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쌤의 슬로리딩클럽] 02. 어떤 책을 함께 읽을까? 슬로리딩 책 선정의 기준 5가지!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 기억나시나요?
어떤 분은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같은 고전동화를 떠올리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또 젊은 분들은 '모모'를 많이 이야기 하시더라구요.
(여기에서도 세대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럼 21세기 스마트한 세상의 주인이자, 신인류인 우리 아이들과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저는 어린 시절의 아이들에게 책이 주는 가치(효용)보다 책이 주는 기쁨을 더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책들을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탈무드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고전읽기를 안내해주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들이 자신과 비슷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책 속에서 위로받고 공감받는 경험을 하기를 원합니다. 책 속에서 서럽게 울고 깔깔대며 웃으며 뒹굴 수 있는 그런 경험들이 모여 살아가면서 책을 가까이 두고 위로받고 상상력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또 2000년에서 2016년 사이 상상력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훌륭한 동화작가님들이 세련된 감각으로 쓰신 소중한 책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안내해주고 함께 읽고 나누고 싶습니다.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생생한 글들을 함께 읽어보시는건 어떨까요? 그래서 오늘은 책을 느리고 깊게, 그리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슬로리딩 수업을 위한 책 선정의 기준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01. 12색 크레파스와 거짓말 하는 어른 (프롤로그)
02. 어떤 책을 함께 읽을까? 슬로리딩 책 선정의 기준 다섯 가지
1. 아이들은 주인공에게 얼마나 애정을 쏟을 수 있는가?
혜수는 친한 척할 때마다 나를 끼워 주고 우리가 삼총사라고 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랬으면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일찌감치 깨달았다. 마음대로 부려먹으려고 그런다는 걸 알지만, 알아도 별수 없다.
황선미,『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 29p中』 |
황선미 작가의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이라는 작품에서는 일명 '눈깔들'이라는 인물이 두 명 등장합니다. '다른 아이들을 우습게 아는 아이들, 대들지 못한 것 같은 아이들을 잘도 찾아내는' 달갑지 않은 친구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인공들은 나쁜짓만 하지 않습니다. 친한 척도 가끔 하지요. 그러한 행동의 뒷면에 숨은 의도를 알면서도 속고 싶어합니다.
모두가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싶어하지만, 이러한 경험은 한 두번씩 있을 것입니다. 특히나 주인공은 '눈깔'들의 압력에 못 이겨 다른 친구의 신발을 창밖으로 던지기까지 합니다. 학교에서 신발을 잃어버리는 사건, 아이들에게 실제적이고 가장 와닿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아이들과 함께 읽어야 하는 글들은 아이들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에게 애정을 갖게 되는 작품입니다.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할 수 있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글들입니다. 토막글로는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느리게 천천히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으며 작품에 대해 애정을 갖게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작품을 살펴보시겠습니다.
'헤.어.지.자.' 한국말인데 한동안 뜻이 생각나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한다? 이혼은 드라마에만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남의 집이야기로만 알았다. 눈 앞이 캄캄했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앉았다. 물통에 검은 물감이 한방울 떨어진 것처럼 우울한 생각이 머릿속에 자꾸 퍼져 나갔다. 김남중,『불량한 자전거 여행 19p中』 |
제가 1년 간 슬로리딩 수업을 진행했던 김남중 작가님의 '불량한 자전거 여행'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13살, 6학년입니다. 아이들이 주인공에게 애정을 갖고 공감을 해주기에 좋은 물리적 조건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나이가 무조건 같다고 해서 아이들이 작품속에 빠져드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공인 호진이는 아빠 엄마의 불화로 인해 가출을 결심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불화와 이혼은 큰 충격입니다. 물론 실제로 그렇지는 않더라도 많은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다툼은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은 호진이가 처한 상황에 연민을 보냅니다. 그리고 애정을 갖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주변의 사건이 담긴 이야기, 아이들이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 이것이 아이들과 함께 읽을 슬로리딩 책 선정의 첫번째 기준입니다.
2.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어휘와 문체로 이루어져 있는가?
