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쌤의 슬로리딩클럽] 11. 함께 살아가야 할 이 세상 모든 악당들에게
유쌤의 슬로 리딩 클럽 연재를 다시 재개합니다. 다음 주부터 아이들과 다시 '맛있는 책 수업'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생생한 수업 현장을 보여드리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글을 쓰고 싶어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리뷰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책을 천천히, 그리고 깊게 읽는 슬로 리딩 활동을 생생하게 중계하는 도중에 함께 나누고 싶은 책들이 있으면 이렇게 중간중간 나누어 보려 합니다.
지난 주말, 고창 람사르 습지에서 목욕하던 새들을 보며 떠올렸던 이현 작가님의 악당의 무게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연재 목차
01. 12색 크레파스와 거짓말하는 어른 (프롤로그)
02. 어떤 책을 함께 읽을까? 슬로 리딩 책 선정의 기준 다섯 가지
03. Pick me Up! - 책 정보는 어디에서 얻을까? (학년/학급 도서 신청 목록 만들기)
04. 슬로 리딩을 위한 교육과정 개발! 쉽게 시작하자!
05. 2016년 슬로 리딩 첫 수업 이야기(첫 수업 Tip)
06. 맛있는 책 만들기 프로젝트
07. 여기, 지금 슬로 리딩 수업 생중계
08. 몽털 씨처럼 막연한 꿈이 아닌 흥미와 재능 찾기
09. '책 먹는 여우와 이야기 도둑' 40일의 여행이야기(차시별 활동 안내)
10. 슬로 리딩, 책은 언제 어떻게 읽나요?
11. 함께 살아가야 할 이 세상 모든 악당들에게(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 ①)
"밤새 무슨 일 있었어요?" 할머니는 좀 신이 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수용이 너는 방금 일어나서 얘기를 못 들었구나. 글쎄, 간밤에 개가 사람을 물어서 다 죽게 만들었다지 뭐냐?" 개, 방금 개라고 그랬어요?
『이현, 악당의 무게 13p 中』 |
반려동물을 키운 적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동네 주민분을 통해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왔다. 하지만 그 강아지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 기억나는 것이라곤 고작 함께 자전거를 탔던 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당 대추나무 밑에 죽은 강아지를 묻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울던 내 모습이 전부다. 아마 병 때문에 일찍 죽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 이후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아파트로 이사를 온 것도 있었지만 동물에 관심이 가지 않았다. 도시는 동물이 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동물은 동물원에나 있는 것, 아프리카나 아마존 같은 곳에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물여섯에 만난 사람은 고양이를 좋아했다. 골목길마다 돌아다니던 고양이가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앞 공원에는 너구리도 살고 있었고 고속도로 옆 산에는 고라니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숨어사는 존재들이었다. 인간들을 피해 숨어사는 존재들.
초등학교 5학년 수용이도 그런 존재를 알고 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낡은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된 이후에 알게 된 존재다. 수용이는 성곽이 있고 청와대가 내려다 보이는 할머니 집으로 이사를 왔다. 엄마는 잘 노는 누나를 중학교 때 친구들과 떼어놓기 위해서라고 했고, 누나는 전세대란 때문에 돈이 없어서라고 했다.
그리고 악당을 만났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수용이에게 들개인 악당이 짖는 울음소리는 퍽 위안이 되었나 보다. 전학 온 첫날, 처음 만난 악당이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마저 좋게 만들어 주고, 한주라는 친구까지 만들어 주었으니 수용이는 악당이 얼마나 좋았을까. 게다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와 눈빛을 마주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딱, 2미터. 그 이상은 절대 다가오지 않는다.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한주랑 같이 자로 재 본 적도 있으니까 틀림없다. 우리가 갈비뼈를 들고 다가가도 악당은 그만큼 물러난다. 꼬리치며 반기지도, 배를 보이며 애교를 부리지도, 혀를 내밀고 헐떡이지도 않는다. 그냥 무표정하게 우리를 지켜볼 뿐이다.
『이현, 악당의 무게 45p 中』 |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과의 만남, 그리고 나누는 마음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인간이 아닌 생명들과도 교감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수용이와 한주는 악당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악당이 동네 한일 부동산 사장인 황 씨 아저씨를 공격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실을 목격한 성하 슈퍼집 아들의 제보로 이 사건은 뉴스거리가 되고, CCTV 영상까지 소개되며 화제로 떠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들개 소탕작전까지 시작된다.
"악당한테 뭔가 사정이 있는 거야.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게 틀림없어."
『이현, 악당의 무게 62p 中』 |
진실을 알기 위해 수용과 한주는 조사를 시작한다. 성하 슈퍼 아들에게 찾아가서 사건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황 사장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찾아가 직접 이야기도 들어본다. 하지만 황 씨 아저씨가 하는 말이 거짓말임을 알게 된 수용과 한주는 악당의 누명을 벗기고 악당을 구하기 위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목격자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아빠는 그 날밤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고 황 씨 아저씨가 악당의 목을 조르고 우산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계속 괴롭힘을 당하던 악당이 황씨 아저씨를 공격한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수용이는 어떻게든 악당을 구하려고 했지만 어른들은 진실을 알고서도 이상한 말만 계속했다.
'사람을 다치게 했으니 그런 동물들을 몰아내야 한다' 라고.
그리고 악당에게는 500만 원의 현상금까지 걸리게 된다.
전에 읽은 동화가 생각났다. 동화 속에서는 사람 사는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이 있었다. 동물들이 인간을 재판에 세우는 세상도 있고, 다른 세상이 있었다. 동물들이 인간을 재판에 세우는 세상도 있고, 새들의 나라도 있고, <해리 포터>에서는 마법사들끼리 사는 세상도 나온다.
『이현, 악당의 무게 144p 中』 |
언제부터 우리들은 '사람들만' 살아가는 공간으로 삶을 터전을 바꾸어가기 시작한 것일까?
인간이 사는 공간엔 다른 생명이 살아갈 권리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사회에 작가는 아이의 시선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다른 생명들에게도 살아갈 공간을 조금 더 허락하면 좋겠다고, 함께 살아갈 넉넉한 시선을 그들에게도 나누어 주었으면 한다고 말이다.
아빠는 그렇게 말했다. 악당은 누군가를 기다리듯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동네를 기웃거리고 있었다고, 악당은 누구를 기다렸을까? 감기 때문에 열이 심해서 잠을 설쳤던 밤들이 생각났다. <중략> 가슴 한가운데에 뭉쳤던 그것이 뜨거워지는가 싶더니 눈물이 투둑 떨어졌다. 가슴이 불에 덴 듯 아팠다. 『이현, 악당의 무게 174-175p 中』 |
한 소년과 들개와의 만남, 그리고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며 어릴 적 동물과 교감했던 일들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탐욕스러운 마음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변에 사는 다른 생명들을 돌아보게 된다. 골목마다 돌아다니는 고양이들, 공원에 숨어사는 너구리들, 고라니들,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풀꽃들, 환경친화적인 것은 없다. 자연 안에 함께 사는 우리들만 있을 뿐이다.
자동차 보닛이 따뜻해 들어가 있던 고양이를 생각하며 시동 걸기 전에 보닛을 두드리는 마음, 도로를 계획할 때 그곳에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들을 한 번이라도 고려해보려는 작은 마음을 이 작품을 읽으며 생각해 볼 수 있다.
P.S. 책을 읽고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남겨주세요. 이렇게 함께 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