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콜라X책가방] 박주혜 작가와의 인터뷰① 공상수치를 올리는 글을 쓰고 싶다.
박주혜 작가와의 만남⓵
박주혜 아동문학작가 × 유새영 선생님
인터뷰어. 유새영 선생님
인터뷰이. 박주혜 작가님
동행 및 사진촬영. 김보법 선생님
동행. 유루시아 선생님
인터뷰 하나_소개와 등단 이야기
유: 작가님 반갑습니다. 이렇게 인터뷰를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가볍게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아요. 불편하신 건 불편하다고 이야기도 해주세요. 오늘 인터뷰는 아동문학을 생산하는 작가님과 선생님들 사이에 다리가 되어주고 싶어서 추진하게 되었어요. 오늘 인터뷰는 인터넷교육매거진 에듀콜라와 어린이책 읽는 모임 ‘책가방’에 소개할 예정입니다.
작가님 사전조사를 하는데 정보가 많지 않더라구요. 88년도에 인천에서 태어나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 나오시고 2012년도에 문화일보에서 신춘문예로 등단한 것만 나오더라고요. 그때 한양대학교 석사 재학중이셨죠? 작가님 잘 모르시는 선생님을 위해서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박: 말씀해주신 프로필은 다 맞습니다. 음…. 그렇지만 저 프로필이 온전히 저를 말해준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우선 저는 A형이라던가, 키가 몇이라던가, 학교가 어디라던가 이런 명확하게 답이 나올 수 있는 것들로 그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눈에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어요. 저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첫 수업 때 ‘나에 대해 표현하는 글’을 쓰는 수업을 해요.
유: 대학생들과 하는 수업을 말씀하시는 거죠?
박: 네, 학부생과 수업을 하는데요. ‘나에 대해 표현하는 글’에 대부분의 친구들은 ‘나는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어느 학교를 졸업했고’, ‘어디 재수학원을 다녔다’ 고 써와요. 그럼 제가 항상 “나는 그런 것들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너희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여러분들의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을 보여달라”고 이야기 하거든요. 그렇게 사람에게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더 많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유: 제가 작가님 나이를 알고 깜짝 놀랐거든요. 2012년도면 25세에 등단하신 거잖아요. 그 때 출품 하실 때 ‘이번에는 좀 될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드셨나요?
박: 과 특성 상 계속 글을 써오긴 했었어요. 대학교를 다닐 때에도 계속 투고를 하긴 했었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그러려면 이 제도 안에서는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몇 년 동안 계속 투고를 했습니다. 솔직히 등단작품은 마감일 직전에 완성한 작품이에요. 계속 이야기를 생각하다가, 마감일 직전에 완성을 한 것이죠. 그런데 당선 전화가 왔어요!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계속 투고를 해 왔던 터라, 이번에도 안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냈거든요. 하지만 투고를 안 하면 그 기회가 너무 아쉬운 거잖아요. 1년이 지나가는 거니까. 놓치기는 아까워서 일단 보내기는 하자, 했는데 운이 좋았어요.
유: 그때 당선 소식을 들으시고 기분이 어떠셨어요?
박: 정말 좋았죠. 진짜 신나죠.
유: 동기들도 엄청 축하해주고.
박: 대학 친구들이 글을 쓰는 친구들이라, 그 친구들이 더 설레하고 기뻐했어요. 친구들의 축하에서 그런 마음이 다 느껴졌어요. 일요일이었거든요. 정확히 기억해요. 당선 전화가 일요일에 왔어요.
유: 전화가 오는 군요.
박: 네. 발표 전에 미리 연락을 주시는데 그때가 일요일이었어요. 그래서 알았죠. 아, 일요일에도 신문기자 분들은 다 일을 하시는구나. 그 전에는 일요일엔 당연히 연락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쉬는 날이니까. 언젠가는 당선 연락을 꼭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지만, 그렇게 갑자기 찾아 올 줄은 몰랐어요. 처음엔 되게 떨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 한 번은 올 일이었어!’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죠.
루: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으셨어요?