어느 순간, 그들은 바다를 박치고 날아올랐다. 하나, 둘, 셋……. 차례차례 내 심장으로 들어왔다. 모두 들어왔다. 그사이 세상은 멈춰 있었다. 바람과 파도, 대기의 움직임과 시간, 모든 것이 멈췄다. 나 자신의 존재감마저 잊었다. 절벽의 한 부분인 양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 약속한 듯이 그랬다. 어쩌면 말을 하거나 움직여서 우리 안으로 막 들어온 그들을 놀라게 할까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정유정,『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365p中』 |
처음 슬로리딩 수업을 시작하면서 학급 문고로 여러 권의 책들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 중에 한 작품이 바로 정유정 작가님의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라는 작품이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품이기도 했고, 6학년 정도면 읽을 수 있겠다 싶어 10권 가량을 주문해 놓고서 제가 먼저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책도 우리 반 아이들이 읽기에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판단한 첫번째 이유는 어휘수준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대로 읽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사건에 몰입할 수 있을까요?
그럼 어휘수준이 아이들과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어떻게 판단할면 좋을까요? 대체로 아이들에게 소리내어 책을 읽어보라고 했을 때 더듬더듬 읽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글을 읽을 수 있으면 그 아이의 어휘수준에 맞는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욕심이 아닌 아이의 어휘수준에 맞는 작품을 고르시기를 권장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작품의 문체가 초등수준의 아이들에게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학적인 표현이 많은 훌륭한 작품이지만, 초등수준의 아이들에게는 좀 더 직관적이고 자세한 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 같이 목마른 강아지처럼 입을 벌리고 숨을 몰아쉬며 페달을 굴렀다. _김남중, 불량한 자전거 여행 82p 中-
나는 아이스 박스에서 시원한 오이를 꺼내 돌렸다. 오이가 이렇게 맛있는 채소인 줄은 몰랐다. 채소가 아니라 과일 같았다. 아삭아삭 시원한 맛이 온몸에 메아리쳤다.오이 즙이 땀구멍으로 흘러나올 것 같았다. _김남중, 불량한 자전거 여행 85p 中-
나는 고개를 숙이고 도로 가장자리의 흰 선을 내려다보며 페달을 밟았다. 내가 흘린 땀방울이 흰선에 부딪혀 깨졌다. _-김남중, 불량한 자전거 여행 89p 中-
거대한 맷돌을 가는 것 같은 천둥소리가 들렸다. _-김남중, 불량한 자전거 여행 109p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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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중 작가님의 '불량한 자전거 여행'에서는 직유법이 많이 등장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이러한 비유들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주었고 작품 속 배경에 더 생생하게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생들도 학년에 따라, 또 같은 학년이라도 학급 특성에 따라 어휘수준과 문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를 것입니다. 아이들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어휘가 사용된 작품, 지나치게 문학적이지 않고 직관적인 비유가 들어있는 작품, 이것이 아이들과 함께 읽을 슬로리딩 책 선정의 두 번째 기준입니다.
3. 국어과에서 요구하는 성취기준을 달성할 수 있고 샛길로 샐 수 있는 글밥이 많이 있는가?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입니다. 슬로 리딩 수업을 처음 시작했던 계기가 국어교과서에 담긴 텍스트가 토막글인데 너무 많다는 문제제기에서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권의 책을 느리고 천천히 읽으며 국어교과서에서 달성할 수 있는 성취기준을 대신 달성해보자는 슬로리딩 수업의 출발동기를 생각하면 이 부분을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그 학년의 성취기준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문학영역의 경우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인물, 사건, 배경에 대해 학습하는 거의 대부분의 성취기준을 한 권의 문학작품을 통해 달성할 수 있습니다.
문학 영역만 달성해도 괜찮지만 한 걸음 더 나간다면 문법이나 읽기, 쓰기 영역에 대한 성취기준도 달성할 수 있나 살펴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6학년의 경우에는 비유법, 관용어에 대한 성취기준이 나와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취기준을 책 한 권을 통해서 달성 할 수 있었습니다.
[불량한 자전거 여행에서 학생이 찾은 관용적인 표현들]
또한 책을 읽으면서 어떠한 샛길새기(독후)활동을 할 것인지 머리속에 상상이 되신다면 더욱 좋습니다. 저학년 같은 경우 도깨비 이야기를 읽고 도깨비 방망이를 만들어 본다던지, 작품 속에 비 맞는 장면이나 음식을 해먹는 장면이 있다면 아이들과 직접 해보는 활동들이 많이 들어있는지 내가 정말 그 활동들을 아이들과 해보고 싶은지 생각하시고 살펴보시는 일! 이것이 아이들과 함께 읽을 슬로리딩 책 선정의 세 번째 기준입니다.
