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쌤의 슬로리딩클럽] 18. 우리반 시집, 26개의 비밀번호
아이들과 책을 읽다가 '시'라는 표지판이 달린 샛길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들과 시를 나누었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넣어 시를 바꾸어 썼습니다. 오늘은 책을 천천히 그리고 깊게 읽으며 시로 샛길을 새었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한윤섭 작가님의 '짜장면 로켓 발사'라는 책에는 2편의 중편 동화가 들어있습니다. 짜장면 로켓 발사가 성공적으로 끝난 첫번째 작품에 이어 2번째 작품에서는 엄마가 중대발표를 합니다.
새로운 자신을 찾겠다며 엄마는 그렇게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을 떠났던 엄마가 돌아오다.
엄마가 보고싶던 성호와 아빠에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삐삐-삐삐삐.'
현관 자동문 여는 소리, 이 소리를 듣고 아빠와 성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그런데 누가 현관문 자동문을 열었을지도 모르는데 이 두 사람은 엄마일거라고 생각하며 현관으로 뛰어갑니다.
문 여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우리 가족의 특징
강도나 나쁜 사람일수도 있지만 아빠와 성호는 엄마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현관문 여는 소리만 듣고도 엄마인 것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때, 시 한편이 생각나서 아이들과 샛길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문현식 작가님의 '비밀번호'라는 시입니다.
이 시를 아이들과 나누며 생각했던 포인트는 크게 3가지입니다.
1. ☆☆☆☆를 어떻게 읽느냐?
-미리 사전조사를 해보니 우리반 26명의 학생중에 25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전자식 도어락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시에 표현 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를 어떤 아이는 삐삐삐삐로 어떤 아이는 뚜뚜뚜뚜로 읽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작품을 읽고도 다양하게 시를 낭독하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2. 가족들의 특징에 따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누나는 조금 비밀번호를 빠르게 누릅니다. 그에 비해 할머니는 천천히 누르시지요.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만 듣고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족은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그 특징을 아이들의 가족들에게 적용해 나누어보고 싶었습니다.
3. 주제의식 - 보 고 싶 은 할 머 니
-2학년 아이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이 시의 마지막 연에 이 시의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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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고 싶 은
할 머 니
보고 싶은 할머니가 비밀번호를 누르던 소리에 맞추어 시의 화자가 할머니를 부르는 이 장면을 아이들과 나누어 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과 시를 읽고 나만 알 수 있는 가족들의 특징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2학년 국어-나 7단원 재미있는 말과 연계하여 활동을 구상했고 아이들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코고는 소리 등으로 가족들의 특징을 정리하고 나누었습니다.
이 친구는 집으로 들어갈 때 현관에 있는 신발을 보고 어떤 가족이 집에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 시선은 이후에 멋진 시를 쓸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나만 알 수 있는 우리 가족의 특징으로 시 바꾸어 쓰기
가족들의 특징을 정리한 후 아이들과 비밀번호라는 시를 바꾸어 썼습니다. 비밀번호 누르는 모습만 가족에 맞게 바꾸어 쓴 친구도 있었고 주택에 사는 아이는 발자국 소리로 바꾸어 썼습니다. 시 전체를 바꾸어 새로운 시를 쓰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친구의 시를 듣고 질문 나누기
아이들과 질문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왜 비밀번호를 띠띠 라고 표현했어?"
"마지막에 보고 싶은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들어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니?'
선생님이 아닌 친구들이 해주는 질문은 그 자체로 긴장하게 합니다.
"너희 할머니도 돌아가셨니?"
"너희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니?"
갑자기 한 아이가 "너희 할머니도 돌아가셨니?" 라고 장난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원래 있던 시의 부분을 미처 바꾸지 못하고 쓴 것이라 생각하고 그런 질문을 한 아이에게 핀잔을 주려고 했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지만 요즘에 아프셔서 집에 자주 오지 못하시거든 그래서 이 부분은 바꾸지 않았어."
그런데 그 순간, 시를 바꾸어서 발표한 아이는 진지하게 시의 마지막 부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쓴 까닭을 말해주었습니다. 저의 편견보다 아이들은 좀 더 진지하게 작품을 바라보고 자신의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우리집에 같이 살던 할아버지 한분이 계셨어. 그런데 그 분이 아프셔서 병원에 가셔서 이제는 같이 살고 있지 않아서 이 부분을 할아버지로 바꾸었어."
장난스럽게 던진 질문이 진지한 대답으로 돌아오자 아이들은 표현방법에 대한 질문을 많이 주고 받았습니다. 시를 바꾸어 쓰고 작품에 대해 서로 질문을 주고 받는 보석과 같은 순간이 펼쳐졌습니다.
우리반 시집 '28개의 비밀번호'가 완성되다.
아이들의 시를 엮어 시집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표지만 덧붙였는데 조금 욕심이 나서 크레프트지에 시를 하나씩 붙이고 표지와 뒷면은 아이들이 직접 꾸밀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아이들의 소중한 글이 담긴 우리반 시집 '26개의 비밀번호'는 이렇게 완성되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시를 하나 소개해드립니다. 이 친구는 시의 일부분을 바꾸지 않고 가족들의 특징에서 시작해 시 전체를 바꾸었습니다.
현관
현관에 들어가면 알지
실내화가 있으면 엄마
큰 운동화가 있으면 아빠
중간 크기의 운동화가
있으면 오빠
거실에 들어가도 알지
갈색 가방이 있으면 엄마
파랑색 가방이 있으면 오빠
티비가 틀어져 있으면 아빠
난 누가 있는지 안봐도 알아
아이들과 함께 글을 읽고 시로 샛길을 새어보는 활동은 저에게 하나의 모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바꾸어 쓴 시를 가지고 질문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생각을 진지하게 나누었고, 우리반의 멋진 생각들이 모여 '26개의 비밀번호'라는 우리반 시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 권의 책을 함께 천천히 읽으며 중간에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것, 그 생각을 가지고 시를 쓰고 시집을 만드는 일. 교육적 효과를 떠나 참 멋진 일이지 않나요? 아이들과 멋진 일들, 즐거운 일들을 앞으로도 더 나누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