박: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건 좋아했어요. 엄마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제 손을 잡고 저희 집 앞에 있던 글짓기 학원에 데리고 가셨어요. 저희 엄마는 지금도 가끔 후회를 하세요. ‘내가 그 때 쟤를 왜 거기 데리고 가가지고.’ 하시면서요. 제가 잘 하는 게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글은 쓰면서 재미있고, 다른 것보다는 잘 하는 것 같으니까 그런 일을 하면서 살면 신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루: 보통은 속셈학원을 보내지 글짓기 학원은 잘 안 보내잖아요.
유: 왜 엄마가 글짓기 학원을 보냈을까?
박: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셨어요. 엄마가 읽으라고 하니까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어렸을 때는 책이 재미없었거든요.
유: 그럼 처음부터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문예창작학과를 들어가신 거예요?
박: 동화를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문창과에 들어갔죠. 그 전에도 쓰는 건 좋아했었으니까.
유: 그럼 문창과를 가셔서 언제 동화를 써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신 거예요?
박: 제가 다녔던 학교는 문창과이긴 한데, 체계적으로 동화를 배울 수는 없었어요. 전공이 시와 소설로만 나뉘었거든요. 저는 시 전공이었어요. 시를 쓰고 합평을 받고, 교수님과 학우들에게 지적을 받으면서 깨달았어요. 아! 내가 시를 잘 쓰는 게 아니구나. 그리고 시인들의 시를 읽으니까 제가 뭔가 되게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인들은 되게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제 생각은 너무 어린 거죠. 우연히 방학 때 어린이 책 전집을 만드는 출판기획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어요. 그때 두 달 동안 일을 하면서 동화를 처음 써봤어요. 그런데 되게 재미있는 거예요. 아이디어를 상상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게 되게 짜릿했어요. 그때 전집 원고 작업을 많이 했는데, 감사하게도 제 이름으로 책을 내 주셨어요. 몇 개월 뒤에 책을 받았는데,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동화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시는 쓰는 동안 되게 힘든데, 다 쓴 뒤에 느껴지는 만족감에 즐거웠었거든요. 그런데 동화는 막 쓰면서 신나는 거예요. 그래! 여기에선 이렇게 되어야지! 하면서요. 그래서 저는 좀 일찍 제가 원하는 장르를 잘 찾은 것 같아요. 그래서 등단도 좀 더 빨라진 것 같고요. 등단이 빠르다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인터뷰 둘_숙제 대신 해 주는 엄마, 오늘은 최고의 날 이야기
유: 너무 존경스러워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살짝 넘어가보면 『오늘은 최고의 날』 같은 경우에는 저는 개인적으로 2학년 담임이어서 최고가 처음에 나오니까 되게 귀엽고 능동적인 아이로 봤어요. 그런데 작가님께서 말씀하고 싶었던 건 어쩌면 제일이였던 것 같아요. 엄마가 계속 나오잖아요. 숙제를 대신해주는 엄마. 어떻게 보면 상을 받고 잘 나가는 자기 아들이나 자식에 대한 이상향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그런 욕망일 수도 있겠고, 그 욕망을 아들이 인정하면서 받아들이는 대가로 상을 받았다고도 보여졌거든요. 묵인하고 거기 보시면 등단작에서는 불만을 가지고 있잖아요. 제일이 같은 경우에는 당연한 일로 생각하잖아요. 그런 이야기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으시는지?
박: 제가 초등학교 때 과학의 날 표어를 내서 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엄마가 많이 도와주셨거든요. 초등학생이 포스터물감으로 깔끔하게 표어를 완성하는 건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표어를 학교에 냈더니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과학실 앞에 걸리기도 했고요. 학교를 다닐 때에는 그게 무척 자랑스러웠고, 멋진 일인 것 같다는 생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 보니까 그게 정말 이상한 거예요. 그때 선생님은 분명 제 표어에 엄마의 힘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거예요. 어른 손이 탄 것은 티가 나니까요. 그런데 선생님들은 거기에 상을 주신 거죠. 그거 되게 이상하잖아요. 선생님들은 왜 그걸 다 알면서 상을 줬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때 ‘아! 이게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는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은 진실 같은 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모두의 입장이 이해되기는 해요. 자식이 모든 면에서 잘 했으면 좋겠는 부모의 욕망도, 애들도 어떻게든 잘 되면 좋은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수 있고요. 선생님의 입장에서도 대부분 부모 손을 탄 작품들이 들어오니 그중에서 좋은 걸 선택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전체적인 구조가 잘못된 것 아니야? 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는 그런 면에서 요즘 아이들이 폭력적인 구조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무척 속상한 일이죠.
