게 다가온 것 같아요.
김규아: 감사합니다.
유새영: 그리고 이 작품을 읽고 궁금했던 점은 ‘연필의 고향’이라는 가게를 만들고 나서 뒤에 속편이 이어지잖아요. 그건 또 어떤 생각으로 만드셨을지 궁금했었어요. 이어지는 속편은 나중에 구상하신 건가요? 아니면 처음부터 구상했던 내용인가요?
김규아: 처음부터 구상한 내용은 아니었어요. 본문 내용을 처음 작업한 게 2017년 초였고, 책으로 만든 건 2017년 말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이 이야기로 책을 낼 생각도 없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묵혀뒀다가 2017년 말에 다시 꺼내서 봤는데 이야기에 비해서 그림 톤이 다운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게다가 흑백이잖아요. 그래서 마지막에 알록달록하고 경쾌한 이야기를 넣어 주면 느낌이 상큼하게 바뀔 것 같아서 뒷이야기를 추가했어요.
유새영: 뒷이야기가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아이와 주인공이 연결되잖아요. 그 연결성도 고려해서 작업 하신건가요?
김규아: 네. 고려하면서 작업했어요.
유지현: 마지막 장에 참새소녀가 나오잖아요. 되게 귀여웠어요.
김규아: 맞아요. 마지막에 참새소녀가 나오니까 이 아이를 데리고 뒷이야기를 만들면 귀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유새영: 그 참새소녀가 포인트가 되었던 것 같아요. 참, 축하 인사가 늦었는데요. 『연필의 고향』의 정식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김규아: 감사합니다(웃음).
유새영: 독립출판본이랑 정식출판본이랑 달라진 걸 홍보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릴게요.
김규아: 표지 마감이 양장으로 바뀌었으니까 훨씬 튼튼해 보이는 느낌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양장을 해보고 싶었어요. 양장은 첫 장을 펼치면 면지가 나오잖아요. 개인적으로 면지를 예쁘게 꾸미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독립출판은 표지를 펼치면 하얀 면만 나오는데 양장은 면지에 무늬가 들어가 있어요. 아마 주의 깊게 안 보셨을 거예요(웃음). 대부분 휙 넘기시더라고요.
유새영: 아, 그렇네요. 저도 지금 발견했어요. 이런 포인트가 있었군요.
김규아: 양장 그림책을 보면 펼쳤을 때 포인트로 나오는 책들이 있어요. 그림책 중에서도 특히 양장본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개인적으로 그 로망을 실현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독자 분들도 그 부분을 눈여겨 봐주시면 좋겠어요.
유새영: 내용면에서 바뀐 부분이 있나요?
김규아: 내용은 크게 바뀐 게 없고, 소소한 부분들이 수정이 많이 됐어요. 짚어주지 않으면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연필도 다시 그렸거든요. 독립출판본에서는 새 연필들 위주로 그렸는데, 출판사 측에서 헌 연필도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해서 헌 연필도 같이 그렸어요.
수정된 부분이 많아서 일일이 설명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대략적으로만 말씀드릴게요. 우선 폰트가 바뀌었고요. 페이지 수도 조금 달라졌어요. 그리고 디테일 측면에서 추가된 부분이 여럿 있어요. 여기를 보시면 없던 필통이 추가되고, 배경도 들어갔죠. 이런 식으로 디테일이 추가되었고요. 여기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배경이 달라졌죠.
유새영: 조연으로 등장한 아이들을 섬세하게 그리셨군요.
김규아: 네, 맞아요. 아이들이 대충 그려진 것 같다고 하셔서 다시 그렸어요. 디자이너분이 꼼꼼하게 봐주시면서 수정할 곳들을 이야기 해주셨어요.
유새영: 이렇게 보니 다르네요.
김규아: 내용이 약간 바뀌었다고 할 수 있는 게 독립출판본에서는 예진이가 멍 때리는 부분이 나와요. 두 컷 만에 판타지 세계로 넘어가는 건데요. 최근에 출판된 책에서는 잠드는 걸로 바뀌었어요. 아무래도 판타지적 경계를 넘어가는 건데 독자들에게 힌트를 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와서 예진이가 잠이 들고 깨는 걸로 판타지의 시작과 끝을 알리기 위해 수정을 했어요.
그리고 그 외에는 되게 사소한 건데 경계선 같은 게 추가됐어요. 연필의 라인 있죠. 얘네가 약간 사람으로 치면 머리가 없는 걸로 보이셨나 봐요. 되게 꼼꼼하게 봐주셨어요.
