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쌤의 슬로리딩클럽] 12. 몬스터 콜스, 아직도 동화에서 교훈만 찾는 당신에게
연재 목차
01. 12색 크레파스와 거짓말하는 어른 (프롤로그)
02. 어떤 책을 함께 읽을까? 슬로 리딩 책 선정의 기준 다섯 가지
03. Pick me Up! - 책 정보는 어디에서 얻을까? (학년/학급 도서 신청 목록 만들기)
04. 슬로 리딩을 위한 교육과정 개발! 쉽게 시작하자!
05. 2016년 슬로 리딩 첫 수업 이야기(첫 수업 Tip)
06. 맛있는 책 만들기 프로젝트
07. 여기, 지금 슬로 리딩 수업 생중계
08. 몽털 씨처럼 막연한 꿈이 아닌 흥미와 재능 찾기
09. '책 먹는 여우와 이야기 도둑' 40일의 여행이야기(차시별 활동 안내)
10. 슬로 리딩, 책은 언제 어떻게 읽나요?
11. 함께 살아가야 할 이 세상 모든 악당들에게(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 ①)
12. 몬스터 콜스, 아직도 동화에서 교훈만 찾는 당신에게
"이해가 안가. 이 이야기에서 그럼 누가 좋은 사람이야?" 항상 좋은 사람은 없다. 항상 나쁜 사람도 없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 코너는 고개를 흔들었다. "끔찍한 이야기야 속임수이고." 진실이지. 진실은 속임수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백성들은 자기들에게 걸맞는 왕을 갖게 되고, 농부의 딸은 억울하게 죽고, 때로는 마녀도 구원을 받지, 사실 그럴 때가 꽤 많아. 알면 놀랄거다. 몬스터가 말했다.
『패트릭 네스, 몬스터 콜스 91p 中』 |
해피 엔딩이 아닌 동화
아이들과 함께 책을 나누겠다고 결심한 대단한 당신!
"동화는 해피엔딩이어야 해!, 아이들에게 밝고 건강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어야 해!"
저도 처음엔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우리가 어렸을 때 보고 읽었던 만화영화나 동화를 한번 살펴볼까요?
(세대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이 길을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네~랄라라 랄라라 랄라라 라라 라리라라~"
플란다스의 개 라는 애니메이션 기억하시나요?
고아였지만 화가가 꿈이었던 주인공 네로, 버려진 강아지였던 파트라슈,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걷던 모습이 기억나지만 이 작품의 마지막은 밝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보고 싶었지만 비싼 관람료로 보지 못했던 루벤스의 그림을 성당지기 아저씨의 도움으로 구경한 후 함께 천사들 곁으로 가게 됩니다.
만화영화 말고 생각나는 슬픈 동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가 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하나 켤때 마다 보았던 행복한 환상들, 그리고 잠깐의 행복, 하지만 결국 성냥팔이 소녀도 다음날 아침 쓸쓸한 모습으로 발견되지요.
이렇게 해피엔딩이 아닌 동화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남길까요?
먼저 우리 인간의 여러 감정들 중에 슬픔이라는 감정을 통해 위로 받을 수 있습니다.. 글 속에서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슬픔이라는 감정을 인지함으로써 기쁨이라는 감정이 다가왔을 때 더 명확하게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 최근 제가 인상깊게 읽은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몬스터 콜스
암 투병을 하는 이혼한 엄마, 괴롭히는 친구들, 자신을 불쌍하게만 생각하는 선생님들과 친구들, 어느 것 하나 행복한 것 없는 주인공 코너 오말리에게 어느날 밤, 집 앞 언덕에 있는 주목이 몬스터의 모습으로 12시 07분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나무가 집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가지가 얽혀 팔과 다리가 되어 소년을 위협하는데도 코너 오말리는 몬스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몬스터가 아무리 위협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너는 이미 몬스터보다 더 두려운 것을 본 것입니다.
몬스터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무엇일까요?
세가지 이야기, 그리고 코너가 할 네 번째 이야기
몬스터는 코너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결정적 순간마다 찾아와 세 가지 이야기를 해줍니다.
마녀와 왕손, 약재사와 목사, 보이지 않는 사람, 몬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교훈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의 일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이정표가 됩니다. 결국 네 번째 이야기는 주인공 코너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지요.
파괴와 해소
엄마 앞에서는 혼자서도 뭐든지 잘 할 수 있는 착한 아들로, 재혼해 미국으로 간 아빠에게는 의젓한 아들로, 학교에서는 말썽을 부리지 않는 조용한 아이로 지냈지만 주인공 코너는 가슴 속에 큰 슬픔과 분노와 억울린 감정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동인권선언에도 아이들에게 화낼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슬플때 슬퍼하고 화가 날 때 화를 내면서 왜 아이들이 화를 내는 경우에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나쁜 행동이라고 비난만 받아야 할까요?
두 번재 이야기를 들으며 몬스터와 함께 열심히 집을 부수던 주인공의 모습에서, 화를 파괴로 풀어내는 모습에서 아이들은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주인공 보다 더 요즘 우리 아이들은 억눌린 감정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동화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을 풀어내고 힘을 얻습니다. 화를 내거나 파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공을 통해서 자기 마음을 드러내고 비워내고 해소합니다. 어른들의 세계가 아닌, 아이들의 세계에서 위로를 받기 때문이지요.
보이지 않는 사람
코너는 투병중인 엄마 덕분에(?) 모든 사람들에게 불쌍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하나의 소년, 친구, 제자로 대해주지 않았지요. 그런 코너에게 매일 자신을 괴롭히던 해리는 어쩌면 유일하게 자신을 인간으로 대해준 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엄마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코너에게 벌을 주고, 죄책감을 덜어주는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코너에게 해리는 결정적 한방을 날립니다.
"코너, 잘 있어라. 이제 네가 안 보여."
그리고 12시 7분이 되었습니다. 몬스터가 나타납니다.
네 번째 이야기
세 가지 이야기가 끝나고 드디어 네 번째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코너는 이야기 하기를 주저합니다. 그런 그에게 몬스터는 계속해서 이야기해야만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엄마가 나았으면 하는 마음과 어쩌면 나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빨리 엄마가 세상을 떠나 자신의 어두운 생활이 끝나기 바랬던 마음, 그리고 이에 대해 가지고 있던 죄책감이 코너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어떤 생각도 진심이 될 수 없었지요.
그리고 마지막 12시 07분이 다가옵니다.
어쩌면 해피엔딩
네 번재 진실을 이야기 하고 진심으로 엄마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된 코너는 이전의 코너가 아니었습니다. 성장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에 관한 생각을 외할머니와 나누면서 가족과도 화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세상을 떠났지만 어쩌면 해피엔딩인 작품, 아니 확실히 해피엔딩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동화에서 교훈만 찾는 당신에게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보려 합니다. 몬스터 콜스를 소개해 드리면서 드리고 싶은 메세지는 아이들을 교훈적인 동화를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보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웃고, 울고, 화내고 짜증내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문학을 소비하는 한 명의 독자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북튜브라는 것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청소년들이 책에 대한 컨텐츠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고 나누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책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았으면 합니다. 어른들의 언어가 아닌 아이들의 언어로 된 작품 안에서 울고, 웃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읽을 작품을 고를 때에는 반드시 아이가 그 중심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는 것마저 또 하나의 학습이 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책 읽는 기쁨을 아는 건강한 독자로 성장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