유: 그걸 해결하는 방식이 작품에서는 최고가 울고 나니까 제일이가 가서 솔직하게 말하고 해결되는 방식이었잖아요. 제일이도 변화를 하고, 선생님한테도 말씀드리고, 엄마한테도 말 하고. 그렇게 해서 작품 속에서는 해결이 됐는데 그럼 작가님은 사회 구조 상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것은 사회 구조탓이라고 말씀하시는건가요?
박: 네. 이렇게 된 건 누구 하나의 책임은 아니에요. 모두에게 조금씩의 책임이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몰아가는 이 사회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선생님도 거기에 동조하고 있고, 엄마는 더 큰 동조를 하고, 애들은 동조를 강요당하고 있잖아요. 스스로의 힘으로 이걸 벗어던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이건 모두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유: 선생님도 잘못이 있다?
박: 모든 선생님들은 아니지만 그런 행동을 묵인하는 선생님들에게는 잘못이 있는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부모님들이 방학에 너무 바쁘세요. 애들 방학숙제를 하느라 가족 신문도 만들고, 사진도 찍으러 가고, 뭐도 해야 하고, 뭐도 해야 한다고 하세요. 엄마들이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그건 엄마의 숙제거든요. 그런데 선생님들도 다 알고 있잖아요. 이건 엄마가 도와준 숙제구나, 이건 아이 혼자 힘으로 했네, 이걸 다 아실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힘으로 온전히 한 것에 손을 들어주시는 분들이 제가 학교 다닐 때에는 많지 않았던 거예요. 외형적으로 볼 때는 당연히 부모 손을 탄 게 더 잘 해 보일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오늘은 최고의 날』에서는 제일이가 자기의 힘으로 그걸 벗어 던졌지만, 솔직히 그건 판타지거든요. 어떤 아이가 현실에서 그걸 할 수 있겠어요. 아마 제일이가 다니는 학교는 이 다음번에는 똑같은 대회를 연다면 아이가 직접 한 작품에 상을 줄 거예요. 그런 일을 벌어졌다면,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모두가 조금씩 변화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유: 이런 측면에 대해서 보법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보이잖아요. 미술학원에서 해서 왔구나.
김: 한 학년을 돌아보면 즉석에서 그린 것이라도 보이거든요. 학원별로 세울 수 있어요. 보여요. 원장 성향이. 눈코입을 잘 보면 다 나오거든요. 정형화 되어 있어요. 그런 작품들은 되도록 큰 상은 주지 않아요. 큰 상은 창의성이 있고 색채 깔끔한 애들. 노력한 애들 그런 아이들 위주로 선정을 하죠.
루: 학원에서도 보면 학원에서도 똑같은 그림을 알려주면 안 되니까 애들마다 컨셉을 알려줘요.
박: 애들마다 컨셉을 짜서 와요?
김: 스토리도 짜서 와요. 예를 들어 과학 상상화면 이미 그릴 때 그려져있어요. 그림 그릴 때.
박: 그럼 엄마보다 더 한 전문가들이 붙는 거네요, 요즘 시스템은?
김: 저는 그래도 미술을 좋아하니까 계속 관찰하다보면 보이거든요. 이건 한 사람 손에서 나온거다, 이래서 제외하는데 진짜 조사해보면 나오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다른 선생님들은 그 중에서 하나를 뽑죠.
유: 어떻게 보면 구조가 그렇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해요. 상이라는 도구가 학교 안에서의 경쟁, 또 학교별로 경쟁을 시키는 시스템을 성과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미술 뿐만 아니라 글쓰기도 마찬가지이구요. 그래서 저는 웬만해서는 시상을 해야 하는 것은 과제로 내주지 않는 편이에요. 숙제를 내주면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박: 맞아요. 저도 만약 아이가 있다면, 온전히 네 힘으로 모든 걸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분명 어른의 힘이 필요한 것도 있고 아이 혼자만의 힘으로 하기에는 벅찬 일들이 있으니까.