아, 그리고 시계. 보건실에서 갔다 왔을 때보다 시간이 안 지나간 것 같다고 해서 시간도 바뀌었어요.
유새영: 원래 시간 흐름을 몇 시간으로 설정 하셨나요? 한 시간 정도로 설정하신 걸로 기억하는데요.
김규아: 맞아요. 처음에는 대략 한 시간 정도로 잡았어요. 보건실을 간 게 10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는데 피구를 하고 들어와서도 비슷한 시간대인 것 같다고 해서 아예 시간을 바꿨어요.
유새영: 11시 30분으로 보이게끔 수정 하셨군요.
김규아: 확실히 시간이 흘렀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바꿨고요. 뒤쪽은 여기가 좀 바뀌었죠. 글자도 바꿨지만 건물 부분을 바꿨어요. 이건 제가 바꾸고 싶어서 바꾼 거예요. 소녀가 사라졌죠. 원화에도 소녀가 없이 배경만 있어요. 독립출판 당시에는 소녀를 따로 그려서 넣었는데 출판사에서는 소녀를 아예 뒤로 빼셨더라고요.
유새영: 참새소녀는 후속편을 위한 장치인가요?
김규아: 맨 처음에 그림을 그렸을 때에는 그런 생각을 안 했어요. 몇 년 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친구여서 이 아이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등장시키긴 했었죠. 그렇다고 바로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생각해서 등장시킨 건 아니었고요. 일종의 예고편처럼 넣은 것이기는 해요.
참, 그리고 참새소녀가 연필의 고향 가게 앞에 서 있는 장면에서 새 꼬리가 추가됐어요. 원래는 새 꼬리가 없는데 구도 상 새 꼬리가 보이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와서 새 꼬리를 추가했어요. 그거 말고는 마지막 장면. 클라이막스는 아기자기하게 꾸며봤어요.
유새영: 창문에 커튼도 다셨네요?
김규아: 이것도 물어봤어요. 커튼 있는 게 나아요? 없는 게 나아요? 물었더니 있는 게 낫다고 하셔서 커튼을 달았죠. 표지는 똑같은데 다시 그리긴 했어요. 독립출판본은 아이패드로 디지털 작업을 했거든요. 그런데 디자이너 분들이 결을 중시하시더라고요.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데 디지털 작업과 손 그림은 결이 확실히 다르다보니 차이가 크니까요. 디자이너 분이 디지털 작업 된 표지와 손 그림으로 작업 된 내지의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결국은 결이 달라서 다시 그려주면 좋겠다고 하셔서 다시 그렸어요.
유지현: 결코 같은 책이 아니네요.
김규아: 아무래도 같아 보이지만 소소하게 바뀐 부분이 있기도 하고요.
유새영: 확실히 소장 가치가 있네요. 독립출판본에서는 주인공이 6학년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정식 출판 과정에서 4학년으로 바꾼 계기가 있나요?
김규아: 처음에 6학년으로 설정했던 이유는 이야기가 성장코드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6학년이 초등학교 끝나는 마지막 단계이자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시기라서 성장 이야기에 6학년이 어울리겠다 싶어서 설정을 했는데요. 출판사 측에서 이 이야기가 저학년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으니 중학년으로 바꾸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 부분에 동감했고, 6학년으로 설정한 이유를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4학년으로 수정했어요.
유새영: 아무래도 스토리를 구상하실 때 5학년 담임이셨으니까요.
김규아: 네. 그래서 초반에는 고학년으로 설정을 했었죠.
유새영: 그런데 요즘에는 많이 내려와서요.
김규아: 네, 그렇죠. 요즘 아이들이 좀 성숙하죠.
유새영: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 볼게요. 이야기가 책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전업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데요. 가장 먼저 작가님의 이야기가 책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첫 작품인 『물고기가 발걸음을 멈추면』이라는 책은 어떤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나요?
김규아: 그 책은 책을 만들어야지, 다짐을 하고 그린 게 아니에요. 어느 날 예쁜 푸른색 노트를 샀는데 그림을 그려볼까, 하다가 낙서를 하게 됐는데 나중에는 만화를 그리게 되었어요. 계속 진행을 하다보니 이야기에 살이 붙기 시작했고 그게 쌓여서 독립출판으로 이어졌죠.
