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리딩 도전기] 여자친구의 이상한 여행- 책을 느리게 읽는 세 번째 방법
여전히 밤이었다.
나는 역 안으로 들어가 긴 의자에 앉았다. 반대편에 앉은 아저씨가 코를 골았다.
그 뒤에도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사람이 몇 명 있었다. 매점은 문을 닫았고 커다란 텔레비전도 꺼져 있었다.
일곱시까지는 세 시간 정도 남았다. 잠을 자기도 그렇고 안 자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새벽이라서 그런지 바람이 서늘했다.
팔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아 가방에서 옷을 하나 꺼내 입었다.
-김남중, 불량한 자전거 여행 31-32p 中-
책을 느리게 읽는 방법을 김남중 작가님의 "불량한 자전거 여행"을 통해 풀어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소개해 드렸던 책을 느리게 읽는 방법,
1.'제목에 유의하라'
2. '경쟁하는 목소리에 유의하라'
두가지에 이어서 이번에는 세 번째 방법으로 이 책을 함께 느리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장의 소제목은 '여자친구의 이상한 여행'입니다. 85쪽까지 아이들과 공부할 때에는 학급문고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드라마 쪽대본처럼 타이핑해서 그날그날 나누어 주게 되었죠.
악마의 편집으로 인해 아이들은 이 소제목만 보고도 두근거렸습니다.
"여자친구라니!" "여자친구의 이상한 여행이란 어떤 것이지?"
물론 아이들은 '여자사람 친구'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여행하는 자전거 친구'의 줄임말이죠. 자전거 여행 동호회 이름입니다.
그럼 법칙 1을 사용해야지요. 여자친구는 무엇인지 알겠는데 왜 이상한 여행일까?
어떤 것이 이상할까?
이 의문을 품은 채 책을 읽으시면 책이 재미있어집니다.:)
오늘은 조금 고급스러운 길로 빠져 보겠습니다.
책을 느리게 읽는 방법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책을 느리게 읽는 방법 3. 이정표를 찾아라!
이정표를 찾아라! 그게 무슨 말인가요?
책을 읽는다는 것을 일종의 여행으로 생각해봅시다. 이정표는 길을 찾는데 도움을 줍니다. 방향을 알려주지요.
작가는 독자들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 사건, 이미지 등을 세워둡니다.
때로는 대놓고 세워두기도 하고, 우리가 찾아갈 수 있도록 은밀히 숨겨두기도 합니다.
국어시간에는 '복선'이라고도 하지요.
이러한 작은 이정표들에 멈추어 서서 그 의미를 깊게 생각하고 즐기다 보면 이정표들이 모여
책의 주제와 결말로 이어져 하나의 작품이 나에게 온전히 다가오는 놀라운 경험을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2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주인공이 용산에서 광주에 도착해서 아침이 오기까지
하늘을 관찰하던 부분이었습니다.
그 시작문장은 이것입니다.
"여전히 밤이었다."
시간적으로도 밤이었지만, 호진이의 지금 상황도, 마음도 모두 밤이었던 것입니다.
7시까지 세시간 남았다고 한 걸 보면 새벽 4시였을 겁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나게 됩니다.
일곱시까지 두 시간 남았다. 밖을 내다보니 번쩍 거리던 네온간판 불빛들이 조금씩 약해졌다.
나는 밖으로 나와 하늘을 살폈다. 검었던 하늘가가 조금씩 파란색으로 변했다. 청소차가 붕붕 거리며 지나갔다. 역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났다.
저만치 앞에 불 켜진 편의점 간판이 보였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편의점에 들어가 차가운 삼각 김밥을 먹고 뜨거운 라면 국물을 마시자 힘이 났다. 어두울 때는 시간이 더디 갔는데 밝아지니까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았다.
-김남중, 불량한 자전거 여행 32p 中-
번쩍 거리던 네온간판 불빛들이 조금씩 약해졌다는 것은
불빛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주변이 밝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검었던 하늘가가 조금씩 파란색으로 변한 것 역시 어둠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드디어 해가 떠오릅니다.
해가 떠올랐다.
이제 완전히 밝은 아침었다. 역 광장 왼쪽으로 높은 산이 보였다. 둥그스름하고 커다란 산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산 중에 가장 높았다. 해가 뜨면서 산 색깔이 조금씩 바뀌었다. 한참 동안 산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옆에서 빗질을 하던 할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어디 생판 시골에서 왔능갑다? 무등산 첨 보냐 아가?"
-김남중, 불량한 자전거 여행 33p 中-
해가 떠오르고 호진이의 앞에는 무등산이라는 커다산 산이 나타납니다.
저는 자전거 여행을 하는 책에 3페이지나 들여서 왜 이렇게 이 장면을 자세히 묘사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기 전, 호진이가 앞으로 겪게 될 시간과 모습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라는 것을.
밤이었던 호진이의 여행은 밝아질 것이고,
호진이 앞에 나타난 산의 모습은 여행을 하며 성장할 호진이 자신의 모습일 것입니다.
해는 떠오르고, 산 색깔이 바뀌는 것처럼 호진이의 색깔도 마음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이야기를 함축해 하늘의 색깔과 풍경으로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이정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아이들과 함께 읽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아이들과 다시 이 부분을 읽으며 이정표를 쓰다듬고 만져보고 느껴볼 것입니다.
모든 이야기를 읽은 아이들에게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이상 책을 느리게 읽는 세 번째 방법, '이정표를 찾아라!'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샛길새기 활동>
1.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표현 찾기
2. 여자친구 자전거 멤버들 특징 정리하기
3. 앞으로의 여행 일정 사회과부도에 표시하기(6학년 1단원 지리와 연관하여)
P.S. 샛길새기 활동들이 주제와 맞지 않아 간략하게 적어둡니다. 다시 읽고 활동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사진은 작년, 함평 밀재에서 찍은 무등산의 일출입니다. 출사 안나간지 오래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