유: 어디까지 개입을 하는지.
박: 그게 되게 큰 문제인데, 내 자식이 있다면 그게 잘 안 되잖아요. 요즘은 아이와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는데도 부모님이 일부러 져주더라고요. 가위바위보가 정말 운이라서 이겨도 상관없고 져도 상관없는 놀이잖아요. 그런데 그 나이 때부터 지는 걸 가르치고 싶지 않다는 거죠.
제가 대학에서 만난 아이들을 보면, 아주 작은 싫은 말조차 듣는 것을 못 견뎌 해요. 너무 상처를 받아요. 저는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어서 이걸 이렇게 생각하면 좋지 않겠니? 라고 조언을 하죠. 그런데 그런 말조차도 무척 자존심 상해하고 벽을 세운 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저도 강의평가를 받는 입장에서 그런 말을 피하게 되더라고요. 좀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하고, 자꾸만 타협을 하게 되고요. 가위바위보 조차도 늘 이기면서 자라 온 아이들이니까 이런 것들을 더 못 견뎌 하는 것 같아요. 가위바위보는 순전히 운이니까 질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야 하는데, 또 지는 게 나쁜 것이 아니고 잘 지고 거기에서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배워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것들을 배우지 못하고, 성인이 되니까 내가 이기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터뷰 셋_아동문학과 아이들 이야기
유: 아동문학이 아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박: 저는 엄마가, 아빠가, 선생님이, 학교가 가르쳐주지 않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문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윤고은 감독이 만든 <우리들>이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유: 본 것 같은데. 본 것 같기도 한데. 못 사는 집 애.
박: 그 영화를 보면 친구를 만드는 과정이 아이들의 시점에서 너무나 치열하게,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일처럼 보여줘요. 그런데 그게 진짜거든요. 당시에 친구를 사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또 아무도 그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죠. 어른들이 아이들 일이라고 마치 교과서에 적힌 대답처럼 쉽게 툭툭 주는 답은 그게 올바른 답일지라도, 정답은 아니잖아요. 마치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같은 거죠. 그땐 다른 친구들이 그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했는지를 보는 게 가장 좋은 경험인 것 같아요. 친구들은 어떻게 했지? 눈치껏 살펴보다 보면, 조금씩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잖아요. 저는 아이들이 아동문학을 통해서 그런 걸 배웠으면 좋겠어요. 경험을 통해, 많이 아파하면서 배워나가야 하는 것들을 조금 더 현명하게, 덜 아프게 겪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문학이 해야 하는 것이죠. 정답이 없는 것들에, 나만의 정답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요.
인터뷰 넷_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유: 저희가 아무래도 선생님들이 많이 구독하는 매거진이다보니까 작가님 작품을 보면 그래도 선생님을 따뜻하게 그리는 편이시거든요. 『오늘은 최고의 날』에서도 그렇고. 처음에는 왕까칠 선생님이라고 귀엽게 표현하셨지만 나중에는 그래도 들어주고 좋은 쪽으로 표현이 되요. 작가님께서 경험하신 선생님, 그리고 작품에서 선생님을 상상하실 때 어떤 이미지로 떠오르는지가 궁금하네요. 포장해 주실 필요는 없어요.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박: 저는 학교와 선생님들이 산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냐면 학교에 가는 건 학원하고 다르잖아요. 학교는 학업적인 교육만 하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각각 다른 환경에서 살던 아이들이 처음 모여서 사회라는 것을 배우고, 친구도 사귀면서 치열하게 눈치싸움 같은 걸 하잖아요. 저는 애들이 저기서 눈치싸움을 하고 있네, 라는 걸 파악해주시는 분이 선생님이셨으면 좋겠어요.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큰 고민이에요. 그런데 그때 또 선생님이 너무 과잉되게 개입을 하면 안 되잖아요. 그러면 결과적으로는 더 어긋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런 면에서 좀 산뜻하게 한 마디 정도 툭툭 던져주실 수 있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유: 학교란 아이들에게 어떤 공간이면 좋을까요?