교직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요. 반에 생물에 관심이 많은 남자아이가 있었어요. 한동안 바다에 대한 책만 읽더라고요. 그러더니 “선생님, 우주에 대해 알려진 것보다 바다에 대해 알려진 게 많이 없대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 당시에 우주에 관심이 더 많았거든요. 우주라고 하면 상상력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생각해도 바다는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뭔가가 없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의 말이 되게 신선하게 들렸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우주에 있다고 생각하는 외계인과 같은 존재가 바다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게 상상을 하다 보니 물고기를 생각하게 됐던 거죠. 그 아이 덕분에 그런 상상을 하게 됐어요.
유새영: 그 당시에는 교직에 계셨잖아요. 독립출판 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김규아: 몇 학년 과정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교육과정에 독립책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5학년 교육과정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수업시간에 독립책방과 독립출판을 언급을 하면서 이런 걸 해보면 재미있겠다고 애들이랑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애들이 “선생님도 해보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교직에 있을 때에도 그림 같은 걸 교실에 게시도 해놓고 했거든요.
유새영: 아이들이 먼저 제안을 했군요.
김규아: 그 전에도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가 의도치 않게 이야기를 만들게 돼서 책으로 만들게 됐어요.
유새영: 보통 독립출판사를 통해서 내는데 펴낸이가 김규아로 되어 있더라고요. 북 클래스를 듣고 내신 건가요?
김규아: 당시에 북 클래스를 들은 건 아니고요. 스토리지북앤필름이라는 독립책방에서 인디자인 원 포인트 레슨을 들었어요. 지금이야 독립책방 겸 출판사가 많이 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책방에서 출판까지 겸하는 곳이 많지 않았거든요.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는 수업이었는데, 정말 기본적인 책의 틀만 알 수 있게끔 강연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초보니까 그걸 들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걸 들었어요.
유새영: 그럼 그 수업을 듣고 나머지는 직접 진행 하셨나요? 인쇄소도 알아보시고 유통도 하시고?
김규아: 네, 인쇄소도 직접 알아봤어요. 그런데 인쇄소를 알아본 것도 좀 허술하다고 해야 하나(웃음). 인쇄소가 을지로, 충무로 쪽에 많이 있다는 정보만 듣고 을지로에 갔어요. 골목에 들어서니까 잉크냄새가 나는 거예요.
유새영: 복사집 특유의 그 냄새 말이죠?
김규아: 네, 맞아요(웃음). 여기가 그곳이구나, 싶어서 거리를 걷는데 인쇄소가 생각보다 되게 많은 거예요. ‘견적을 어떻게 알아 봐야 하지?’ 싶어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는데, 저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곳보다 규모가 큰 인쇄소가 보이기에 거기로 들어갔어요. 그때가 주말이었는데요. 제가 그때 뭘 물어봤는지 기억도 안 나요. 그런데 제 질문에 되게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시는 거예요. 대표는 아니고 인쇄를 담당하시는 직원 분이셨던 것 같은데 친절하게 답변해주시는 그 느낌이 좋아서 ‘여기서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죠. 일종의 직감이었던 것 같아요.
유새영: 신기하네요. 저라면 인터넷을 뒤져보거나, 지인에게 물어봤을 텐데.
김규아: 당시에 제 주변에 독립출판을 한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유새영: 『사사롭고 시시하게』를 보면 도움을 주신 분들이라고 해서 꽤 많은 분들의 성함이 적혀 있기에 연줄이 많으신가보다, 생각했거든요. 책방 심다도 있고 디자인그룹도 있고 해서 인맥이 많으셨나보다 생각했어요.
김규아: 『물고기가 발걸음을 멈추면』은 후원 받을 생각을 못해서 자비로 출판 했어요.
유새영: 그럼 초판으로 몇 부를 찍으셨나요?
김규아: 200부만 찍었어요. 잘 팔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해서. 초판 인쇄본은 많이 나눠줬어요. 반 애들한테도 나눠주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2쇄를 찍었고, 그 후로는 아예 안 찍었어요.
유새영: 독립출판은 1쇄가 200부 기준인가요?
김규아: 그렇지는 않아요. 요새는 100부씩도 찍을 수 있어요. 요즈음은 독립 출판물 시장이 활발해졌고 책방이 늘어서 한 번에 대량으로 찍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해요.
유새영: 『물고기가 발걸음을 멈추면』은 지금까지 몇 부가 나왔나요?
김규아: 지금까지 400부를 찍었어요. 지금은 거의 희귀템이 되었죠.
