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오겠습니다]우리 연구실을 소개합니다.
대학때 사범대를 다닐 때부터 우리끼리 하던 말이 있었다.
'사범대에는 음기가 흘러.'
이상하게 사범대는 캠퍼스 구석탱이에 있어서 정문에서 가기도 참 멀고 같은 학교 학생도 어디있는지 잘 모르는 그런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외져서 여름에는 스산하고 겨울에는 다른 단과대학보다 더 추운 곳. 온갖 캠퍼스의 그늘이 다 사범대로만 지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대우받지 못하는 단과대 같아서 서러웠다. 다른 학교는 다를 줄 알았는데, 어마마? 서울대도 사범대는 외진 곳에 있고 구조도 옛 건물과 새 건물을 이어놔서 처음 온 사람은 건물 구별을 하기도 어렵다. 건물과 건물의 경계도 불분명하고 ㅁ자 모양이라 미아되기 딱 좋은 구조다.
우리 연구실은 그 외진 여러 건물중에서도 3층 구석에 있었다. 문 열면 바로 뒤에 얕은 언덕이 있는 건물로 여름에 냉방을 안 해도 건물 1층은 선선한 건물이었다. 물론 건물 위치에 따라 햇볕이 들어오는 교실이 있겠지만 우리 연구실은 햇볕 한줌 들지 않는, 산 속에 우는 길고양이 소리가 마치 아기 울음 소리처럼 들려 저녁 때는 으스스한 그런 곳이었다. 연구실 크기는학교에서 마지못해 내준 겨우 책상 몇 개 들어갈만한 그런 작은 공간이었다. 그 작은 공간에는 봄, 가을의 추위를 나기 위한 보온 용품들이 여기 저기 있었다. 옷걸이에는 구스털 패딩, 책상밑에는 발 보온기구, 의자에는 이동식 전기장판.
그럼에도 볕도 잘 들어오지 않은 작은 다락 창고같은 그곳이 나는 우리 연구실이라는 이유로 좋았다. 우리 연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연구실과의 첫만남.
처음 동계 스터디에 나갔던 날인지 연구실 세미나를 한 날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우리는 스터디가 끝나고 다같이 ㅈ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강의실을 나가며 우리 연구실의 박사과정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쌤들, 삼공이 들렸다 갈까요?"라고 하셨다.
삼공이? 삼공이가 뭐지?
뭔지도 모르고 "네"라고 하며 따라 갔더니 삼공이는 우리 연구실의 호수 '302호'를 지칭하는 별명이었다.
'오. 여기가 우리 연구실이구나~'
연구실 문쪽에는 다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넓은 책상이 있고 벽면에는 그동안 연구실에서 학회에 제출한 포스터들이 붙어있었다.
'어떻게 이런 포스터들을 만들었지? 대단하다.'
그때 내 눈에는 모든 게 대단해 보였다. 연구실에서는 인쇄도 할 수 있고 기본적인 사무용품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보통 연구실 사람들끼리 논의하거나 회의를 하거나 수업이 끝나고 어디 갈 데가 없을 때는 보통 연구실로 오는 것 같았다. 항상 박사선생님들이 계셔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을 때 언제나 편하게 올 수 있는 그런 곳. 내가 어떤 모습으로 와도 나를 받아주고 품어줄 수 있는 곳이다.
다락의 냄새가 나지만 사랑방의 향기가 나는 곳이다.
그리고,
이제는 없어진 곳이라 더 그리운 곳이다.
1년 뒤 우리 연구실은 사범대 리모델링 공사 관계로 다른 연구실에 자리를 내주고 다른 전공과 통합된 전공방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밤 10시에도 야식을 먹었던 공간이 사라진다. 공간이 사라지면 그 공간에 머물던 사람들도 갈 곳을 잃는다. 남은 1년은 어디서 우리 연구실 사람들을 만나고, 나는 수업이 끝나면 어디로 가야하는 거죠?
이렇게 큰 서울대에 우리 연구실 공간 하나가 없다는 점이 서러워졌다. 나야 남은 1년을 어떻게든 버티면 되지만 이제 입학하는 사람들, 아직 졸업까지 시간이 남은 사람들은 이제 어디서 인쇄하고 어디서 편하게 담소를 나누고 연구를 할 수 있을까요?