4. 아이들의 경험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상상력이 풍부한 책인가?
그때였다. 박하사탕을 먹고 입안이 시원해지는 것처럼 귓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삐순이! 잘 알지도 못하먼서, ' "뭐, 삐순이라고? 야, 허지수!" "어. 어? 나 그런 말 안했는데…."
최선영,『빨간 입술 귀이개 36p中』 |
최선영 작가님의 '빨간입술 귀이개' 라는 작품에서 3학년 정원이는 엄마와 함께하게 된 인사동 나들이에서 귀이개 하나를 선물받게 됩니다. 이 귀이개로 말할 것 같으면, 살살 긁어주면 다른 사람의 속마음이 들리는 마법의 귀이개입니다.
정원이에게 이 귀이개는 정말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삼총사라 불리던 친구들이 자신만 빼놓고 귓속말을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자아이들에게 귓속말, 비밀쪽지 같은 존재들은 민감한 문제들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속마음이 들리는 귀이개라는 설정은 아이들의 생각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습니다.
5, 6학년이 생각할 수 있는 작품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글자들이 눈에 들어온 순간 가슴이 두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치려 했던 그 낙서는 아주 낯익은 글자들이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적혀 있는 글자들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 분명 한글이었다. 몇 번이나 글자를 다시 읽었다. 이 책상에 왜 한글이 적혀 있지? 이 방에 한국인이 살았던 걸까?
한윤섭,『봉주르 뚜르 14p中』 |
프랑스 뚜르 지방에 살게 된 봉주는 자신의 집에서 한국어로 된 낙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집주인은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 중에 한국인은 한명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이 지점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반복이 아닌 아이들의 상상력과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글들을 찾는 것, 이것이 아이들과 함께 읽을 슬로리딩 책 선정의 네 번째 기준입니다.
5. 재미있는가?(가장 중요)
"아빠, 집에 가." "네가 여기 웬일이냐? 빨리 가라. 어린애는 술집 오면 안 돼." "여기 술집 아니야. 정문 슈퍼잖아. 아빠 때문에 창피해 죽겠어. 일어나, 얼른." "나도 내가 창피한데 너도 내가 창피하냐? 우리 마음이 통한거야?" 김남중, 속 좁은 아빠 12-13p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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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중 작가님의 '속 좁은 아빠'에서는 매일 술주정을 하며 동네망신을 다 시키는 아빠가 등장합니다. 그런 아빠의 술을 끊게 하기 위해서 모녀는 한 프로그램에 돈을 투자합니다.
1. 아빠를 부활금지클리닉과 계약된 병원으로 데려가 건강검진을 한다.
2. 아빠는 가짜 암 진단을 받는다(물론 클리닉에서 하는 거짓말이다.).
3. 암수술에 들어간다고 하고서는 지방흡입수술을 한다.
4. 아빠는 수술을 마치고 술을 끊게 된다.
저는 이 설정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동화인데도 깔깔거리며 읽으며 뒹굴었습니다. 감동적인 대사는 메모도 해두었습니다.
아이들과 느리고 깊게, 그리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 선정의 기준, 그 마지막은 바로 '재미있는가?' 입니다.
선생님이 먼저 읽고 재미있어야 합니다. 이야기에 반전이 있고 중간중간 깨알같은 재미들이 숨어있으며 재치가 있는 글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슬로리딩 수업의 목적은 '시간을 들여 책 읽는 기쁨을 알려주자' 입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기준보다 '재미'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은 내가 재밌게 읽은 책, 이 기쁨을 아이와 나누고 싶은 책, 이러한 작품들을 발견하고 함께 읽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슬로리딩 수업을 위한 책 선정의 기준을 안내해드렸습니다.
<슬로리딩 책 선정의 기준 5가지>
1. 아이들은 주인공에게 얼마나 애정을 쏟을 수 있는가?
2.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어휘와 문체로 이루어져 있는가?
3. 국어과에서 요구하는 성취기준을 달성할 수 있고 샛길로 샐 수 있는 글밥이 많이 있는가?
4. 아이들의 경험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상상력이 풍부한 책인가?
5. 재미있는가?(가장 중요)
그럼 어디서 책에 관한 정보들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다음 시간에 정리해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