유새영: 제가 400부 중 한 권을 구입한 거군요. 운이 좋았네요. 두 번째 작품이 프로젝트 시집 『사사롭고 시시하게』에요. 인터뷰 준비하면서 『사사롭고 시시하게』를 쓴 작가가 『연필의 고향』 작가와 동일인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 전에는 교직에 계셨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별개의 인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국어교육을 하니까 이런 프로젝트로 시집을 만드시는 분도 있구나 하는 건 알았는데, 그게 작가님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사사롭고 시시하게』를 사서 읽어봤는데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굉장히 좋더라고요.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는데 사람들은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잖아요. 『사사롭고 시시하게』의 서문이 『물고기가 발걸음을 멈추면』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고 봤거든요. 『물고기가 발걸음을 멈추면』에서 ‘네가 지금 서 있는 곳 말고 저 멀리 어디를 보고 있는지 궁금해. 너의 환상은 뭐야?’로 마무리 되잖아요. 이 주제를 아이들과 나누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 전업 작가가 되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하신 계기가 있나요?
김규아: 사실 교직생활을 하면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제가 애초에 교직이라는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건 아니었거든요. 온전히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약간 대안으로 생각하고 간 경우였어요.
유새영: 그렇다면 1순위는 어떤 걸 생각하고 계셨나요?
김규야: 그림을 하고 싶었어요. 저는 미대에 가고 싶었는데 집에서 반대가 있었고, 지원도 없었죠. 저도 그 당시에는 용기가 없었어요.
유새영: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서요?
김규아: 네. 제가 다닌 고등학교가 기숙학교였거든요. 공부만 시키던 학교였어요. 그래서 예체능 쪽으로 가기에는 힘든 환경이었어요. 미대에 가려면 학원도 다니고 해야 하는데 집에서 지원을 안 해줬으니까요. 그렇다고 독학을 하자니 자신이 없어서 진로를 어떻게 정할까 고민하는데 주변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흔하게 하는 이야기가 “교사가 뭐 별거니. 방학도 있고, 월급도 안정적이고.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 방학 동안 할 수도 있지.”라고들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생 때부터 혼란이 있었고, 계속 어영부영 어떡하지, 어떡하지 용기는 못 내다가 시험을 보고 교사가 됐죠.
어쨌든 교사를 하는 동안에는 최선은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이들과 시집도 만들고, 제가 좋아하는 걸 연계하면 행복하게 교사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게 제 내면을 완전히 회복시켜주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쌓이고 쌓이다가 결국 버티기 힘들어져서 작년에 휴직을 했고 1년 정도 쉬었어요. 쉬면서도 고민을 많이 했죠. 삶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이대로 사는 건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다.
유새영: 지금은 행복하신가요?
김규아: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정말 심할 때는 사람 만나는 것도 힘들어하고 했으니까요. 지금은 진짜 많이 좋아진 거예요.
유새영: 이제는 창작활동에 전념하시니까 규칙적으로 생활하실 것 같아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시나요?
김규아: 일단 잠을 푹 자고요(웃음).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해보려고 그만둔 거니까 거기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고 있고요. 생각보다 빡빡하게 스케줄을 세우지는 않아요.
유새영: 건강관리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연필의 고향』을 읽으면서 아이들을 독자로 상정해 놓고 쓴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아이들이 되게 좋아하는 책이지만요. 교직에 있을 때 생각했던 어린이와 전업 작가가 되어 생각하는 어린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김규아: 크게 차이는 없는데요. 시선 측면에서 자유로움을 획득한 것 같긴 해요. 교사였을 때보다 어린이를 조금 더 편하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학교라는 곳이 기본적으로 통제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전체적인 규칙이 있고, 통제해야 하는 대상이 있으니까 교사였을 때에는 통제의 대상,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기 바빴는데 지금은 얽매여야 하는 규칙도 대상도 없다보니 그런 면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요.
유새영: 학교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가지 일이 일어나잖아요. 이야기의 소재가 될 법한 이야기도 있고요. 작가님은 이야기의 모티프를 예전 학생 때 경험한 것에서 건져 올리시나요, 교직에 계셨을 때 목격했던 장면에서 건져 올리시나요?
김규아: 교직에 있었을 때 품어둔 것들이 좀 있어요. 그것을 어떻게든 많이 꺼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걸 계속 다듬고 있고요. 이 소재가 다 떨어지면 그때는 그때 가서 생각하려고요.