박: 그런 걸 배우는 공간이면 좋겠죠. 삶에 대해서 다양하게 배우고, 나하고 다른 친구 혹은 세계들끼리 부딪히는 곳이 학교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학교는 구슬치기의 공간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이들은 유리구슬 같은 존재에요.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어딘가는 금도 가고, 어딘가는 패이고, 어딘가는 둥글어지면서 혹은 완전히 깨져보기도 하고요. 그런 것을 배우는 장소가 학교죠. 솔직히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는 생각이 하나도 안 나잖아요. 내가 학교에서 구구단을 배웠어, 이런 건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학교에서 이런 친구와 이런 일을 겪었었지. 내가 당시에 이런 친구를 만났었어. 어떤 선생님이 내게 이런 조언을 해주셨어. 이런 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잖아요. 학교는 그런 장소인 것 같거든요.
여기 계신 선생님들하고 대화를 나눠보니까 선생님들은 정말 애들한테 그런 긍정적인 영향을 주실 것 같아요.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선생님들도 때가 묻잖아요. 처음에는 열정을 가졌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요. 저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을 기억해보면 그런 분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여기 계신 선생님들은 안 그러실 것 같아요.
유: 노력해야죠. 자기반성.
박: 앞에서 말씀하셨던 그리기 대회에서 아이들에게 상을 주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면요. 더 연륜이 있는 선생님들은 이런 거 화려한 걸 뽑아야 해, 라고 말씀을 하셔도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주시는 선생님들이 조금 더 많아진다면 이게 바뀔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게 희망이죠. 이게 바뀔 수 있다는 희망. 오늘 선생님들을 만나서 ‘정말 좋다.’, ‘희망이 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유: 포장 안 해주셔도 되는데.
루: 꼭 나이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어린 꼰대도 있고. 학교에는 어린 꼰대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박: 맞아요. 말씀대로 나이 문제만은 아니고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의 문제인 거죠. 그런 선생님들이 많아지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학교가 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애들한테 틀에 박힌 구조를 강요하지 않는 공간이 되길 바라요.
유: 아까 아이들을 유리구슬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 하셨는데 작가님이 생각하는 어린이란 어떤 존재인지.
박: 유새영 선생님께서도 아이들은 본능에 충실한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이들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아요. 그래도 아이들은 어쨌든 어른들보다는 좀 투명해요. 잘 들여다보이거든요. 잘 못 감추는 거죠. 동시에 그렇기에 깨지기 쉬운 존재라는 생각을 해요. 세상에 맞닥뜨렸을 때, 딱 부러지기 쉬운 상태이다. 그래서 조심을 해줘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요즘은 너무 세상이 흉흉해서 지나가던 꼬맹이들에게 말 붙이기가 쉽지 않은 시대에요.
유: 요즘 상황이 더욱 더 그렇죠.
박: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휴대폰이 다 있죠.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위치를 수시로 확인하고요. 저는 그런 시대가 왔다는 게 너무 슬프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없어요. 며칠 전에 동네 길고양이랑 ‘너 밥은 먹었어?’ 이런 이야기를 하고 뒤를 돌아보니, 제 뒤에 초등학교 여자 아이가 책가방을 맨 체 서 있었어요. 그 아이도 고양이가 신기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 아이에게 “저 고양이는 매일 이 자리에 있더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 아이가 아무 말도 않고 그냥 막 가 버리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저 아이는 내가 말을 시키는 게 싫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 아이보다 더 빨리 걸어서 제가 앞질러 갔어요. 혹시 뒤에서 계속 걸어가면 아이가 오해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되게 자존심이 상하는 거예요. 내가 나쁜 짓을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이 고양이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것뿐인데 말이죠. 요즘은 옆집에 사는 아이랑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아요. 아이들이 내성적인 것도 있지만, 부모님들이 아이들한테 교육시키거든요.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절대 대답하지 말라고요.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더 깨지기도 쉬운 상태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이걸 많이 부딪혀야지 자기 걸 찾아갈 수도 있고 본인이 뭘 원하는지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아이들이 그 일을 겪는 과정이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유: 책을 소비하는, 작가님하고 학교하고 연결해주고 싶다고 했지만 학교 안에서만 해도 아이들이 책을 소비하는 방식은 다양하거든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볼 수도 있고 저 같은 선생님이 사라고 해서 산 다음에 친구랑 읽어 볼 수도 있고, 엄마가 사준 책을 읽어 볼 수도 있고, 요즘에는 논술학원에서도 학교에서 하는 것만큼 읽히고 하더라고요. 혹시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이 선생님들이 책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불만 같은 게 있으실 것 같기도 해요.
