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콜라 연재글이 한 권의 책이 되기까지
*2020년 7월에 있었던 에듀콜라 집필진 온라인 워크샵에서 발제한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남들은 다들 쉽게 책을 내는 것 같은데 저는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에듀콜라라는 매체에 글을 5년 동안 썼더니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연재글이 한 권의 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Why? What? How?
연구회에서 수업을 함께 연구했던 박한샘 선생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게 될 때 이 세 가지 기준을 두고 순서대로 일을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이 일을 왜 하려고 하는가?
이 일을 하겠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세 가지 기준 이야기가 인상적이어서 저도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이 세 가지 기준에 비추어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 세 가지 기준에 따라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Why? - 나는 왜 글을 쓰는가?
김형경의 심리에세이 《사람풍경》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있어요. 용기란 무언가 큰 일을 갑자기 해 내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래요. 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용기를 내는 일이에요. 글을 힘들게 쓰고 나면 어둠 속에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들거든요.
에듀콜라 집필진은 의무적으로 써야하는 글의 수가 정해져 있어요. 초창기에는 일주일에 한 편이었고 지금은 두 달 동안 네 편의 글을 올려야 해요(쓰지 못하면 필진으로 계속 함께할 수 없어요.). 그래서 월말이 되면 저렇게 머리를 싸매고 글을 쓰고 있답니다.
그래요. 저 순간도 분명 나아가고 있는 중인거예요.
한 시즌도 쉬지 않고 5년 동안 80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80개의 연재글을 썼더니 책 한 권이 된거예요. 저보다 많은 글을 쓴 필진도 있지만 꾸준함에 의미를 두고 계속 글을 썼습니다.
2015년 9월 2일, 처음 에듀콜라에 글을 올렸던 날입니다. 에듀콜라에 참여하게 된 까닭은 에듀콜라 편집장인 김연민 선생님의 이 말 때문이었어요.
"세상에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때로는 말보다는 그림이나 글로 더 자세히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요. 말을 잘하는 사람을 위한 공간은 많지만 글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공간은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에듀콜라는 글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더 편안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에 만들었어요."
저는 글로 제 생각과 의견을 전하는 것이 더 편안한 사람이고 생각했고 에듀콜라에 합류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2015년에 김남중 작가님의《불량한 자전거 여행》을 교과서 대신 학생들과 나누고 있었고 그 수업의 순간들을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연극을 하는 모든 예술 행위는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발견할 수 있는 존재가 나이고 우리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에요.
What? - 어떤 글을 써 왔나요?
6학년 학생들과 김남중 작가님의 《불량한 자전거 여행》을 천천히 깊게 읽었던 이야기를 [슬로리딩 도전기]라는 이름으로 썼습니다. 열 편 정도면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오산이었어요. 처음 썼던 글들은 이후에 다른 사례가 더해지면서 《맛있는 책 수업 천천히 깊게 읽기》의 네 번째 챕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듬해에는 연재계획을 올리고 연재예고를 했어요. 독자들에게 앞으로 쓸 글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지만 글을 쓰는 저 자신에게 하는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슬로리딩 수업의 준비과정과 책 소개 그리고 수업의 구체적 장면들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글들을 썼습니다.
미리 연재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글을 쓰고 목록을 정리해 독자들에게 안내했습니다. 마치 한 권의 책처럼 독자는 필요한 내용을 되짚어 볼 수 있고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의 흐름을 한 눈에 살펴보며 다음 글의 방향을 다시 잡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벤트처럼 1년에 한 번씩 작가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연재중에도 이런 기획글을 꾸준히 올렸습니다. 《변신돼지》의 박주혜 작가, 《연필의 고향》 김규아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국민지 작가를 인터뷰했습니다. 어린이책을 소개하는 플랫폼 책가방인터뷰로 진행하고 에듀콜라에 글을 담았습니다.
평상시에 쓰는 글이 아닌 행사처럼 찾아오는 글을 스스로 만드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고 글을 쓰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작년 Book극곰 서울 워크샵에서 《인권수업》을 쓰신 이은진 선생님을 모시고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식당으로 가던 길에 이은진 선생님에게 인권수업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건넸고 이은진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해주셨어요.
"유쌤, 인권수업을 하려고 하지말고 먼저 인권친화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세요!"
저는 이 말이 가슴속으로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을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먼저 내 삶을 제대로 살면 글은 자연스럽게 삶을 닮아 따라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관심을 갖고 노력하고 있는 내 삶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부터 2020년까지 10권의 책을 학생들과 천천히 깊게 읽었고 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차분하게 글로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다가 교육연극을 함께 나누게 되고 노래를 부르고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책과 교육연극을 만나 동료독자인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는 기쁨을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How? - 연재글을 어떻게 쓰나요?