유새영: 기간제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김규아: 취재를 위해서요? 그것도 괜찮죠. 시간 강사를 조금 했었는데 그렇게 아이들과 만나는 것도 괜찮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경험이든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아이들도 보고 어른도 보고 다 같이 보는 세상이니까요.
유새영: 딱히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쓴다기 보다 삶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거네요?
김규아: 그렇죠. 누군가는 ‘애들이 좋아하는 내용이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동화 같은 데 어른이 봐도 재미있게 읽힐 수 있는 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너무 하나만 딱 정해놓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유새영: 앞으로 어떤 계획들을 가지고 계시나요?
김규아: 이야기를 많이 그리고 싶고요. 그림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양하게 도전해보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다 도전해보고 싶고요. 무엇보다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고 싶어요.
유새영: 지금 작업하고 있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김규아: 쓰고 싶은 이야기는 되게 많은데 어떤 것을 먼저 몰입해서 써야 하나 고민 중이에요. 그 중에서 굵직하게 생각만 해 둔 게 있는데요. 『연필의 고향』처럼 만화 형식인데 남자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학교 교실 풍경이 나오도록 구상해 놓은 게 있어요.
유새영: 참새소녀 이야기는 안 나오나요?
김규아: 생각은 하고 있는데 바로 다음은 아닐 것 같아요. 참새소녀를 주인공으로 해서 쓰고 싶은 이야기도 있어요. 그것도 나중에 꼭 책으로 만들고 싶어요.
유새영: 김규아 작가님처럼 활동하는 작가님 중에 선생님들에게 알려지면 좋겠는 작가나 알려지면 좋겠는 그림책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김규아: 그림책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눈여겨본 독립출판물이 있어요. 코피루왁님이 쓰고 그리신 『저 청소일 하는데요』라는 책인데요. 작가분이 실제로 청소일을 하시면서 그림도 그리시는데 최근에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내셨거든요. 그 책이 좋았던 이유가 직업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지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그 중에서도 청소일을 하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 고정관념을 건드리는 부분이 좋게 느껴져서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되게 매력있다고 느낀 책이었습니다.
유새영: 마지막으로 제 인터뷰의 공식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유은실 선생님은 어린이 문학을 ‘12가지 크레파스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진형민 선생님은 ‘이모/삼촌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하셨고, 작년에 인터뷰 한 박주혜 작가님은 ‘공상 수치를 올리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하셨어요. 작가님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보여주고 싶으신가요?
김규아: 저는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성장기에 관심이 있어요. 사춘기는 누구나 겪는 과정인데 그 과정을 애매모호한 시기로 보잖아요. 서툴고 애매한 것들이 가득한 시기가 되게 소중한 시기고, 아이의 마음과 어른이 연결될 수 있는 시기라고 저는 생각해요.
제 이야기를 통해 연결된 게 자신과 자신일 수도 있고, 별개의 아이와 별개의 어른일 수도 있고, 어른과 어른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른과 어른이 연결된다면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지, 하고 공감할 수 있는 거고 아이는 아이끼리 공감할 수 있는 거니까요.
유새영: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말씀이신 거죠? 따뜻해지는 말이네요.
김규아: 제가 사춘기와 같은 정서를 좋아하는 게 사춘기를 되게 행복하게 보냈기 때문이에요. 저는 중학생 때가 살면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어요. 진짜 행복했어요. 유일하게 학교가 좋았던 시절이에요. 놀러 가듯 학교에 다녔어요.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재미있었어요. 걱정거리도 없고 행복한 추억이 많은 시절을 보내서 그때를 많이 생각하다 보니까 내 정서를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가끔 들어요.
유새영: 작가님께는 중학교 시절이 인생의 보물 상자와 같겠군요.
김규아: 맞아요. 그때 마인드로 돌아가서 너무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지금도 가끔 해요.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유새영: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손에서 빚어진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이야기들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규아: 감사합니다.
✐ 『연필의 고향』은 2018년 2월 김규아 작가의 1인 출판사 ‘참새소녀’를 통해 독립출판 되었으며, 2018년 7월 샘터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다. 지금까지 펴낸 책으로는 독립출판물 『물고기가 발걸음을 멈추면』, 『사사롭고 시시하게 』가 있다.
✐ 이 인터뷰는 어린이책이 가득한 방 - 책가방의 작가 인터뷰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깊은 대화를 함께 나누어 주신 김규아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