박: 이렇게 적극적으로 요즘에 나오는 책을 찾아 읽어주시는 선생님도 계시잖아요. 불만이나 이런 건 아니고요. 좋은 책들은 많이 나오는데, 그만큼 너무 쉽게 사장되어버리거든요. 모든 책은 독자가 읽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저는 어느 장르의 책만 많이 팔리는 시대는 좋지 않은 시대라고 생각해요. 이런 것도 팔리고 저런 것도 팔려서, 아이들이 편식 않고 독서를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보통 권장도서로 선택된 책들이나, 논술학원에서 쓰는 교재로 선택된 책들을 보면 되게 한정되어 있어요. 또 책이 주는 메시지도 비교적 명확하죠. 좀 더 다양한 책들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작가로서는 늘 해요. 물론 현장에선 그게 너무 어렵잖아요. 저도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 무슨 예를 들어도 보다 명확한 메시지가 있는 것을 찾게 되거든요. 두루뭉술한 책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죠.
유: 두루뭉술한 게 문학인데.
박: 네, 맞아요. 그게 진짜인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정말 어렵거든요. 그렇다고 애들한테 책을 읽으라고 하면, 찾아 읽는 아이들은 없어요. 저도 어렸을 때 책을 안 좋아했듯 아이들한테는 그게 압박감일 수 있죠. 어쨌든 선생님들이나 그걸 권하는 어른들이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다섯_앞으로의 계획
유: 혹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가지고 계시는지.
박: 저는 앞으로 계속 글을 쓸 건데요. 제가 만든 이야기들이 정말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교훈적으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그게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강요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잖아요. 그런데 보통 어른들은 다들 그러시잖아요. “이렇게 해야 착해.” “이렇게 하면 예뻐.” 저는 그런 말이 무척 폭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애들이 안 착했으면 좋겠거든요. 못돼야 한다는 게 아니라, 굳이 착하려고 애써서 나를 끼워 맞출 필요는 없어,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만들어서 오랫동안 쓰는 게 제 목표예요.
유: 그러면 제가 요즘에 공부하다보면 유은실 작가님의 경우 열 두 색의 크레파스다, 이런 이야기도 하시고 진형민 작가님은 삼촌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아빠나 엄마가 아니고. 이렇게 이야기 하시는데 작가님은 어떤 글을 쓰고 싶다, 라고 생각하시는 게 있으실까요?
박: 누가 내 편을 들어줬으면 좋겠어. 그럴 때 내 편에 서서 싸워주는 친구가 있으면 되게 좋잖아요. 그런 친구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어린이 문학이라는 게 작가로서는 되게 재밌거든요. 제가 고등학생 때, 적성검사를 했는데요. 교무실에 불려갔어요. 담임선생님께서 “너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니?” 라고 하시기에 왜 그런 말을 하실까, 했더니 “공상 부분 수치가 정상을 넘어서 매우 비정상이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동화를 쓰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그 수치를 최대한 덜 잃어버리면서 사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최고의 방법을 내가 되게 잘 찾은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제가 쓰는 이야기들이 아이들의 공상 수치를 자극할 수 있었으면 좋겠기도 해요.
유: 공상수치를 올리는 글을 쓰고 싶다. 좋은데요?
박: 자극이 되어서 다양한 상상을 더 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유: 작가님의 앞길을 응원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인천에 사는 어린이 문학 작가, 나주 선생님, 대구 선생님,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학교, 아이들,어린이 문학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