연재글을 쓰기 전에 블로그에 먼저 조금씩 기록합니다. 에듀콜라를 방문하는 독자들이 많아지면서 글을 직접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질 때도 있어요. 블로그는 그런 의미에서 휴식처 같은 공간이에요. 부담없이 조금 서툰 글이라도 기록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블로그에 임시저장글들이 쌓여갑니다. 임시저장글이 40개나 들어있네요. 정리할 때가 되었어요. 블로그에 여기저기 써 두었던 조각글들을 모으고 사진들도 정리합니다. 수업의 과정들을 담은 글들이 많기 때문에 사진에 이름을 붙여서 차곡차곡 정리해야 원하는 사진을 제 때 찾아서 쓸 수 있었어요.
연재글을 쓸 때는 제목을 잘 정해야 했어요. 독자들이 이 글의 내용과 성격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썸네일로 볼 수 있도록 표지사진도 간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글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를 글 첫 머리에 넣었습니다. 이 글은 이번 글에 대한 프롤로그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글에 대한 요약을 간단히 하고서 본격적인 글을 시작하는 거예요.
인쇄매체와는 달리 전자말은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로 보는 경우가 많아 글 중간중간에 소제목을 넣어 글의 호흡을 짧게 가져갈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독자를 생각하지 않는 글은 메모를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글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도구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난 다음에는 수업시간에 차시예고를 하듯이 다음 글을 안내하고 연재글의 목록을 정리해 다른 글도 살펴볼 수 있도록 안내했습니다. 이것은 독자들에게 하는 안내이자 글을 쓰는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어요.
열심히 글을 쓴 것처럼 말했지만 글을 쓰다보면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자주 찾아와요. 함께 에듀콜라에서 글을 쓰는 선생님들이 하나, 둘 출간을 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책을 저렇게 빨리 쉽게 쓰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분명 저분들도 밤을 새워가며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쓰셨을텐데 '나만' 힘들다고 생각한거예요. 그런 생각을 이겨내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쓰는 것!'
계속 쓰는 것 밖에는 해결방안이 없어요. 처음에 용기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했어요. 정말 글쓰기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어떤 날은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날도 있거든요. 그래도 계속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연재했던 글들을 정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5년 동안 쓴 글을 다시 마주하는 일이었어요. 엉망으로 썼던 글들을 보며 '왜 이렇게 대충 썼을까?' 라고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지금과는 다른 시선에 놀라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사회도 변하고 그에 따라 사람의 생각도 변하기 때문에 글을 다듬고 고쳐써야 했습니다.
글을 쓰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이 정답이 아닐 수 있으며 언젠가 변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루님의 그림책 에세이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보면 그림책에서 그려지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있습니다.
보통 그림책에서 그려지는 할머니의 이미지는 '소외 받은 사람'이고 그래서 '보호해줘야 할 사람', '우리가 배려해 줘야 할 사람'으로 제시된다고 작가는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나이가 할머니에 가까운 작가들은 오히려 '할머니'를 긍정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에 무루 작가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저도 그동안 읽었던 그림책에서 볼 수 없었던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2학년 학생들과 함께 나눈 그림책《어느 날, 고양이가 왔다》에서도 할머니는 마을에서 소외된 존재로 등장하지만 그 수업을 하던 당시에는 그 모습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불편함을 깨닫기 시작하면 진실을 외면하는 삶을 더 이상 살 수 없게 됩니다.
예전 글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며 지금은 불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표현이나 생각들을 꼼꼼하게 정리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낱말이었어요. 글을 고쳐쓰며 아이라는 표현을 좀 더 주체적인 표현인 '어린이'라는 말로 바꾸어 썼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보호자는 '부모'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부모를 '보호자' 또는 '양육자'라는 말로 바꾸어 썼습니다. 또 2015년에 썼던 양성평등 교육이라는 말을 '성평등'이라고 바꾸어 썼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나의 생각이 바뀌는만큼 항상 나의 글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무해한지 점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다듬어 나갔습니다.
삶이 글이 되는 하루를 위해
하루하루 상상을 초월한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입니다. 5년 동안 글을 꾸준히 썼고 한 권의 책으로 담아 세상에 내어놓았습니다. 끊임없이 이전에는 발견할 수 없었던 혹은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작은 순간과 장면들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글이 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를 바라며 오늘도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